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해가 지고 어두컴컴한 것 말고는 열기는 낮과 별 다름이 없는 여름밤이다.
제아는 천이의 칭얼거림에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제아는 천이를 안고 한 손으로 목줄을 익숙하게 천이의 목에 돌렀다. 천이가 불편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목줄을 고정시켰다.
칭얼거리며 흔들던 천이의 꼬리는 산책을 기대하는 표정으로 빠르게 흔들고 있었다. 천이가 목줄을 당기며 앞장서자 제아는 그저 목줄을 붙잡고 천이가 이끄는 대로 길을 따라갔다.
천이는 양산천을 향해 경쾌하게 뛰다시피 하던 발걸음이 화려하게 반짝이는 조명 불빛 아래서 멈춰 서서 주변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제아는 천이의 눈과 몸짓을 따라 움직였다.
동네가 빈 상가도 많고 그나마 영업을 하는 상가도 7시만 되면 간판불마저 끄니 컴컴한 동네에 불빛이 화려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은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테라스에 있는 별 모양의 벤치가 참 이뻤다.
'별밤 책방'이라는 간판아래 '별밤 호프'라는 글귀가 사이좋게 붙어 있다. 책방에 맥주를 파는 것이 색다르다고 느꼈다. 제아는 매번 지나가면서 술친구가 생기면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들어가서 책을 읽으면서 맥주 한 잔 하고 싶었으나 그거는 제아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낯을 가릴 뿐 아니라 혼자서 뭔가를 할 수가 없었다. 매번 책방 안을 천이를 앞장 세워서 통창을 통해 훔쳐봤다. 가게 외부처럼 내부도 조명부터 테이블이며 책장까지도 깔끔하고 이뻤다.
내부를 힐끔 쳐다보다가 주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한 손에는 맥주잔을 들고 다니면서 가게를 어스렁 거렸다.
그 남자의 모습은 가게랑 너무 어울리지 않고 어색했다. 어딘가 아픈 사람의 얼굴이었다. 정확하게는 항상 술이 취해 있는 모습이었다. 몸에 비해 과하게 나온 배와 과하게 얇은 다리를 지니고 있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인남자에게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가 코를 통해 질식시킬 것 같았다. 항상 주인 남자가 고개를 들고 제아가 서 있는 통창쪽으로 바라보면 제아는 괜히 천이의 목줄을 잡아당겨서 벗어나곤 했다.
제아는 힐끔힐끔 별밤 책방의 내부를 훑어봤다. 그런데 가게에는 늘 그렇듯이 손님 한 명 없었다. 제아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을 보니 괜히 마음이 포근해졌다.
"천아 왜 그래?"
갑자기 천이가 목줄을 좌측으로 당겼다. 제아는 끌려가다시피 책방 좌측코너를 돌게 되었다. 제아는 천이의 목줄에 끌러 가니 주인 남자로 보이는 남자가 국민체조도 아니고 이상한 자세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코너에 있는 상가라 좌측테라스 끝쪽에도 문이 있었다.
"넌 누구니?"
주인 남자는 바닥에 풀썩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서 천이의 턱을 쓰다듬고는 목이 뒤로 제쳐질 듯이 위로 치켜들고는 제아를 쳐다봤다.
"... 아... 천이라고 해요."
"천이? 멋진 이름이네요. 짜식 멋지게 생겼다."
"여자인데요.."
"네?,,, 아.. 미안해요.. 이쁘게 생겼네! 천이"
주인 남자는 미안했는지 천이의 턱을 한 번 더 쓰다듬었다. 천이도 호응하듯이 몸을 주인 남자의 품에 비볐다.
"저기? 책방 주인이시죠?"
"네.. 그런데요?"
"몇 시까지 해요?"
"뭐~대충 11시까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네~ 천아 가자~"
천이는 주인남자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는 듯했다.
"가자~ 이 애가 또 왜 이래?"
제아는 좀 전과는 다르게 목줄을 세게 당겼다. 천이는 끌러가면서도 뒤돌아서 힐끔힐끔 주인남자를 쳐다봤다. 제아는 천이와 주인 남자를 한 번씩 번갈아 쳐다봤다. 어딘가 모르게 표정이 둘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주인 남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다가오지도 못하고 어색하게 다시 이상한 포즈를 한 채 제아를 쳐다보는지 천이를 쳐다보는지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제아와 눈이 마주쳤다. 제아는 무슨 용기인지 주인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기 사장님~ 저랑 양산천에 산책 갈래요?"
"산책요? 저랑요?"
"네~ 아... 아.. 니예요 가게 봐야 하죠? 죄송해요 제가 쓸데없는 소리를.."
제아는 금세 빨개진 자기 뺨을 뭉크의 작품인 절규의 모습처럼 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주인 남자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소 짓는 얼굴을 했다.
"잠시만요. 제가 문 좀 닫고요. 그리고 뭐 마실 거라도 가져올까요?"
"아니요. 마실 거는 됐어요."
주인남자는 조금만 삐끗해도 넘어질 야윈 다리로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우측문, 좌측문을 잠그고 검은 모자를 챙겨서 쓰고는 밖으로 나왔다. 제법 야구모자가 어울린다고 제아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