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적으로 몸이 버티지 못할 거란 건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것과 사용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것
어려운 문장이다.
외로움에 배가 고파졌다. 그를 떠나보내고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난 완전히 혼자가 되어버렸다. 인간은 어떤 생명체보다 사회적 동물임을 굳게 받아들였다. 나도 다를 바 없었다. 스스로 감정이 없다고 굳게 믿었지만 허울일 뿐이었다.
사람을 보기 위해서 정처 없이 떠돌았다. 봄이었기에 벚꽃로드를 가보며 수많은 가족과 커플들을 보았다. 행복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아 중에 대입을 잘하는 자아는 내가 그들 가족이 된 것처럼 남자 친구가 된 것처럼 척했다. 한동안 기분이 좋았다. 그것도 잠시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학생이었기에 학교를 갔다. 안 가도 상관은 없지만 나름 목표가 있었기에 갔다. 좋은 아들이 되어주고 싶었다. 전에는 교실에서 활기차게 들리는 여학우들의 목소리와 활기찬 남학우들의 목소리가 언제부턴가 시끄러웠다. 사람이 싫어졌다. 혐오감이 치밀었다. 여성들을 보면 돈 가지고 싸우고 울며 징징거리던 지인들이 생각났다. 반대로 남성들을 보면 한없이 나약하고 미래가 없는 것 같았다.
멀어져 갔다. 친구들도 날 아는 척 안 했고 시도 때도 없이 호감을 표하며 말을 걸던 여학생들도 사라졌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 아는 학생, 사람, 지인 없었다. 심지어 전자기기나 폰도 없었다. 스스로도 혼자였다. 나도 날 버렸다. 살 가치를 못 느꼈다.
그가 죽은 병원을 갔다.
학교에서 가라고 돌려 말했었다. 내가 그렇게 이상해 보이나, 행동했나 싶었다. 정신건강의학과. 가서 검사했다. 날 되게 묘하게 평가했다. 마치 모든 부분에서 극과 극인 2명의 자아가 공존하는 것 같네요. 어떤 테스트를 하던 모순적인 것 많이 존재했다. 그럴만했다. 한쪽에선 한없이 밝고 긍정적이고 바른 아이였지만 한쪽에선 어둡속에서 살며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도 찾지 못했다. 난 치료할 게 없다고 생각해서 다시 학교로 왔다.
나의 전여자친구는 어떤 남자와 묘한 기류가 있었다. 아무리 내가 눈치가 없다지만 모든 것이 보였다. 감정적으로 많이 성장한 것 같았다. 그냥 마음속으로 남자와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연애야 하며 서랍에 박혀있는 4월 모의고사 등급표 그리고 시험지들 잠시 보았다. 한숨이 나왔다. 다시 돌아온 자기비판의 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바로잡았다.
어지간한 상태에서 올라가는 것보다 아싸리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온전히 내 힘으로 이룰 수 있었다. 남 도움 안 받고 당당히 버티고 이겨내고 성취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실상 현실은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나만큼은 나한테 관심이 많았다. 혼자 다니고 혼자 밥 먹고 이야기를 아무랑도 안 한 지 2주 정도가 지났다. 나름 공부를 하며 중얼중얼거리긴 했다. 안 그래도 낮은 목소리가 어둠과 함께 더 짙고 낮아졌다. 무서운 목소리가 되어버렸다.
슬펐다.
입학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타인에게 너무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줘서 그런가. 시간이 조금 지나니 가끔씩 나에게 말 거는 학우들이 있었다. 궁금증이었을까. 혹은 호감이었을까. 동경이었을까. 난 차갑게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할 뿐이었다. 내가 말을 할 줄 아는 거? 에 놀랐는지 여학우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말을 안 했었나 생각했다. 대다수가 어디 갔다 왔냐고 질문했다.
