비즈를 꿰는 일, 삶을 꿰는 일

비즈팔찌 3개 만들어 선물하기

by 하루




일상을 무겁게 하는 습관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개운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느긋하게 마음먹고 한 단계씩 밟아나가며 일상을 되찾기 위한 연습 중이지만, 이따금씩 조급함이 올라오곤 한다. 급한 성미에 즉각적인 성과를 좋아하던 나다.


그래서 이 조급함을 잠재워줄, 손에 잡히는 작은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취미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어렵게 마음먹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멀리 나가지 않고, 큰 비용을 들이지 않는 것.' 그래서 찾은 새로운 취미이자 이번 에피소드의 주제는 ‘비즈공예, 팔찌 3개 만들어 선물하기'다.



취미의 재정의



흔히 '취미 생활'이란 여가 시간을 활용해 즐거움을 채우는 활동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무기력의 늪에 빠진 사람들에게 취미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여가 시간을 활용하기 위한 '즐거운 쉼'을 넘어, '삶의 동력을 다시 작동시키는 재활 훈련'으로서의 취미인 것처럼 말이다. 최소한의 노력만으로도 눈에 보이는 긍정적인 결과물을 즉각 손에 쥐게 해, '나는 무언가를 끝낼 수 있다'는 확신을 되찾게 하는 활동. 이것이 바로 지금 내게 필요한 취미의 의미다.


오랜 시간과 큰 노력을 들여야 하는 취미는 또 하나의 '실패할 수 있는 숙제'가 될 뿐이다. 무기력으로 인해 시작만 하고 끝내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 속에서, 복잡한 도구 없이 앉은자리에서 30여 분이면 팔찌 하나가 완성되는 비즈공예는 내게 ‘완수 능력'을 회복시켜 주는 심리적 도구가 되어주었다.



첫 번째 팔찌



지난 크리스마스, 부랴부랴 동대문 악세서리 상가에 가서 부자재를 사 들고 왔다. 부자재들을 펼쳐놓고 아이들에게는 원하는 비즈를 고르게 하고, 어른들은 모여 앉아 조카들에게 어울릴 만한 팔찌를 열심히 만들었다.각자 마치 팔찌장인이 된 것처럼 몰입했고, 아이들의 팔찌가 완성되자 각자 서로의 것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엄마는 형부와 짝꿍의 팔찌를, 언니는 엄마의 팔찌를, 나는 언니의 팔찌를. 크지도 않고 고가도 아닌 작은 비즈 팔찌를 각자 손목에 걸고, 우리는 부자가 된 것만 같았다.



한 땀 한 땀 구슬을 꿸수록,

소복소복 쌓여가는 마음



이후에도 머리를 비우고 싶거나 의욕이 덜 생길 때는 책상에 앉아 비즈를 손에 들었다. 먼저 누구에게 팔찌를 만들어줄까 생각하고 비즈를 고른다. 그리고 실에 비즈를 하나씩 꿰어나간다. 처음엔 이리저리 작은 구멍을 찾느라 헤메다가 점차 구슬을 꿰는 속도가 빨라진다. 작은 구슬 하나가 모여 긴 줄이 될 때면 예쁜 색이 빛을 발한다. 비즈에 포인트를 줄 파츠를 고르며 이리저리 무엇이 어울릴지 대보고 사이즈를 가늠하고나면 팔찌 하나가 완성된다.


팔찌의 기본 비즈를 고를 때 한 번, 포인트 파츠를 고를 때 한 번, 사이즈가 맞을까 고민할 때 한 번, 완성된 걸 보며 마음에 들어 할까 상상해 볼 때 한 번. 비즈가 한 땀 한 땀 꿰어지는 만큼 받는 사람을 생각하는 내 마음도 함께 소복소복 쌓여갔다. 누군가에게 내가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마음은 일상을 지탱하는 데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한다.



형형색색의 팔찌 만들기는

꼭 삶과 닮았다



예쁜 색색의 구슬을 고르는 재미는 인생과 같다. 선택을 앞두고 시작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한 순간처럼. 한 알 한 알 꿰어가다 보면 어느새 한 줄이 완성되고, 마음도 쌓여간다. 색색의 팔찌들처럼 삶을 이루는 점들도 어느새 이어져 선을 이루기도 한다. 만들어가는 과정도 삶과 닮아있다. 자칫 실을 놓치면 구슬이 빠져나가기 일쑤다. 비즈를 다 꿰고 매듭만 지으면 끝인데, 실이 팽팽함을 견디지 못하고 핑 하고 끊어지면 구슬이 와르르 흩어져 버린다. 그러면 아— 하고 숨 한 번 내쉬고, 다시 만들기를 시작한다. 이걸 반복하다 보면 결국 완성이다. 짜증을 내나 안 내나 결국 완성은 된다. 다만 짜증이 나서 멈춰버리는 순간 완성된 팔찌는 손에 쥘 수가 없다.



작은 비즈 팔찌 하나가 눈앞의 조급함을 잠재워준 것처럼, 이 완벽한 작은 성취 덕분에 이제 긴 호흡이 필요한 느린 일상의 회복에 다시 용기를 내어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내게 가장 바꾸기 어려운 습관들이지만, 이 작은 성취의 경험을 발판 삼아 다시 한 걸음씩 나아가 보려 한다. 성과가 보이지 않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결과가 눈에 보이는 취미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의 작은 성취 리스트 15/22


[ 매일 하는 것들 ]

1. 기상 직후 이부자리 정리하기

2. 물 한 잔, 약 먹기, 다시 눕지 않기

☐ 3. 자기 전 5분 폼롤러 마사지


[ 하루에 한 개씩 ]

4. 화장실 줄눈 곰팡이 청소하기

5. 안 입는 옷 5개 버리기

☐ 6. 옷장 청소하고 제습제 교체하기

☐ 7. 살 빼면 입고 싶은 옷 걸어두기

8. 콩이 건강검진 하기

9. 콩이랑 5분간 사냥놀이하고 사진 찍기

10. 콩이 새 숨숨집 만들어주기

11. 조카들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기

☐ 12. 몸 일으켜 헬스장 가기

13. 한강 따라 30분간 자전거 타기(→추위로, '비즈팔찌 3개 만들어 선물하기'로 변경)

14. 5분 멍 때리기

15. 1시간 예능 보며 깔깔거리기

16. 조조영화 1편 보기

☐ 17. 맛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마시기

18. 장태산에서 단풍 사진 찍기

19. 사피엔스 한 챕터 읽기

20. 30분 집중해서 글쓰기


[ 도전 과제 ]

☐ 21. 8시 이후 금식 3일 연속 성공하기

☐ 22. 1시 반 이전 취침 3일 연속 성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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