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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새로 시작할 용기가 필요해요.

1-2

by 꾸니왕

민호는 오늘도 잘 맞지 않은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오른쪽 왼쪽으로 몇 번을 돌러서야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또 깜빡할 다짐을 한다.

"이 놈의 열쇠부터 비밀번호키로 바꿔야겠다."

가게를 구할 때부터 생각했는데 아직 열쇠를 들고 있다. 내일도 검지를 세운 채 열쇠고리를 돌리면서 걸어 올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헛웃음이 났다.

문을 열면 냉장고등 밤새 돌아갔던 전자기계에 내뿜은 후덥지근한 열기와 밤새 책이 내뿜은 냄새가 민호의 코를 자극했다.

"휴~ 덥다. 냄새야~"

민호는 왼손 엄지와 검지로 코를 잡고는 양쪽 창문과 양쪽 출입문을 열었다.

민호는 아직 각각의 냄새를 품기는 책들의 냄새가 익숙지 않았다. 그러나 별밤 책방에는 다른 책방과는 다르게 그 책들의 냄새들 사이에서 민호가 좋아하는 냄새가 코를 또 한 번 자극했다.

맥주 냄새다.

민호는 맥주를 좋아한다. 그래서 책방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부터 맥주를 파는 책방을 열어야겠다고 다짐했고 지금 여기 경남 양산시 동면 금오 6길 38 101호에 별밤이라는 맥주 파는 책방, 책 파는 호프집을 문을 열었다.

맥주를 파는 책방을 열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기 시작했을 때는 뭔가에 분명 홀린 듯 빠르고 기운이 넘쳤다. 책방이라는 도착점이 그를 출발점에서부터 전력질주를 하게 했다. 거기에다 맥주라는 에어가 달린 신발마저 신었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빠르게 도착점에 도착한 것이다. 그렇게 빠르게 도착점에 가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더 있었다. 민호가 2년 가까이 쓴 소설이 출간하게 된 것이다.

도착점에 도착하면 출간한 소설책이라는 메달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메달이 민호를 더 빠르게 뛰게 했다.

민호는 책이 출간되는 날을 개업일로 정하고 맞추었다.

야경이 멋지게 비추는 양산천을 따라 걷고 뛰며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반대쪽 2차선 도로를 넘어 깜깜한 동네에 별들이 내려와 앉은 것처럼 은은한 조명이 달린 가게는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 이목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며칠째 한 명도 찾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민호의 목에 걸린 메달은 처음부터 잘못 제작된 메달이었다. 족쇄가 되어 버린 메달은 조금씩 민호의 목을 조였다.

민호는 출간하고 책방만 열면 마치 한강 작가까지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축하해 주고 자연스럽게 책방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별밤 책방의 시계는 마치 같은 시간만 가리키는 것 같았다.

몇 달 동안 민호의 별밤 책방에는 문을 여는 시간과 닫는 시간만 있었다.

책 출간과 별밤 책방을 개업할 때 그렇게 축하해 주고 응원을 받았던 블로그도 별밤 책방의 시계와 같이 멈췄다.

몇천 명이 넘는 이웃들이 "책을 읽고 싶다. 사겠다." 했으며 "별밤 책방에 방문하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몇천 분의 일에 해당하는 이웃들만 책을 샀고 별밤 책방에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만 오픈일에 맞춰 찾아오고는 끝이었다.

그 블로그의 수많은 이웃들이 한 말과 응원 댓글은 단지 누구에게나 하는 댓글 그 자체였다.

별밤 책방의 문을 열고 족쇄가 목을 조여 오면 민호가 제일 먼저 찾는 것이 맥주였다. 민호는 몇 달 동안 별밤책방의 책들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맥주만 마셨다. 새 책이 사람의 손자국이 아니라 먼지가 쌓여 정상가격을 받고는 팔 수가 없을 정도로 책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별밤 책방의 신간코너에도 시간은 멈춰있었다.

민호는 그렇게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간 별밤 책방이라는 곳에서 족쇄를 채워 별밤 책방의 시계를 멈추게 했다. 별밤책방의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지 아직 두 달도 되지 않았다.


민호는 주방 구석에 놓인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니터에 붙은 노란 포스트잇을 하나씩 떼며 움직였다. 다른 사람이 보면 단지 지저분하고 무작위 하게 붙여놓은 것처럼 보여도 민호에게는 엄연히 차례가 있었다.

