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도 먹어도 목마르지만 멈출 수가 없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지, 그저 흘러갈 뿐
많은 것들이 생각나고 바뀌어가며 어느덧 6월이 다 되어갔다.
공부. 담배. 가끔은 술. 피시방. 운동. 혼자.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 공허함.
굶주린 아이는 어둠을 먹으며 더 굶주려갔다.
저렇게 한 두 달을 살았다.
친구들의 인성이 좋든 나쁘든 그저 곁에 있는 게 좋았기에 같이 지내며 물들어갔다.
더 나빠지고 상황이 안 좋아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죽기야 더하겠냐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외로움에 사묻쳐 질이 나쁜 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쁘고 좋음의 기준도 무녀 지고 나름 나의 생각엔 나쁘지도 않았고 이건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선을 긋고 돌아가면 그만이었으니 나만의 규칙과 규율이 엄격했고 또한 친구니깐.
내가 좋은 길로 인도하면 되니깐. 사람은 누구나 밝아지고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수준에 맞지 않는 뜻이었다.
학교를 즐기고 싶나요? 그럼 우리 동아리로 와요!
그러다 어느 수요일 날 선배님들이 1학년 층으로 내려왔다. 한껏 화장도 하시고 이쁘고 멋지게 입으신 채 부랴부랴 무언가를 싸들고 한 손엔 팸플릿을 들고 오셨다. 1학년들이 이제 학교에 적응도 했겠다? 본격적인 학교 즐기기 첫 번째인 동아리 홍보였다.
동아리 종류는 물리, 화학, 생물, 의예 등등 다양했다. 동아리 이름이 하나같이 이뻤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기억에서 잊힐뻔한데 쉽사리 잊히지 않는 거 보면, 피식 웃으며 그때 감성에 젖고 한다.
동아리 활동을 하시는 선배분들의 첫인상은 나랑 정반대의 밝은 쾌활함이셨다.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도 옛날엔 어두운 쾌활함이 아닌 밝은 쾌활함이었는데. 혼잣말을 했다. 아마도 시기질투 혹은 열등감이었다.
그럼과 동시에 나도 한 곳을 들어가고 싶었다. 이곳이라면 나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이기심이었다. 사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종종 복도에 붙어있는 동아리모집글을 보기도 했었고 대화도 들었었다.
내가 갓 신입일 때 날 괜찮게 본? 선배분들은 자기 동아리 오라고 좋은 사인을 주셨다.
오면 잘 대해주겠다,
재밌게 해 주겠다,
약간 수산시장 가면 들을뻔한 멘트였다.
기숙사에서 1층에 내려가면 선배누나들이 나를 왜 좋게 보는 건진 모르겠지만, 오라고 꼬시고 그랬었다. 아마 a와 b동아리 회장분께서 나의 중학교 선배셨고 중학교 때부터 나를 좋게 봐주셔서 그럴 것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풋풋했고 하얀 피부 차분한 머리 훈훈한 외모는 누나들의 취향저격이었나 보다.
유돈 난 두 동아리에 관심이 많았다.
a와 b동아리도 둘 다 생명 쪽이었고 의예과와 관련이 있었다. 고민했다.
막상 올래 말래 누나가 대신 신청서 써놓을까 하시면 그래도 난 매번 확실한 답변을 드리기보다는 아직까지는 여성분들이 어색하고 대화가 잘 안 되기에 매번 웃으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혹은 감사합니다만 반복할 뿐이었다.
어찌 보면 여러 개의 선택지를 두고 간을 본다고 보였을 수도 있다. 어떤 생각을 하나 결정을 내릴 때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봤다. 그들이 날 버릴까 봐,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진짜 고민은 따로 있었다.
또 나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욕심으로 무언가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들어가야 할까 들어가지 말아야 할까. 이때부턴가 입에 베인말이 생각해 볼게, 보류. 두 개였다. 중립적인 의사를 담고 있지만 실상은 반대의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흔치 않은 선배들의 장기자랑.
수요일 어느 날처럼 무난한(?) 오전수업이 끝나고 수다날이었기에, 아 나때까진 수다날 수요일은 다 먹는 날이라고 맛있는 음식 위주로 나왔었다. 아무튼 1시부터 동아리 설명이 들어갔다. 첫 번 짼 물리동아리였다.
물리, 이름부터 아름답고 벌써 배우고 싶지 않은가.
이름의 아름다움은 어디 가고 나의 예상대로 거의 형들이셨다. 쭈뼛쭈뼛, 준비해 오신 홍보를 읽으셨지만 계획대로 호응이 잘 없으셨는지 축구, 스포츠, 남성미 쪽으로 홍보하셨다. 칙칙하셨지만, 나름 괜찮았다. 오히려 남자들은 끌려할 것 같은 어떠한 매력이 있었다.
