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지 못할 이유, 걸어야 할 이유

'살 빼면 입고 싶은 옷 꺼내두기' 그리고 '3일 연속 걷기'

by 하루




옷장을 정리하며 한 벌을 골랐다. 사놓고 입어보지도 못한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네이비 셔츠와 슬림 라인의 슬랙스. 사진을 찍어 휴대폰에 저장해 두고,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했다. 건강한 몸을 되찾기엔 아직 멀었지만, 목표를 향한 첫걸음이다. 오늘 이룰 목표는 '살 빼면 입고 싶은 옷 꺼내두기' 그리고 '3일 연속 걷기'다.



실패하지 않을

최소 목표 설정




성취 리스트를 작성할 때 원래의 계획은 '3일 연속 몸 일으켜 헬스장 가기'였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일주일 이상 안 나간 사이에 등록 기간이 허무하게 끝나버렸지 뭔가. 그래서 이 리스트를 들춰보며 가장 거추장스럽지 않은 '나가서 걷기'로 수정하기로 했다. 걷기라는 선택이 만족스러운 이유는 헬스장에 가서 옷을 갈아입는 노력이 필요하다면, 걷기는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시작된다는 거다. 급격히 늘어난 체중 때문에 심란하던 마음에 작은 희망이 생겼다. 옷장에 걸린 옷들을 다시 입을 수 있을 정도의 건강한 몸을 되찾고 싶다는 것.



걷기 1일 차:

완벽한 준비 대신 일단 나선 (무모한) 용기




혼자 걷기는 심심하기도 하고 같이 건강해지자는 뜻으로 짝꿍과 함께 걷기를 시작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계획한 날부터 바로 걷기 1일 차를 실행에 옮겼다. 마음먹은 순간 바로 실천하는 기분은 꽤나 보람 있었다. 그런데 웬걸, 하필 기온이 뚝 떨어진 데다가 바람까지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평소 차림대로 나온 우리는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뭔가 잘못됨을 감지했다. 겨울 바지를 뚫고 들어오는 추위와 얼굴을 때리는 세찬 바람에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 정도였다.


첫날이니 나왔다는 데 의미를 두고 들어가야 하나 우리는 열심히 눈알을 굴렸다. 오늘 나온 건 우리밖에 없나 보다 하고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얼굴을 감싸고 조깅을 시작하는 일행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걷기도 힘든데 조깅이라니. 그들을 보며 우리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내일 입을 내복이 어디 있는지 열심히 옷장 서랍을 뒤졌다. 얼떨결에 시작한 걷기 첫날은 매서운 추위와 함께였다.



걷기 2일 차:

약해지려는 순간, 다시 신은 신발




전날 추위의 영향인지 짝꿍은 심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나 혼자 나가서 걸을 것인가, 나도 이참에 쉴까. 둘째 날부터 또다시 갈등에 빠졌다. 다시 약해지려는 나의 결심을 당근거래가 도왔다. 우리 집 고양이 콩이에게 맞지 않는 사료를 나눔 하기로 한 게 이날 저녁이었다.


오늘은 추위에 단단히 대비하고 사료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기분 좋은 거래를 마치고 동네를 방황하듯 걷기 시작했다. 전날 바람이 쌩쌩 불던 한강을 갈 엄두는 도무지 나지 않았다. 이어폰도 없이 홀로 걷는 길은 꽤나 외롭고 심심했다. 열심히 불이 밝혀진 곳들을 따라 방향을 정하지 않고 이리저리 걸었다.


찬바람이불면 자동으로 생각나는게 있다. 추운 날 길고양이들은 바람 피할 곳을 찾았을까 하는 생각.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 마리라도 마주치면 괜히 더 심란할 것 같아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걷기 30분은 마주침 없이 지나갔다. 걷기 둘째 날은 외로움과 무거운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걷기 3일 차:

일상 속 낯선 길에서 찾은 설렘




다시 혼자에서 둘이 되어 동네를 걸었다. 이번엔 우리 둘 다 무장을 하고 나왔고, 평소처럼 이야기가 꽃피기 시작했다. 걷기 첫날 대화의 주제는 외계인이었고, 오늘은 전날 본 드라마 이야기를 실컷 했다. 물론 드라마 이야긴 늘 나혼자 떠들곤 한다.


