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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옷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가을의 햇살이 어느새 초겨울의 한파로 바꿨다.
별밤책방에도 첫겨울을 준비할 때가 된 듯했다. 민호는 출입문 옆에 있는 노란 집이 유난히 춥게 보였다.
"천이 집에도 보일러를 깔아 줘야겠다. 하하"
민호는 혼잣말을 하고 혼자 웃었다. 민호는 격렬하게 자기를 반기는 천이가 보이지 않자 오늘이 주말인 것을 알았다.
민호는 오늘 마음먹고 책을 읽기로 했다. 민호는 항상 책을 한 권씩 시켜서 읽어보고 입고를 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했다. 누구의 의견도 잘 듣지 않았고, 베스트셀러 책들이라고 다 사지 않았다. 출판사 서평도 보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의 책소개도 보고 해서 몇 권을 한 권씩 시켰다. 그렇게 읽어보고 신간 매대에 놓을 책을 골랐다. 별밤책방의 신간 매대는 절대적으로 민호의 주관적 입장으로 진열된 것이다. 신간 매대이지만 5년 전에 출판된 책도 있고, 심지어 고전책들도 있다. 별밤책방의 신간은 출판 날짜와는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책방지기 민호의 주관적으로 입고되는 날짜대로 신간이다. 어쩌면 별밤책방이 장사가 잘 안 되는 이유도 이것이 한몫하는지도 모른다. 그 유명한 베스트셀러책들이 한 권도 없을 때도 있었다. 민호는 별밤책방을 찾는 손님들에게 맞춤 책을 준비하는 게 우선이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제아뿐만 아니라 봉우가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읽었다. 제아나 봉우가 읽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책들이다.
민호는 입고할 책들을 주문하고는 다시 한번 더 확인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켄 일구나스의 '봉고차 월든'을 주문완료라는 메시지를 확인하고서야 책장 위 벽시계를 봤다.
별밤책방의 시계가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2시가 넘었는데 책장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을 우진이가 보이지 않았다. 민호는 오늘이 주말이다는 것을 다시금 떠오르게 되었다. 주말에는 별밤책방의 시계 초심은 빠르게 돌아갔다가 늦게 돌아가곤 했다.
"똑~똑~" 제아가 들어오지 않고 테라스에 서서 통창을 뚜드렸다. 제아는 민호와 통창을 통해 눈이 마주치고서야 천이를 묶어두고는 들어왔다.
제아는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는 노트북을 켜 놓고 민호에게 왔다.
"주말인데 좀 더 쉬고 나오시지?"
"괜찮아요. 많이 쉬었어요. 저 따뜻한 바닐라라테 한 잔만 주세요."
"네.. 근데 회사 적응하는 건 좀 어때요? 매번 물어보려 했는데 괜히 부담 줄까 봐? 이제야 묻네요."
"문제없어요. 민호 씨가 처방해 준 약 덕분에 아무 문제없어요."
"제가 무슨.. 약?"
제아는 노트북옆에 놓인 '출근길의 주문'이라는 책을 가리켰다.
"이번 약도 딱 잘 들었어요. 아픈 게 싹 없어졌어요."
"다행이네요. 자리에 가서 계세요. 바닐라라테 갔다 드릴게요."
"네~ 의사 선생님 잘 부탁합니다."
제아는 자기의 농담에 자기가 놀라서 볼부터 귀까지 빨개지기 시작했다. 제아도 자기가 하루하루 너무나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하하 네~ 환자분 자리에 가 계세요."
바닐라라테가 나갈 때쯤 봉우가 들어왔다. 민호는 봉우만 출근하면 습관적으로 벽시계를 봤다.
"봉우야~ 이제 3시야. 왜? 왜 벌써?"
"아... 오.. 늘은 할.. 게 있어서."
봉우는 구석자리에 앉아 있는 제아 맞은편에 앉았다.
"봉우 씨도 시켜요. 저는 바닐라라테 시켰어요."
"하.. 하.. 그럴까요.. 음.. 저. 도 바.. 닐라라 떼먹죠."
봉우는 바닐라라테 한 잔을 들고 오는 민호를 쳐다봤다.
"이건 무슨 그림이지. 두 사람 혹시? 두 사람 뭐지?"
