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봉우는 돈가스를 튀기며 은근슬쩍 힐끔힐끔 연우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민호랑 눈이 마주치면 아무렇지 않은 척 돈가스를 튀겼다. 환풍기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책방에 돈가스 냄새가 살짝 나기 시작할 때쯤 경종이 울렸다.
"딸~~ 랑"
"어서 오세요."
"아저씨~안녕하세요." 우렁찬 여자 목소리 가을이다.
"가을이 누나다. 가을이 누나다. 가을이 누나 안녕 하세요. 안녕하세요."
우진이가 벌떡 일어나 가을이를 향해 배꼽 인사를 했다. 가을이는 그 인사를 받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이 벌어진 채 어리둥절한 얼굴로 우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진이 안녕."
"가을이 누나 자리. 누나 자리."
우진이는 자기 자리를 가을이 자리라면서 비껴 주고는 김 씨 영감 옆에 앉았다.
"아니야. 우진이 앉아 누나는 여기 앉을게. 앉아."
가을이는 얼굴이 빨개지고는 제아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김 씨 영감은 오만하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봐아라~ 연우야 어디 우리 우진이가 자기 자리 양보하는 거 어디서 봤어?"
"그러게요. 신기하네요. 저한테도 한 번도 자기가 정한 자리는 양보를 하지 않는데."
"이게 다 저기 저 양반이 바꿔놓았는기라."
"설마요?"
"우진이가 맨날 와도 책을 읽게 해 주고 그랬다아이가 아마 우진에게 어울리는 책들을 읽게 했을 거다."
"...."
연우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가을이게 다가가는 민호를 쳐다봤다.
"가을이~ 왜? 얼굴이 빨개졌어?"
"뭐가요."
"뭐 줄까?"
"딸~랑" 경종이 울렸다. 민호는 무의식적으로 "어서 오세요"와 함께 출입문쪽을 쳐다봤다.
"여기~" 가을이가 손을 흔들면서 손님을 반겼다. 민호는 어쩐지 가을이와 닮은 듯 안 닮은 손님이 가을이 앞에 앉히기 위해 의자를 빼줬다.
"어서 오세요. 앉으세요."
"고맙습니다."
"아저씨~ 우리 생맥주 500 두 잔이랑 새우튀김 하나 해주세요."
"그래. 근데 둘이 닮았네. 자매라 해도 되겠다."
가을이는 어이가 없는지 눈썹이 위로 치켜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 제 동생 맞아요."
"그래. 어쩐지 닮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겨울이에요."
겨울이는 가을이와 다르게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조곤조곤 말했다. 민호는 가려다가 다시 겨울이 옆에 앉았다.
"겨울양 반가워요. 이름이 겨울이면 겨울에 태어났겠네. 하하하"
가을이는 좀 전과는 다르게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 입을 꽉 다문 채 또박또박 말했다.
"아저씨! 겨울이하고 저는요 쌍둥이입니다."
"쌍둥이?"
"네! 쌍둥이요. 그리고요. 심지어 저와 겨울이는 봄에 태어났어요. 그것도 4월 1일 만우절날요. 이름은 가을이고 겨울인데 봄에 태어났고, 그날은 만우절! 더 이야기 안 해도 되죠?"
"그래. 미안하다. 생일이다고 해도 아무도 안 믿어겠다. 미안~미안~ 그런 의미로 500cc 두 잔은 서비스."
"됐거든요. 장사도 안되면서 맨날 서비스래~"
오늘 별밤책방에 있는 사람들은 가을이와 겨울이의 생일이 만우절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위로 언니가 두 명이 있는 것과 이름이 봄, 여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깐 미순 씨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낳은 것이다.
"연우야~ 어때? 맛있지? 그래도 이 집 주방장이 자격증이 3개나 있어. 하하"
김 씨 영감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봉우를 쳐다보고 양손 엄지를 치켜세웠다. 봉우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돌아섰다.
