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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별이 너무 아파요.

2-1

by 꾸니왕

"철민아~ 진짜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우와~ 눈 봐라"

철민이 침대에 누워 창밖대신 천장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 철민아."

"괜찮아. 연우야 잘 지내라."

곧이어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하얀 마스크를 낀 채 나타나 철민이를 끌고 갔다.

"철민아."

"연우야."

철민이 눈가에는 아직 흘려보내지 못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

"철민아! 가지 마!"

연우는 팔이 아팠다. 고개를 돌렸다. 베개에 묻은 축축함이 왼쪽빰을 타고 내렸다.

연우는 분명 꿈인 것을 알았다. 그러나 깨고 싶지 않았다. 10년째 겨울의 시작을 이렇게 알아차린다. 지독할 정도로 꿈은 똑같았다.

연우는 오늘이 며칠인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곧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고, 오늘부터 아마도 코트를 꺼내 입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 너도 참 지독하다. 아니야. 고마워."

연우는 꿈속의 너에게 혼잣말을 하면서 일어났다. 연우는 겨울이 싫었다.


"딸~랑" 경종 소리도 겨울을 알리는 것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어서 오세요." 봉우가 또박또박 인사를 했다. 민호는 조용히 일어나 출입문 쪽을 봤다.

아이보리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를 살짝 만지면서 수줍게 인사를 하면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저.. 우진이 엄마인데.. 알겠어요?"

"아~ 네. 죄송해요. 제가 못 알아봤네요. 이놈의 안경을 바꿔야 하는 건지. 너무 이미지가 다르게 하고 와서 그런지. 못 알아봤어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민호는 넉살 좋게 고개 숙이며 사과를 했다.

"괜찮아요. 저 여기 앉아도 될까요? 혼자 왔어요."

"네. 네.. 그럼요."

민호는 대답과 함께 바 테이블 위에 지저분하게 놓인 책들을 치웠다. 연우는 코트를 벗고는 옆의자에 놓고는 민호를 마주 보고는 앉았다.

"코트 주세요. 옷걸이에 걸어 놓을게요."

"괜찮은데. 고맙습니다."

연우가 내미는 코트를 봉우가 낚아채 듯 받고는 옷걸이 걸었다.

"근데요. 출입문에 이쁘게 붙여놓은 거 뭐예요? 무슨? 모집한다고 되어 있던데?"

"아~ 그거요. 자주 오는 여학생이 있는데요. 아니지 아가씨가 있는데요. 그 친구가 붙인 거예요. 맞다. 그때 옆테이블에 앉은 친구들 기억나요. 쌍둥이."

"네. 그럼요. 가을이, 겨울이 맞죠. 우리 우진이가 가을이를 위해 처음 자리 양보하는 것도 봤는데 기억하죠."

"맞아요. 그 친구들이 별밤책방 매출을 위해. 하하하"

"얼핏 보니깐 B&B를 사랑하는 사람을 모집한다고 적혀 있던데요? B&B가 뭐예요?"

"하하 BOOK & BEER 라네요."

"그래요. 그럼 저는 안 되겠네요? 저는 BEER만 사랑해서."

"아이고~ 괜찮습니다. 가을이 그 친구는 아마 더 싫어할 거요?"

"하하. 그럼 저도 가입할게요. 신청서 주세요."

"신청서? 아직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성함하고 전화번호만 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그래요. 저는 이연우이고요. 010.8888.0000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근데 뭐 드릴가요. 아직 주문도 못 받고 이렇게 제가 아마추어 티를 팍팍 냅니다."

"말씀을 참 재미있게 하네요. 저 맥주 한 병하고 새우튀김 주세요. 소스 많이 주세요."

"네"

"아~ 그리고 컵은 혹시 종이컵 있으면 종이컵으로 주세요."

"네? 무슨 종이컵?"

"일회용 종이컵. 없으면 그냥 아무 컵이나 주세요."

민호는 주방아래에서 종이컵을 잡히는 대로 뺐다.

"이 컵요? 제가 믹스커피 타 먹으려고 갖다 놓았는데 이렇게 쓰네요."

"죄송해요. 참 별나죠."

"괜찮습니다."