그다음은 화학, 난 화학을 사랑하고 전문적으로 배울 생각이 있었다. 미시적인 세상이 너무 궁금하고 나 또한 새로운 원소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들어왔을 때 범생이처럼 공부 잘하시게 생긴 포스 분들이 쫙 오셨다. 역시나 공부 잘하는 애들을 뽑기를 희망하셨고 최상위의 동아리가 될 거라는 포부가 있으셨다. 나랑은 조금 꺼려졌다. 뭔가 너무 재밌는 동아리라는 인식보다는 성숙을 떠나서 공부로 뽑는다는 분위기라 조금 그랬다. 오히려 난 다른 동아리를 1등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반감마저 생겼다.
다음은 생물이었다. 앞서 말한 a동아리의 누나가 회장이었다. 성비는 대략 반반정도였고, 쾌활하시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셨다. 준비해 오신 사탕 선물 등도 뿌려가며 열심히 준비하신 것 같았다. 혹했다.
저기 가면 선배들이 나를 잘 대해주고 밝게 만들어주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면 뽑히는 건 맞지만 그래도 내가 기피하던 3 맥 중 1개였기에.
더 지켜보기로 하였다.
세상은 공평해야 한다.
다음은 생물이자 의예과 동아리였다. 괴짜 같기도 하고 각자 특색이 넘치시는 선배분들이셨다. 신기한 게 중간에 뒷문이 팍열리더니 3학년 선배들도 보러 오셨다. 당황 반 긴장 반.
난 특이하게 부회장이셨던 누나한테 유독 눈길이 갔다.
조그마한 키. 동글동글하고 작은 얼굴. 기다란 갈색머리. 귀엽고 이쁘셨다.
어느덧 동아리 집중은 못하고 여선배한테 집중을 했다.
좋아하나? 생각하며 동아리를 고민했다.
동아리 접수는 각 회장 부회장 선배들에게 자기소개를 써서 전달하는 거였다. 간단한 인적사항? 이름 학반, 전환번호 물론 없지만. 특기 포부 등 가벼웠다.
학반 전체가 시글시끌했다. 다들 본인이 원하는 동아리를 들어가고 싶어 했다. 나는 고민을 엄청했다. B동아리. 다들 누구누구 선배가 이쁘시다 잘생겼다에 주로 초점을 닮아서 정하는 것 같았다. 나라고 달랐을까, 이미 그 누나한테 빠졌다. 학생 시절 멋진 이쁜 선배와 연애는 누구나 꿈꿔봤을 거니깐.
어영부영 어디선가 지원서를 받아서 최대한 이쁘게 썼다.
이름 : 감자돌이
학반 : n
전화번호 : X
취미 : 운동
특기 : 운동
포부 : 열심히 하겠습니다.
놀랍게도 저게 전부였고 썼다 지웠다 여러 번 반복했다가 최종제출한 것이었다. 기숙사에서 드려야 하나 그냥 몰래 선배분 자리에 놓고 할까 하다 얼굴이라도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날 2학년 층으로 갔다.
나는 학교의 유명인사였다. 앞서 말했듯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계단을 올라가는데 왜 친구들은 나를 따라오는 건지..
이과반으로 가서 조용히 선배층을 걸어봤다. 지나가면서 어떤 분들은 수군수군거렸고 어떤 분들은 밝고 웃으면서 이름을 물어보셨다.
"왜 왔어?"
난 여선배 이름을 몰랐다. 들었는데 기억을 못 했다. 그래서 두리번 두리번거리다가 얼떨결에 b동아리 회장누나를 만나게 되어서 인사하면서 날 데리고 가셨다.
불편한 자리였다. 누나들이 엄청 많았고, 심지어는 a동아리 회장누나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b동아리 부회장도 있었다.
"너 동아리 제출하러 온 거야?:
얼굴이 빨개지며 부끄러워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전 누나동아리 넣으려고요."
그때 속상해하시는 a동아리 누나께 되게 미안했다. 그러면서 "열~~ 하시면서 웬일??" 하시면서 잠시 나랑 복도 걷자고 하셨다.
동아리얘기는 아니었다. 그저 나의 인성적인 부분에 있어서 선배들이 벼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날 싫어하는 선배들이 조금 있다고 들었다. 당연한 거였다.
들어왔을 땐 엄친아였다가 그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버텨왔던 한계점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었다.
선배는 남선배한테 말해놓는다고 조심하라고 했다.
가기 전에 관심 있던 여선배한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뭔가요?" 그냥 궁금했다.
이름이 이뻤다. 과일이름이 연상되는 이름이었다.
듣고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