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23

by 포근한 바람


나보다 기억력이 월등히 좋은 동생 말로는 내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엄마랑 셋이 집에서 맥주를 나눠 마신 적이 있다는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릴 때, 제사를 지내고 나서 밥을 먹다가 대접에 담긴 물을 마셨는데 그게 술이었던 적은 있다. 대학 합격하고 졸업식도 마친 어느날 우연히 만난 동창과 맥주를 마신 게 내가 기억하는 첫술이다.


소주는 입학 전 2월에 참석했던 신입생 오티 뒤풀이 때 처음 마셨다. 소주가 맥주보다 알콜 도수가 높단 사실만 알 뿐 마셔본 적이 없으니 주량도 당연 모른 채 선배들이 따라주는 대로 넙죽넙죽 자리가 파할 때까지 받아마신 게 일곱 잔이었다. 몸 안에 알콜이 들어갔다는 느낌이 전혀 없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말짱하더만.


남편하고도 수(십? 백? ㅋ) 차례 술을 마시며 친해져 결혼을 했고 대학 동기 중 가장 친한 이도 술친구다. 술 마시는 걸 꺼리지 않기도 했고 친구나 동료들과 일단 헤어지면 따로 연락을 하거나 하는 편은 아니면서 학교를 마치거나 일을 마치고 생기는 술자리에는 빠진 적이 거의 없었다.


대체로 술자리는 서울에서 있었고 나는 경기도에 살았기 때문에 모임이 언제 끝나든 아무래도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아부지가 한 걱정을 하며 나를 단속하려 했고 그런 아부지를 미리미리 그가 막아서곤 했단 사실은 최근에야 동생을 통해 전해들었다.


아부진 주사가 있는 편이었다. 아내인 그의 말에 따르면

"이기지도 못할 그 놈의 술!“

을 마시고 와 다투기도 하고 그야말로 술로 인한 괴로움 때문에 그를 힘들게도 했다. 그래서 그는 술이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젓곤 했다. 엄마의 술에 대한 거부감이 무색하게도 그의 세 자식들은 모두 술을 꽤 마시고 술자리를 즐기는 편이었다. 게다가 사위들까지 전부 술을 마다지 않다 보니 온 가족이 만나면 당연 반주로 시작해 술자리가 늘어지곤 했고 왜 마시는지 모르겠다던 그도 슬금슬금 한 잔 두 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늦게 배운 술이 그의 몸에 아주 잘 맞지는 않아서 맥주 한 두 잔에 기분이 이상하다거나 몸이 허퉁댄다며 신기해하기도 했는데 시골에 땅을 마련해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 그는 드디어 술맛을 아는 몸이 되었다. 시골집에서 가족이 다 모이는 날이면 그는 넉넉히 술을 사서 쟁여놓고 먼저 권하기도 하면서 술자리를 즐겼다.


그가 그리 급하게 떠날 줄 상상도 못했던 그 해,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준비했던 차례도 못 지낸 추석 연휴에 가족이 모두 다래 나무 그들에 모여 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여느 때처럼 맥주와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얘기꽃을 피웠다. 그 밤, 편치 않다며 혼자서 쉬고 있던 그를 조심조심 부축해 나와 의자에 앉게 하고 춥지 않게 꼭꼭 싸매주며 함께 했었던 그 밤. 그 밤이 식구들 모두와 그가 음식과 술을 함께 한 마지막 밤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동생과 일주일에 한 번씩, 이따금 아버지도 함께 저녁을 먹으며 한 자리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를 위해 비워두고 우리가 마시는 술과 안주를 올려놓곤 했다. 옛날식으로 젯상을 차릴 때나 우리끼리 조촐하게 꽃상을 차릴 때나 납골당에 갈 때는 그가 마셔보지 못한 술을 챙겨가 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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