오늘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모니터 왼쪽 끝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떼어가면서 움직이면 오늘 우선 할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노란 포스트잇은 별밤 책방의 시계와 같이 돌아가며 뜯어져 갔다.

민호는 주류업체에 전화를 걸어서 생맥주 세 통을 주문하고는 테라스 어닝을 펴기 위해서 밖을 나갔다. 개업하고 처음으로 주문하는 것이다. 손님이 마신 것보다 민호가 마신 게 많았다.

어닝을 돌러서 펴고 접는 시간이 민호에게 유일하게 팔 운동하는 시간이었다. 반쯤 폈을 때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와 경쾌한 발걸음이 들러왔다.

"우진이 우진이 왔어요."

"넘어진다. 조심해 우진아~"

우진이가 멀리서 민호를 보고는 꼭 잡고 있던 어르신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우진이 우진이 왔어요. 짝! 짝!"

우진이는 그렇게 배꼽에 양손을 모으고 인사하고는 박수를 치며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20미터쯤 어르신의 모습이 보였다. 꾹 눌러쓴 오래된 하얀 중절모에 잘 안 보이지만 아마도 온화하게 웃으면서 걸어오고 있을 것이다.

별밤 책방의 시계 민호의 시계를 움직이게 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우진이 또한 그중 한 사람이다.

"어르신! 어서 오세요."

민호의 인사를 받은 김 씨 영감은 뒷짐을 풀고는 다 올라가지 않는 오른손을 배꼽 위쯤에서 흔들었다.


"우진이는 복숭아주스! 어르신은 밀크티! 맞죠~"

"김사장~ 이제 제법 장사하는 사람 말투가 됐어."

"네? 그럼 제가 전에는 어땠는데요?"

"그걸 몰라서 묻나? 어디 병자도 그런 병자는 없더구먼."

"하하하 병자요? 맞네 병자였죠."

"지금은 얼굴에 제법 살도 붙었고 인물이 살아나네 그려~"

"하하 고맙습니다. 다 우진이하고 어르신 덕분입니다."



별밤 책방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민호는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별밤 책방과 작가로서의 생활은 현실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부터 좌절감은 하늘 무서운지 모르고 올라갔고, 자존감은 바다 깊은지 모르고 가라앉고 있었다.

날씨마저 매일 술만 마시고 움직이지 않고 있던 민호의 얼굴을 좀 더 병자처럼 시꺼멓게 태울만큼 몇 일째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내던 민호는 다른 날처럼 한 손에는 500cc 맥주컵에 거품하나 없이 가득 채운 맥주를 들고 서서 별밤책방 통창으로 보이는 양산천 둑길을 쳐다보고 있었다.

도로건너편에는 폐지로 가득 채운 리어카를 정차시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노인과 노인보다 더 큰 아이가 보행자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지친 구석이 가득했는데 아이는 뭐가 신났는지 박수를 치며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자 아이는 박수를 치며 폴짝 뛰면서 노인을 뒤로한 채 별밤 책방을 향해 뛰어 왔다. 아이는 아마도 민호가 쳐다보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민호는 아이의 행동이 궁금했다. 민호는 뒤로 빠져 주방구석에 있는 책상에 앉아서 아이의 행동을 지켜봤다.

아이는 통창 앞에서 책들이 쌓인 한쪽 벽면을 뚫어져라 쳐다 보고 박수를 치고는 노인을 쳐다보고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힘들게 리어카를 끌고 별밤 책방 앞에 도착한 노인은 리어카를 앞으로 눕힌 채 세우고는 아이를 부르며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부르고 오라고 손짓을 해도 아이가 오지 않자 노인이 직접 별밤책방까지 왔다.

민호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일어나서 문을 열고 아이가 있는 쪽으로 갔다.

"들어와~ 들어와서 구경해~"아이는 민호의 말에 뒷걸음을 치며 노인의 곁으로 갔다.

"아이고 미안해여. 애가 책이라면 환장을 하이 이런다오."

노인은 미안해하며 굽은 허리까지 숙여가며 사과를 했다. 민호는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미안해할 것이 뭐가 있어요. 들어와서 책 구경하고 가도 됩니다."

민호는 그렇게 말을 하고 아이에게 들어가라고 고개를 출입문쪽을 가리키며 까닥 그렇다.

아이는 민호의 행동을 한번 보고 노인을 한번 쳐다보고는 "책! 책! 책!"을 외치며 박수를 쳤다.