제아는 민호의 말에 눈웃음으로 대답하고는 봉우 쪽으로 노트북 화면을 돌려서 뭔가를 보여줬다.
우진이는 신이 났다. 오늘만 벌써 시계를 보면서 손뼉 치고 폴짝폴짝 뛰는 행동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그냥 고기 드시자니깐 뭔 돈가스에 낮부터 맥주 한 잔 하자고 그래요? 맥주도 싫어하시면서?"
"그 집 돈가스 맛있어. 그리고 가보면 너도 좋아할 거야. 그렇지 우진아."
우진이가 다시 손뼉 치며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우진이 우진이 돈가스 좋아한다. 맛있다. 맛있다. 엄마 엄마 맥주 맥주."
"애는 내가 뭐 맥주 좋아한다고 이러니?"
김 씨 영감은 우진이의 손을 잡고 앞장서서 별밤책방으로 향했다. 연우는 그 뒤를 한 손에 핸드폰은 든 채 팔짱을 끼고 따라 걸었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3시가 조금 넘었는데 멀리서 은은한 조명이 빛나는 것이 보였다.
'이런 곳이 있었나?'연우는 혼자 생각하면 팔짱을 풀었다.
금빛 큰 별아래 '별밤책방'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책방? 책방에서 맥주를?' 연우는 신기했다. 별밤책방이라는 간판이 보이자 우진이는 김 씨 영감의 손을 놓고 뛰기 시작했다.
별밤 책방 앞에는 '술 파는 서점''책 파는 술집'이라는 두 개의 입간판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딸~랑" 경종소리가 별밤책방 주변까지 울렸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저씨"
우진이는 문 앞에서 배꼽에 손을 놓고는 민호에게 인사를 하고는 구석테이블에 있는 제아와 봉우에게도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우.. 진이 안녕." 봉우는 늘 그렇듯이 우진이의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제아는 양손을 흔들었다.
우진이가 인사를 하고 우진이 자리에 앉을 때쯤 민호는 고개를 돌려 출입문쪽을 봤다. 멀리서 김 씨 영감님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주말인데 어떻게?"
"아~ 오늘은 3명이야."
김 씨 영감님의 표정이 너무 밝고 해맑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우진이의 표정과 닮아 보였다. 김 씨 영감은 봉우와 제아에게도 손을 들어 인사를 받고는 우진이 앞에 앉았다.
"딸~~ 랑"
경종소리에 민호와 제아, 봉우의 시선은 일제히 출입문쪽을 향했다. 우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엄마 엄마"를 외쳤다.
연우는 책방을 훑어보고는 우진이 옆에 앉았다,
"봐라~ 내가 분위기 좋다고 했지."
"그렇네요. 근데 아버지 무슨 책방에 술을 팔아요?"
"술 파는 책방이야. 저기 안경 낀 사람이 사장이야? 어때?"
"뭐가요?"
"저 사람이 저렇게 보여도 작가야. 그리고 약사야 약사. 하하하"
"약사요? 약사가 왜? 책방을?"
"하하 일반 약사가 아니고 책으로 사람 마음을 치료해 주니 약사지. 사람이 참 착해."
"아버지는 다 착하데. 그리고 그런 게 어딨어요."
"진짜 맞다니깐."
"됐어요. 그럼 아버지는 무슨 약을 받았는데요."
"나 저기 저 약들."
김 씨 영감은 애들이 보는 그림책과 동화책이 있는 책장을 가리켰다.
"아버지도 참~. 주문이나 하세요. 뭐 드실 거예요?"
김 씨 영감은 자리에서 끝까지 올라가지 않는 손을 들고는 민호를 불렀다.
"김사장~ 우리 등심돈가스 하나랑 새우튀김 하나랑 맥주 두 병 만 줘. 우리 딸이야~이쁘지."
"네.."
민호는 어색하게 목례를 하고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언제 주방으로 왔는지 봉우가 주방에 있었다.
"제.. 가 할게요."
"아니야 내가 할게. 저기 가서 쉬어."
"제.. 가 하겠습니다. 앉아 계.. 세요."
"돈가스랑 새우튀김은 내가 할 수 있어. 왜 그래?"
"제가 하.. 고,, 싶어서 그래요."
"그래? 이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