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가요??
제가 살던 제주도 집은요.
집 현관문에서 도서관 입구까지
성인 걸음으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어요.
문제는
아이와 함께 가려니
도서관이 전혀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기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너무나 공감이 되실 것 같은데요.
일단 집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미션이에요.
아기를 거실에 잠깐 내려놓고
세수라도 하려고 하면
아기가 욕실까지 기어 오면 양반인 거고요,
아주 목청이 떨어져라 크게 울기도 해요.
너무 조용해서 이상하다 싶어서
후다닥 거실로 나가보면요.
언제 베란다로 나갔는지
베란다에 아기가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화분을 쓰러뜨리고
흙과 놀고 있기도 했어요.
그럼 다시 손과 얼굴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후에
화분까지 치우면 시간이 금세가요.
게다가 가까운 거리를 외출하려고 해도
아기를 데리고 다니려면 짐이 많잖아요.
아기 과자도 챙기고
끓여놓은 보리물을 빨대컵에 넣어놔야 하고
여벌옷도 챙기고요.
혹시 모르니 이유식도 챙깁니다.
가제 손수건도 챙기고
물티슈도 챙기도 챙기다 보면 또 시간이 훌쩍 지나가요.
그나마 저는 모유를 먹이고 있던 터라
분유는 안 챙겨도 되었거든요.
그런데도 외출짐이 한보따리였어요.
아기를 낳기 전만 해도
외출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제야 선배님들께서
"결혼하고 애 낳아봐. 꼼짝도 못 해."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한 번 나가려고 하면
꼬리가 아홉 자는 되는 것 같았어요.
긴 꼬리가 현관문을 다 빠져나오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제가 그랬거든요.
(다들 아시겠지만, 한 자는 30cm입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도서관에 갔습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모르는 번호인데 받아도 될까?'
보통은 전화가 와도
아기 돌보느라 받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날따라 전화를 바로 받을 수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서귀포 도서관입니다.
OOO선생님이시죠?
이번달 다독자 수상자로 뽑히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네?! 제가요?"
"상품으로 도서상품권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을 드릴 게 있어요.
도서관 책자를 발간하는데
다독자 수상 기념으로 글을 작성해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네. 할 수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다독자로 뽑혔다는데
그깟 글 몇 줄 쓰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울까 싶었거든요.
시간이 흘러서
편집자님께 약속한 원고를 보내는 마감일 하루 전이 되었습니다.
어휴..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하니
한 줄 한 줄 채우는 게 왜 이렇게 버겁던지요.
전화가 온 날 남편에게
다독자로 뽑혀서 상품을 받는다고 자랑했었는데요.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글이 안 써져서 힘들어하는 저를 보고 남편이 그러더군요.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원고료가 도서상품권이었던 거야."
남편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도 같더라고요.
글을 쓸 때는 힘들었어도
다독자 우수상도 상은 상이잖아요.
도서관에서 상태 좋은 책들을
무료로 빌려다 본 것도 이득인데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상품도 탔으니
얼마나 좋아요.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 잡은 격 아니겠어요.
물론 글밥이 많은 글보다
그림이 많은 글을 읽어서
다독상을 수상한 게
조금 찔리기도 했지만
잠도 잘 안 자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제 상황에서는
그런 책들을 읽는 게 최선이었으니까요.
원고를 보내고 잊고 있을 때쯤에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원고가
도서관 책자에 실렸습니다.
다음번에 도서관에 오실 때
책자 한 권 받아 가세요."
"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