"안됩니데예~ 이놈아가 책에 한번 빠지면 하루 종일 책만 붙들고 있어서."

"그러면 좋지요. 안 그래도 손님도 없는데 저랑 같이 종일 책보죠 뭐~"

"그래도 됩니까? 여긴 술도 팔고 그란다 하던데 우리 애가 앉아있어도 장사하는데 방해가 안될까?"

"아이고 괜찮습니다. 그리고 손님도 없어요. 손님 안 들어온 지 꽤 됐어요. 저도 별로......."

"그라믄 애 잠시만 맡기고 내 후딱 집에 가서 리어카만 놔두고 좀 씻고 와도 되겠는교?"

"그럼요. 천천히 와도 됩니다. 문 닫기 전에만 오시면 됩니다."

노인은 그제야 아이의 손을 놓으면서 손짓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아이는 또 박수를 치면서 폴짝 뛰면서 별밤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이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앞에서 서서 검지를 이 책 저 책 가리키다 박수를 치고는 폴짝폴짝 뛰고 했다.

"뭐 좀 마실래 뭐 좀 줄까?"

아이는 민호의 말에 민호를 쳐다봤다.

"우진이 우진이는 복숭아! 복숭아!"

"복숭아? 복숭아 쥬스?"

대답이 없었다. 아이는 다시 책장을 가리키며 박수를 치면서 똑같은 행동을 했다. 민호는 복숭아 쥬스를 한 잔 가지고 아이옆에 섰다.

"자~ 저기 앉아서 마셔~"

아이는 그래도 말은 잘 들었다. 민호가 가리키는 자리에 얌전하게 앉아서 복숭아쥬스를 빨대 꽂아 한번에 쥬스가 없다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마셨다.

"시원하니? 너 이름이 뭐야?"

"우진이 우진이 13살 13살."

"그렇구나! 우진이 책 좋아하나 보구나? 읽을 책 골라서 읽어!"

우진이는 민호를 한번 쳐다보고는 책장의 거의 꼭대기에 꼽힌 책을 가리켰다. 우진이의 검지를 따라간 곳에는 '고구려'라는 책이 1권~6권까지 놓여 있었다.

'김진명의 고구려를 네가 읽는다.' 민호는 혼자 의아해하며 고구려 1권을 꺼내어 우진이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우진이는 박수를 치며 앉은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민호는 다 마신 500cc 잔에 다시 거품하나 없이 따랐다. 민호가 별밤 책방을 열고 늘어난 것은 생맥주 거품 없이 따르는 것뿐이었다. 민호는 맥주를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검색창에 '그래서 사랑하나? 그래도 사랑한다!'를 쳐 본다. 똑같다. 어제와 두 달 전과 똑같았다. 늘어난 서평은 없고 누가 읽었다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그래서 사랑하나? 그래도 사랑한다!'민호의 첫 번째 소설책이다. 민호의 족쇄가 되어버린 책이다. 출판사도 처음부터 특별한 홍보도 없었다. 그러니 누군가가 알고 구독할 일이 없었다.

우진이는 신기할 정도로 조용했다. 민호는 우진의 모습이 궁금했다. 민호는 곁눈질로 우진이의 모습을 봤다. 우진이의 표정은 정말 진지했다. 13살 아이가 그것도 조금 아픈듯한 아이가 저 책을 저렇게 집중해서 읽는다는 게 신기했다. 우진이의 책장 넘기는 소리에 민호의 눈은 우진이의 눈을 따라갔다.

민호는 우진이의 책 읽는 모습에 자신의 13살 때 모습이 겹쳐 보였다. 민호는 책이라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읽었다. 하루는 어머니의 불경을 읽은 적도 있었다. 항상 듣는 잔소리가 "책 속에 빠져 죽어라"라는 소리였다.

민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글을 쓰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책을 안 본지가 오래되었다. 사실은 자기 글이 최고라는 오만함에 빠져 있었던 것이었다.

민호는 우진이가 읽고 있는 '김진명의 고구려'책을 펼쳤다. 어떻게든 우진이와 연결되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펼치는 순간 우진이처럼 책 속에 빠지게 되었다.

민호는 이렇게 책 속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에는 도서관이 없어서 일요일 아침이 되면 버스를 1시간이나 타고 도서관 앞에 내리면 그렇게 설레고 심장이 빨리 뛰고 했었다.

다 읽지도 못하는 책들을 소북이 들고 책상에 앉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을 다시 찾는다면 이 족쇄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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