지루했다. 끔찍하게 반복을 싫어하고 같은 질문을 싫어했다. 거기서 어찌 아버지 장례식장이라고 말하겠는가. 말해도 상관없지만 분위기가 싸해지는 걸 원치 않았고 조금의 동정을 느낄까, 잠시 바람 쐬고 왔다고 했다. 여학우들이 관심을 가지니 자연스럽게 남학우들도 다시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귀찮았다. 그리고 웃겼다. 한숨을 쉬었다. 깊은 한숨. 뭐 후련했다. 꼴에 존심은 있어서 먼저 다가가기는 싫었으니 먼저 다가와줌에 눈물 나게 고마웠다. 하지만 무덤덤한척했다. 시간이 흘렀다. 입학할 당시 허울에 비쳐 보이던 엄친아의 아이는 이젠 어둠에 절여진 회복불가 인성까지 안 좋은 아이가 되어있었다.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3년간의 긴 승부 후에 결과가 나오는 수능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살다가 내가 먼저 내 삶을 포기할까 봐 두려웠다.
뇌를 깨우는 약과, 뇌를 재우는 약
믹스커피를 대용량으로 샀다. 잠잘 시간도 없었고 눈을 감으면 내가 몹쓸 짓을 했던 경험들이 날 못 자게 하였다. 고통스러웠다. 커피로 계속 뇌를 깨웠다. 하루에 20개 정도를 먹었다. 무의식적으로 공부를 했다. 할 게 없었다. 그리곤 조용히 수업시간엔 공부하고 점심도 혼자 먹고 기숙사에서 공부를 하고 새벽 2시쯤 방에 갔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계속 공부를 하라고 붙잡았다. 고통스러웠다. 하루에 2시간 정도 남짓 자면서 살다 보니 고통이 따랐다. 약을 먹었다. 자야 함을 느꼈다. 자야 하는데 자지 못하니 정신이 더 피폐해져 같다. 수면제 4알 5알, 잠이 안 왔다. 그렇게 인간의 각성이 센 건가. 내 뇌의 호르몬이 그렇게 강한 의지를 표하고 있는 건가. 이걸 좋아해야 하나 욕을 해야 하나 하며 다시 펜을 잡았다. 머 까짓 거 내 몸이 버틸 때까지 달려봐야겠다. 그래봤자 3년 동안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새벽 5시엔 운동을 했다. 운동을 오랫동안 했었기에 운동을 안 하면 몸이 아프고 그랬기에 한없이 뛰고 맨몸운동을 하였다. 그럴수록 몸에선 어디선가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가볍게 묵인했다. 건강할 거라던 날 과하게 믿었고, 아직 어리기에 그럴 일이 없다 했다. 그렇게 살아갔다. 그들도 나처럼 열심히 살고 있겠지를 생각하며.
1학년 내신시험은 쉬웠다.
학생이 적었길래 100명 남짓이었기에 4,11,20... 등급이 명확했다. 거의 올 1등급이 나왔다. 어느덧 지루했다. 공부가 쉬워서 지루한 게 아니라 삶이 지루했다. 다들 무엇을 얻고자 이리 박 터지게 공부하는 걸까. 그냥 본인만 행복한 삶을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말을 하는 나는 웃기게도 모순적이지만 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죽은 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였으니깐 가끔씩 자아가 부딪히기 시작했다. 나의 본연의 모습과 내가 상황에 맞게 자기합리화하며 임의로 만들어 낸 자아들. 대성 모의고사. 월례 모의고사? 를 지나 6월이 되었다. 쉬웠다. 국어 수학 영어 과학 한국사 너무 쉬웠다. 다 합해서 몇 개 틀리지 않았다. 상위 0.4 퍼가 떴었다. 행복했다. 이때부터 별명이 0.4 퍼의 사나이가 되어있었다. 소문은 빨랐다. 어머니께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도 참았다. 아직은 시작이기에 내 웅장한 계획의 일부이기에 기다렸다.
신기한 시스템. 누굴 위한 걸까? 의미가 있을까?
우리 학교 기숙사는 신기한 시스템이 있었다. 모의고사를 치면 성적에 따라 자습실의 자리선택권을 주는 식이었다. 참 슬펐다. 이게. 어찌 보면 공부해야 할 동기부여를 심어주는 거였지만 조금 내 맘에 들지 않았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적이 안 나오는 학생들에겐 고통이지 않을까 싶었다. 첫 번째 순서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도 그저 그랬다. 다들 왜 놀라는 건지, 시끄러웠다. 우리들 사이에선 공부 잘하는 애들은 암묵적으로 맨 안쪽 조용한 자리를 잡는 게 정해져 있었다. 그 틀을 깨듯이 선배 때부터 정해져 내려오는 걸 거부하듯 난 시끄러운 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짜파 자습실에 잘 오지 않을 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