"맛있네요. 새우튀김도 맛있고, 소스도 참 맛있네요."
"그렇지 그렇지 맛있지. 하하."
"새우튀김 나왔습니다. 겨울양~ 많이 먹어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네. 고맙습니다."
쌍둥이라 해도 가을이와 겨울이는 달랐다.
"근데요~ 아저씨?"
가을이의 특유의 말투에 "근데요~"는 민호를 뜨끔뜨끔 놀래게 했다.
"근데요~ 아저씨~ 고백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없어요?"
겨울이는 두 손을 가을이 입에 가져다 대면서 말렸다.
"야~ 왜 그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왜? 혹시 알아? 그런 책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렇죠 아저씨?"
가을이는 눈을 크게 뜨고 깜빡깜빡거리면서 민호를 쳐다봤다.
"없어. 그런 책이 어딨 어?"
"에이~ 겨울아 없데. 우리는 연애를 못하겠다. 매번 고백도 못하고..."
민호는 웃으면서 제아 앞에 앉았다. 제아는 민호가 앉자 노트북을 급하게 덮어버렸다.
"뭘 숨겨요? 아까부터 봉우랑 뭘 그렇게 열심히 해요? 그리고 내가 오니깐 급하게 덮고 섭섭한데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민호는 괜히 기지개를 켜면서 섭섭한 표정을 하면서 주방으로 왔다.
"연우야! 맛있지. 한 잔해. 하하하"
김 씨 영감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가을이와 겨울이의 "그냥 고백해.""싫어 떨려. 그러다 차이면 어떻게 해."귀엽게 실랑이하는 소리가 별밤책방을 채웠다.
"봉우야."
"네."
"너무 좋지 않냐?"
"뭐. 가요?"
"나는 별밤책방에서 조용하게 책 읽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좋은데 이렇게 사람들이 맥주 마시면서 시끌벅적하는 것도 너무 좋아. 안 좋아?"
"아.. 네.."
"그리고 한 뽕우!"
"네?"
봉우는 민호가 성을 붙여서 부르면 깜짝깜짝 놀라고는 했다.
"그러지 마."
"뭘.. 요?"
"매번 신간 매대에서 책 구매하고 그러지 마. 그러고는 손님이 구매한 척 그러지 마."
"그.. 거.. 는 제.. 가 책,, 을,, 읽고 싶,, 어,, 서"
"아닌 거 알아. 괜히 책방 매출 올리려고 그러는 거 알아."
"아,, 니.. 에,, 요"
"아니기는 너 말 또 많이 더듬잖아 당황하면 말 더듬는 거 다 알아."
"진.. 짜 인데?"
"진짜 기는. 그리고 봉우야. 책 많이 읽는 거는 좋은데. 네가 요즘 구매한 책들은 뒤죽박죽이야."
"네?"
"봉우야? 네가 어제 구매한 책의 내용은 쉽게 말해 '한 우물만 파라.' 그런 내용이야. 그런데 네가 3일 전에 구매한 책은 '오래된 우물은 마를 수 있다. 새로운 우물을 파라.'이런 내용이야. 알아? 그리고 지금 너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책들이야."
"아..."
""아"는 무슨? 너도 알고 있으니깐 읽지 않은 거 아니야? 그냥 가져와 환불 처리해줄게."
"괜.. 찮. 은.. 데.."
"괜찮기는 안 가져올 거면 출근하지 마. 그리고 식자재 사러 가서도 니 카드 긁지 마."
"네? 그.. 거.. 는.. 어.. 떻.. 게?"
민호는 대답하지 않고 책장 앞에 서서 책을 찾았다. 책을 한 권 꺼내 들고는 겨울이에게 갔다.
"이거 읽어 보고 고백 한 번 해봐."
겨울이는 요시다 아카미의 '리버스 키스'라는 책을 양손을 받고는 민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