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이 있듯이, 유난히 읽히지 않는 책이 있다. 그것은 문체 때문일 수도 있고 내용이 어려워서일 수도 있다. 가끔은 번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음에서 책을 밀어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것을 다 이기는 힘은 데드라인에 있다. 독서모임에 참석을 누른 이상, 모임 전까지는 책을 완독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페이지 수가 많고, 심지어 어렵기까지 한 책은 전체 페이지를 나눠서 하루에 읽을 양을 정해 놓는 것이 좋다. 집중이 잘 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 두고 그 시간에는 무조건 책을 읽는 것이다. 내게는 '이기적 유전자'와 '몰입'이 그런 책이었다. '몰입' 합본판은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양으로 미리 얼마나 읽을지를 정해두지 않으면 다른 일정에 밀려 데드라인에 임박해 급하게 읽게 될 것 같았다. 급하게 읽은 책은 빠르게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매일 읽을 양을 정해두고 꼭꼭 씹어 읽을수록 기억에 오래 붙들어 놓을 수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반성하기 위함이다. 이번 주 독서모임 책은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남편에게 나는 뽐내듯이 "자기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곁에 둘 줄 아는 사람이 여기 누워 있다' - 에디슨"이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남편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앤드류 카네기..ㅋㅋ"라고 말했다. 책을 꼭꼭 씹으며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가 짧은 시간 안에 책을 다 읽으려다가 소화를 못한 탓이다. '에잇.. 참... 잘난 척하려다가 망했네..'
다행히 나에게는 하루의 시간이 남아 있고, 내일은 홈 카페에서 이 초록색 책을 꼭꼭 씹어 읽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