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29

by 포근한 바람

외할머니는 우리 집에 자주 오신 편은 아니었다. 어릴 때 외할머니는 내게 손녀딸에게는 잔소리쟁이이면서 막내 손주만 예뻐하는 좀 별로인 양반으로 인식되었다. 아마 막내 동생이 태어났을 무렵 그의 산구완을 하러 집에 오셨었지 싶은데 맏손녀인 내게는 그리 살갑게 대해줬다는 기억이 없다.


이따금 외할머니 얘기를 함께 떠올리곤 했던 동생의 기억에도 확실히 사내 아이만 아끼고 챙기는 할머니가 가장 강하게 남아 있다 하니 나만의 오해는 아니다 싶다. 내가 태어났을 때도 할머니가 그를 보러 왔었다고 한다. 아마도 백 일은 지났을 때였을 거다. 할머니 말로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머리숱이 많았는데 나를 업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그 애기 예쁘다 소린 않고 그 애기 머리 참 좋다며 머리카락 무성한 얘기를 그렇게 하더라고, 그냥 네 특성이 그러한 게다 하는 투로 말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가 세 번째로 짓고 가장 오래 산 3층 집의 긴 소파에 오두마니 앉아 있던 할머니를 기억한다. 집안 식구 중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어 우리 가족은 집 안에서 담배 피우는 손님들을 다들 별로라 했는데 할머니의 흡연에 대해서만은 누구도 타박을 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 담배들 중에 청자니 도라지니 하는 이름에 익숙해진 건 할머니가 챙겨다닌 소지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작달막한 키에 오동통 동글동글한 얼굴을 한 할머니는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 짓는 표정마저도 귀여운 데가 있어서 크면서는 이따금 만나는 할머니에 대해 손자와 손녀를 차별하는 노인네라 보기보다 어려운 시절을 용케 살아낸 귀염성 있는 어른으로 마음에 담기 시작했다.


능률과 효율을 중시 여기 그는 먼 데서 오셔서 며칠씩 묵는 당신 모친을 처음에는 좀 챙기는 듯 하다가 본인 볼 일을 우선하여 할머니를 그렇게 우두커니 내버려 두곤 했던 것 같다. 특히 그는 노인들 대부분이 습관적으로 하게 되는, 했던 말 또 하는 할머니의 자분자분한 수다를 연속해서 듣기 어려워하며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짓기도 해, 당신 엄마인데 꼭 저렇게 해야만 하나, 나는 또 속으로 그에게 마이너스 점수를 주며 못마땅해 하곤 했다.


그가 나이 들어 같은 얘기 반복해도 나는 들어줄 마음이 있었고 실제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안 그 자식들보다 훨씬 더 많은 얘기를 수차례 반복해서 듣곤 했기 때문에 충분히 잘 들어줄 자신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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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장단 맞춰주길 원하며 했던 말 하고 또 하는 엄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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