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아버지를 잃은 그는 네 살이었을 거다. 외할머니는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었고 아빠 없이 태어난 막내딸은 바로 위 언니인 그와 다르게 진짜로 제법 사는 집으로 시집을 갔다. 신부를 데려가면서 돈이 없어 결혼식도 안 치렀다는데 있는 집 자제로 둔갑한 아부지네가 내건 그럴싸한 핑계는 아부지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을 게다.
언니가 결혼식 안 하면 자기도 시집 안 갈 거라고 이모가 떼를 써서, 그에게는 서양식 드레스를 입고 절 앞에서 찍은 결혼 사진이 생겼다. 부모가 결혼식을 못 올려 혼인신고가 미뤄진 피해는 내가 받았다. 본적지에서 떠나 있던 부모가 본적지에 살던 큰아버지 중 한 명에게 내 출생신고를 부탁했는데 생년월일은 물론 아부지가 심사숙고해 지은 내 이름마저도 한자를 엉터리로 적어 등록했던 거다.
첫아이가 학교 갈 나이가 되었는데도 취학통지서가 나오지 않아 찾아보니 생년이 너무 나중으로 기록된 모양이고 그래서 나를 가정법원에 데리고 가서 머리 둘레 재고 키 몸무게 재고 나서 생년을 고쳤다. 그리하여 1월 생인 내가 그나마 8살에 겨우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그렇게 법원에까지 가서 고친 내용 중 실제의 나와 같은 것은 생년뿐이다.
손재주 많고 머리 좋은 아부지보다 기억력이 월등한 그가 그래서 나를 언제 낳은 거냐고, 그 아님 아부지 외엔 확인해 줄 수 없는 질문에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가 정말로 생각해내고 싶어하지 않은 게 무엇인지 궁금하곤 했으나 이제는 진짜로 물을 데가 없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