민호하고 봉우는 연우가 편하게 마실 수 있게 자리를 비껴 주었다. 주방 구석에 나란히 앉아서 힐끔힐끔 연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연우는 맥주 한 병을 다 마시고는 일회용 종이컵을 우겨 옆에 놓았다.

"사장님. 맥주 한 병만 더 주세요."

"네."

"그리고 종이컵 하나만 더 주세요."

"네."

맥주 한 병과 종이컵을 테이블 위에 놓을 때 민호와 연우의 눈이 어색하게 마주쳤다. 연우의 눈가에는 눈물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저기 민호 씨."

"네. 어떻게 제 이름을?"

"잘 알죠. 우리 아버지가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요. 그리고 저기 계신 분은 봉우 씨죠."

"아네. 어르신이 이야기했군요."

"민호 씨? 민호 씨는 겨울을 좋아해요? 저는 겨울을 너무 싫어해요."

"저는....."

"겨울만 되면 그놈이 생각나요. 미치듯이 보고 싶어요. 벌써 10년이에요."

"....."

연우는 눈물이 턱까지 타고 내려서야 자기가 울고 있는지 알았다. 민호는 티슈를 든 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고 있었다. 티슈를 뒤늦게 테이블에 놓았다.

"죄송해요.. 제가 미쳤나 봐요. 왜 이러지?"

"...."

연우는 새 종이컵에 맥주를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민호는 조용히 테이블에 구겨진 헌 종이컵을 치웠다. 민호는 궁금해졌다.'왜? 종이컵에다 맥주를 따라 마실까?' 민호는 궁금함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민호 씨? 민호 씨는 크리스마스가 좋아요? 저는 크리스마스가 너무 싫어요."

"....'

연우는 맥주를 한 잔 마시고는 종이컵을 또 구겼다. 민호는 조용히 새 종이컵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죄송해요."

"아닙니다. 많습니다. 얼마든지 구겨도..."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미쳐버릴 것 같아요? 어떻게 할까요?"

"그게 제가 어떻게? 그냥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시는 게 어떨까요?"

연우는 맥주를 한 모금하더니 눈을 감았다.

"저는요......."

"..."

"민호 씨? 민호 씨는 꿈이 원래 작가였어요?"

"아니요...."

"그럼? 꿈이 뭐였어요?"

"그런 거 없었어요."

민호는 괜히 민망한지 머리를 긁으면서 봉우를 쳐다봤다. 봉우는 연우의 뒷 이야기를 궁금했는지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아 있었다.

"저는요.. 꿈이 두 개였는데요.. 하나는 미스코리아였고요.. 하하하"

"미스코리아요? 나가도 됐을 것 같은데요."

"에이~~"

연우는 오른쪽 앞머리를 넘겨 이마를 민호의 얼굴 앞에 갖다 댔다.

"보여요? 이 상처?"

"안 보이는데요. 없는데요."

"자세히 보면 있어요."

연우는 희미하고 아주 작은 상처를 검지로 가리켰다.

"아무튼 어릴 때 다쳐서 이 상처 때문에 미스코리아는 포기했어요."

"그럼 두 번째 꿈은 뭔데요?"

연우는 맥주를 한 잔 마시더니 다시 종이컵을 구겼다. 민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구겨진 종이컵을 치우고 새 종이컵을 놓았다.

"두 번째 꿈은 그놈하고 결혼해서 같은 날 죽는 거였어요. 근데 그놈이 먼저 갔어요."

"죄송하지만 그놈이라면 우진이 아빠?"

"아니요. 그놈은 아주 나쁜 놈이고요."

"네?"

"우진이 아빠라는 놈은 나쁜 놈이고요. 그놈은 제가 사랑했던 놈이고요."

"네.."

민호는 그놈, 나쁜 놈을 백 프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봉우는 혼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놈이 먼저 하늘나라 갈 때 저는 두번째 꿈의 반은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근데.."

"...."

"몇 번이고 죽을라고 했어요. 근데 그게 쉽게 안되더라고요. 그리고 그놈은 내 대신 어머니를 데리고 갔어요."

"네?"

"나쁜 놈. 그 이후로는 죽을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서요."

민호는 앞뒤를 잘라 이야기하는 연우의 말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민호를 보고는 답답한지 연우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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