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밝아질 수 있었다.

다만 내가 도움의 손길을 저버린 거지

by 감자돌이
나는 언제나 밝아질 수 있었다.


동아리 지원서를 접수한 지 1주일이 지났다.

수요일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이제 면접을 보는 날이다.

이게 뭐라고 떨리는 건지. 그동안 봐왔던 면접을 볼 때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마 "면접"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우유를 마셨다. 제티를 탄 우유는 너무 맛있었다.

"면접"을 생각하면 "경쟁"이 그리고 "실력"이 꼬리를 기에 무게가 있는 단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수많은 친구들의 이름이 호명하고 어느덧 내 이름이 불렸다. 생각보다 이름이 뒤늦게 불려 꽤 경쟁률이 높았구나 생각했다.

안내해 주는 누나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가는데 왜 하필이면 울면서 내려오는 학우들이 있는 건지 싶었다.


"나약하다"

이게 뭐라고 울까. 살짝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못된 생각이었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남들에게도 중요하지 않을 거라는 일반화. 하지만 성숙하지 못했던 난 그들을 비웃었다. 한낱 동아리가 뭐라고 우는 건지 눈물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들어가니깐 후배들 잘하고 있나 보러 오셨는지 아님 다가오는 수능 공부에 지루함을 느끼신 건지 3학년 선배들이 책상에 걸터앉아 있으셨다.

그리곤 앞에 책상을 다 뒤로 미시고 진지하게 앉아계시는 회장, 부회장, 서기, 그리고 몇몇 분들.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긴장이 오히려 날 더 들뜨게 만들었다. 뜨거워지면서 흥분됐다.


쭈볏쭈볏 들어가서 인사드렸다.

"N반 감자돌이입니다."

가벼운 자기소개 몇 마디 이후,

질문이 들어왔다.

"폰번호 안 적어주셨던데 왜 안 적어주셨나요" "폰이 없어요."

갑자기 싸해지셨다. 요즘에도 폰이 없는 사람이 있구나.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다양함을 받아들이고 이해심이 넓은 선배들에겐 신기한 아이였고, 일반적인걸 추구하고 대다수의 의견을 좇으신 선배들에겐 이상한 아이였다.


하긴 중학생 때도 전교생 중 폰이 나만 없었기에 이해했다. 일반적인 게 아니라 거의 전부였으니까.


면접이었기에 나에게 잘 대해주셨던 선배들은 차가웠다. 10분~15분간 면접을 보고 내려왔다.

개운했고 뭐, 붙어도 그만 안 붙어도 그만이라 생각하며 반에 들어오니 친구들은 면접질문과 벌써 스스로에 합/불 여부를 판단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아빠다리하고 앉아 엎드려서 누나생각을 했다. 어쩜 그렇게 동글동글하시고 아담한 햄스터 같으실 수 있지.


그렇게 발표에 대한 생각은 뇌 한편에 맡긴 채 흘러 보냈다. 어차피 한구석에서 계속 뫼비우스 띠처럼 과거를 형상화하며 최대한 모든 걸 기억하고 판단 내릴 것이었다. 발표는 다음 주 수요일로 미뤄졌다.


1주일은 평범했다. 담배. 피시방. 더 가까워지는 정상. 누나 생각. 수면제. 카페인.


폰으로 개별 합/불 통보가 가는 거였어?


다음 주 수요일이 여김 없이 찾아왔다. 다들 점심식사를 먹고 동아리가 발표가 난 건지 각자 다른 교실로 갔다. 다들 어떻게 알았지 생각하며 난 떨어졌나 생각하며 자리에 앉아 자고 있었다. 1시 2시가 되었을 무렵 누가 날 깨웠다.


누구였을까. 내 볼을 콕 찌르시며

"여기서 뭐 해?"

라고 말하셨다. 비몽사몽 하며 나도 모르게 피곤해서 애교를 부렸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분명 여자목소리였다.

은연중에 생각했다.

여자 중에 날 깨울만한 얘가 있었나?