혼자 걷는 날 불빛만 따라 걷던 것과 달리 함께여서 어둠도 무섭지 않았고, 그 길에서 우연한 발견도 있었다. 오래된 동네에 주택만 있는 곳이라 카페를 찾기는 어려웠는데, 주택을 개조한 듯한 꽤 큰 규모의 카페가 있었다! 우리 동네에 저런 데가 있었다니. 그리고 작지만 따뜻해 보이는 또 하나의 카페를 발견했다. 두 곳은 조만간 걷다가 한 번쯤 들러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길치에 우회전 본능이 있는 나는 평소 잘 모르는 길은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동네인데도 조금만 떨어진 곳을 말하면 ‘거기야 어디야?’ 하곤 한다. 그런 길치가 정처 없이 낯선 길을 가보는 때는 여행할 때뿐이다. 오늘의 걷기가 작은 여행처럼 느껴진 건 우연한 발견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걷기 4일 차:

'완벽' 대신 '유연성'이라는 대안



갑작스러운 추위와 동행 실종 등의 난관이 있었지만 어찌어찌 3일 연속 걷기를 성공했다. 그러고 나니 4일 차는 자연스러웠다. 추위는 여전하다. 추위 때문에 감기에 걸리면 무슨 소용일까 싶어 생각한 대안은 실내 걷기다.


마침 책상 정리를 위해 이케아를 가야 할 일이 있었고, 오늘의 걷기 장소는 이케아로 정했다. 매일매일 새로운 산책로를 찾는 것도 좋지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지금까지 찾은 건 혼자가 힘들 땐 함께 걷기, 날이 너무 추울 땐 실내 걷기, 듣고 싶은 음악을 리스트업 해뒀다가 걸을 때 듣기 정도다.


아직 4일 차에 불과하지만, 이미 발견한 게 있다. 조금 짧게 걸어도, 밖이 아니어도, 혼자여도 괜찮다. 일단 나가서 걷는 것. 약간 힘을 빼도 뿌듯함은 찾아온다.


약해질 땐 휴대폰에 저장해 둔 네이비 셔츠 사진을 다시 꺼내 본다. 언젠가, 이 옷을 입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서는 내가 있기를.




나의 작은 성취 리스트 18/22


[ 매일 하는 것들 ]

1. 기상 직후 이부자리 정리하기

2. 물 한 잔, 약 먹기, 다시 눕지 않기

☐ 3. 자기 전 5분 폼롤러 마사지


[ 하루에 한 개씩 ]

4. 화장실 줄눈 곰팡이 청소하기

5. 안 입는 옷 5개 버리기

6. 옷장 청소하고 제습제 교체하기

7. 살 빼면 입고 싶은 옷 걸어두기

8. 콩이 건강검진 하기

9. 콩이랑 5분간 사냥놀이하고 사진 찍기

10. 콩이 새 숨숨집 만들어주기

11. 조카들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기

12. 몸 일으켜 헬스장 가기(→ 3일 연속 나가서 걷기)

13. 한강 따라 30분간 자전거 타기(→추위로, '비즈팔찌 3개 만들어 선물하기'로 변경)

14. 5분 멍 때리기

15. 1시간 예능 보며 깔깔거리기

16. 조조영화 1편 보기

☐ 17. 맛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마시기

18. 장태산에서 단풍 사진 찍기

19. 사피엔스 한 챕터 읽기

20. 30분 집중해서 글쓰기


[ 도전 과제 ]

☐ 21. 8시 이후 금식 3일 연속 성공하기

☐ 22. 1시 반 이전 취침 3일 연속 성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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