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교육에서의 균형

by 긴기다림

부모님은 아이 교육을 어느 정도로 개입할지 고민합니다. 강압적으로 개입하여 행동을 강제해야 하는지, 자율에 맡길지 생각이 많습니다.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마주하는 문제입니다.


비판철학의 창시자 칸트는 ‘교육학’이라는 책에서 ‘규칙을 지키는 것’과 ‘자유를 누릴 능력’을 조화롭게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큰 과제라 했습니다. 규칙을 가르치기 위해 강제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유를 누릴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율에 맡기는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훈육과 규율은 자녀를 강제하여 무질서한 행동에 질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시스템이 지금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의 질서를 흔드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각종 매스컴, SNS 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무질서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끼리 쉽게 연결됩니다. 학교와 가정의 교육만이 아이에게 주어진 상황이 아니기에 아이가 배워야 할 질서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훈육과 규율은 강한 적수를 만나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지만 가정을 지킬 시간이 부족합니다. 가정은 경제생활을 위해 에너지의 대부분을 소진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일터에서 아이는 학교와 학원에서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교육의 주체는 교육을 거부합니다. 부모도 아이도 지쳐있어 교육은 찬밥 신세입니다.


가정의 교육적 기능이 발휘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율을 훌륭한 가치로 여기는 분위기에 편승합니다. 아이는 자율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질서와 규율이 자리잡지 않으면 자율은 성장을 가로막고 부모와의 갈등을 예고합니다. 아이의 자율에만 맡겨두면 부모의 바람과는 다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은 불편하고 때로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대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교육에 결정적인 시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외부환경에 노출되기 전부터 질서와 규율에 대한 교육은 시작돼야 합니다. 말로 하는 질서와 규율이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는 질서와 규율이어야 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합니다. 질서와 규율을 가르치는 유일한 방법은 부모 스스로 질서와 규율이 몸에 배도록 하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도자기를 빚는 흙과 같습니다. 도자기를 빚다 모양이 틀어지면 다시 빚으면 됩니다. 도자기를 다시 빚는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아이만이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에 멋진 도자기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도자기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진정한 가치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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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행동은 아이의 행동입니다. 부모의 발자취를 따라 아이는 따라갑니다. 늦은 때란 없습니다. 멀어졌던 양쪽이 가까워지도록 균형을 맞추려는 의지와 용기가 행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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