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게 결혼 후 그가 들었던 남편에 대한 점쟁이의 예언이었다 한다. 그렇지 않아도 현실이 답답해서 찾아갔는데 저런 소리를 들었으니 그 암울함이 말도 못했다고, 그는 이따금 말하곤 했다. 내가 그 말대로 살 줄 아느냐고 오기가 나기도 했다는 말도 늘 덧붙이곤 했다.
저 말에 강하게 영향 받은 건 아부지 쪽이어서 동생이 태어난 후에 아부지는 딸만 둘이어도 괜찮으니 당시 정부에서 권하던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불임수술에 대해 의논을 했다 한다. 그는
"딸을 더 낳으면 이혼을 당해도 좋으니 하나만 더 낳자"
고 아부지를 설득했다고.
그 후에 태어난 아이가 그야말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었으니, 그에게 그 아들은 그 자체로 복덩이일 밖에. 게다가 저 과정을 이야기하며 그가 덧붙이는, 아들 사랑의 근원이 몇 가지 더 있었으니. 아기 때 남동생은 누가 봐도 그 애기 참 예쁘다 말할 정도로 잘 생겨서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하는 정도였던데다 저 아들이 태어난 시점부터 부모의 불운이 서서히 걷히고 한숨 돌려 살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듣기로 우리 삼 남매는 모두 산파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태어났다. 남동생은 저녁 이후에 산파가 미처 당도하기 전에 세상에 나왔다. 아부지가 그의 곁을 지켰고 바로 밑 동생과 나는 방 한 구석에서 꼭 끌어안고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밤이었던지 새벽이었던지 단칸방에서 산통을 했으니 우리를 내보내지도 못했을 테고 엄마가 진통을 하는 모습은 세 살 여섯 살 여자 아이들에게는 꽤 무섭기도 했는지 여동생과 꼭 붙어앉아 방 한 쪽 구석에서 울면서 아이가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