더구다나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과 동시에 싸함을 느껴서 고개를 들었다. 동아리 부회장 누나였다. 멍하게 누날 바라보자 누난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네가 감자돌이지? 폰이 없어서 누나가 데리러 왔어 가자!"

그러시면서 처음 동아리 가는데 부스스하게 가면 안 된다고 같이 조금 걸으며 잠 좀 깨고 가자고 하셨다.


따뜻한 날씨. 나의 이상형. 남자와 여자. 심지어 여선배. 햇빛이 비추는 거리.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바나나우유를 마시면서 교실로 향했다.


먼저 교실에 왔던 합격자 친구들은 파티를 하고 있었다. 1학년 2학년 3학년 다양했다. 난 인사를 했다.

"감자돌이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난 부원들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나에 대한 소문은 안 좋았을지라도 막상 나랑 대화를 해보면 다들 좋은 아이로 생각해 주셨다.

누나들은 날 이뻐하셨고, 나도 누나들이 좋았기에 매주 수요일이 기다려졌다.


혹시 아는가 사랑의 꽃이 필지.


매일매일이 스펙터클한 학교생활.


난 학창 시절 막사는 아이였다. 뒤가 없었고 매 순간을 즐겼고 충동적이었다. 애써 어두운 과거를 덮으려고 강해 보이려고 쾌활해 보이려고 밝아 보이려고 온갖 즐기는 척을 많이 했다. "억지로였다."

지금까지도 선생님 스승님 학생 선후배들이 날 기억할 정도로, 난 인상 깊은 사건들을 많이 저질렀다.


적기에 앞서,

지금은 회사생활을 하고 더 넓은 세상 다양한 분들을 보다 보니 옛날의 내가 어리석었구나 하며, 모든 학문 그리고 모든 생각, 의견을 존중한다.


그래도 과거는 지울 수 없기에, 나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입거나 기분이 상했던 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과거를 회상하고 이겨내려고 글을 쓴 거 기에,

여기에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을 나열할 순 없지만, 풀고 싶은 보따리가 상당히 많기에 순서 상관없이 풀어도 되는 사건들만 풀어보며 몇 개는 화가 진행되는 동안 간간히 적어볼까 한다.


난 명언을 좋아했다.

친가, 외가 어르신들이랑 아기 때부터 말씀을 듣고 커감에 따라 줄곧 대화를 해왔어서 좋은 말씀과 바른 마음가짐을 들으며 자랐다. 저러한 도움 때문에 20대 후반에 가까워짐에도 눈망울이 똘똘하고, 순수하고 유하다는 평을 받곤 한다.

그리고 애기 때의 난 명언제조기가 되고 싶어 했다. 멋진 말을 많이 들으면서, 내가 힘들게 뭔가 이루고 성를 해서 많은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주고 싶었다. 과거가 어둡고 현재가 힘들어도 내가 이겨냈듯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이걸 알려주고 싶었다.


많은 명언을 만들었지만 한 개를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감자돌이의 많고 많은 명언 중 1가지.

"탓을 왜 하는 거야? 물론 외적인 거? 타고나는 게 맞아, 바꾸기 힘들겠지, 그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겨, 그다음 지능? 똑똑한 사람 존재하겠지, 하지만 진짜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곤 누구나 공부하면 최정상은 아니지만 정상은 찍을 수 있어, 그리고 난 이게 참 아쉬워, 마인드. 외적은 바꾸려면 돈과 시간이 들잖아? 성형을 하든지 운동을 하든지, 마찬가지로 공부도 무수한 노력과 시간을 갈아 넣어야 하고, 그런데 마인드는 달라, 마인드는 공짜야. 네가 딱 마음만 먹으면 시간을 안 들이부어도 되고 1초도 안 걸리고 너의 마인드를 바꿀 수 있어, 근데 저 마인드가 곧 너의 모든 걸 바꾸게 된다니깐. 진짜 별거 아니야, 다만 사람들은 어려워한다고. 1초가 많은 걸 바꿀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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