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 일은? 내가 너의 친구로서 니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 봐, 니가 괜찮다고 그렇게 이쁘다고 한 니 파트너 모시고 왔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그날 그 미팅을 하고 오면서 사고 났는데 그 파트너를 자랑스럽게 모셔왔단다.
'눈치 없는 게 인간인가?'나는 말자를 한번 쳐다본다.
말자는 미자를 쳐다보더니 따라 나오라고 손가락을 깔딱거린다.
미자는 끌려나가는 거 같아 보인다.
애처롭다.
미자가 무슨 잘못이다고? 잘못은 저 눈치 없는 철수 새끼 잘못이지.
“근데 니 진짜 괜찮나? 말자 가시나가 왜 있노?”
철수가 내 다리를 쓱 만지며 다친 거보다, 말자랑 있는 걸 더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것처럼 물어본다.
“이름이 말자야? 나는 너그 누나인 줄 알았다. 왜 그리 늙어 보이노?”
철수는 또 눈치 없이 까분다.
“맞제 내가 봐도 선영이 니가 훨씬 귀엽고 이쁜 것 같다. 맞제? 둘이 잘해봐라. 그날 손도 잡고 뭐 뭐 서로 입도 뭐 뭐 하드만?”
“미친놈아 입은 무슨? 그리고 니 까불고 다니는 거 보니깐 너그 아버지한테 덜 맞았나 보다.”
선영이는 나를 아래위를 훑어본다.
그러더니 편지를 환자복 주머니에 넣는다.
“근데 내 자주 병문안 와도 괜찮제? 아까 그 말자라는 애랑은 아무 사이 아니제?”
가만히 있으면 욕이라도 안 들을 거를 철수는 또 까불면서 나선다.
“아무 사이도 아니다. 음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낸 뭐 가족 같은 사이, 국민학교 때 짝지였다. 내랑 미자 사이랑 똑같다고 보면 된다.”
“맞나? 그라면 내 자주 올게. 우리 집 여기서 가깝다.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자주 올게. 도시락 사 올게. 김밥 좋아하나?”
“응~김밥 좋아한다.”
또 생각 없이 나는 대답한다.
이놈의 입이 문제다.
그래 문병 온다는데 뭐 어때 나는 편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미자가 뭔 소리를 들었는지 들어오더니 철수랑 선영이를 데리고 나간다.
“우리 갈게. 치료 잘 받고 있어라.”
“와 이라노? 가시나야 왜 이리 빨리 가려고 그라노?”
미자가 급하게 손을 흔들고 나가면서 철수와 선영이를 끌고 나간다.
“니 미자한테 뭔 소리 했는데 애가 저리 가노?”
“아무 소리 안 했다. 사실대로 말했다. 지금 너그 집 사정하고 니가 지금 처한 상황을..”
“가시나야 니가 그걸 왜 이야기하는데?”
“그라고 한 번만 더 철수고 그 가시나 델꼬 오면 죽이뿐다 캤다. 왜!”
“와! 이 가시나 이거 완전 깡패네! 내가 말을 말자.”
“안녕. 나는 선영이야 기억하지? 다쳤다니 걱정이다.
내가 그때 조금만 더 같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때 게임이지만 뽀뽀한 거....”
나는 눈을 뜬다.
옆에서 말자가 편지를 읽고 있다.
내가 잠시 잠들었을 때 편지를 꺼내서 읽고 있다.
나도 잊고 있었다.
“가시나야 뭐하노 그걸 니가 왜 읽노?”
“으이구 정신 좀 차려라.”
편지를 머리에 던지더니 나간다.
순간 엄청나게 미안함이 몰려온다.
“말자야~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다.”
“아니다. 내가 니 허락도 없이 편지 읽은 게 잘못이지.”
“근데 니 내가 안 밉나? 내 같으면 꼴도 보기 싫을 거 같다.”
“니 억수로 밉다.”
“가시나 거짓말 하네. 니 내 억수로 좋제? 으흐흐”
“변태가? 변태처럼 웃지 마라. 니 옛날에 기억나나? 산동네 살 때, 아마 4학년 겨울방학이었을 거야.”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노?”
“그때 우리 엄마 춤 바람 나서 우리셋을 너그집에 맡기고 밤에 오고 그랬거든, 그때는 언니들도 우리랑은 안 놀아 줬는데 니가 항상 우리 셋을 데리고 다녔다.”
“우와 그거를 기억하나? 가시나 기억력 좋네. 나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하루는 내가 말숙이하고 동식이를 빨랫줄로 묶어서 줄잡고 니 졸졸 따라 당겼는데.”
“하하 맞다 그거는 내 기억난다. 비엔나 소세지처럼 하하.”
“그쟈! 아무튼 말숙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랬는데 내 아직도 그 오빠 기억난다. 개똥이 오빠!”
“개똥이 행님 중학교 가서 만났다.”
“말 좀 끊지 마라. 아이씨~ 안 할란다.”
“알았다. 안 끊을게.”
“그 개똥이 오빠가 우리 보고 아빠는 없고, 엄마는 춤 바람나서 집에도 안 들어오는 거지새끼들이다고 놀렸는데 니가 아니다고 거지들 아니다고, 아빠는 배 타러 간 거다고, 막 대들다가 맞았잖아. 코피도 터지고, 그다음 날인가 또 그 개똥이 오빠야가 말숙이 바보다고 정신병자다고 놀려서 니가 또 싸워서 또 얻어터지고 했잖아. 그리고 저녁밥 먹다가 갑자기 개똥이 오빠 집에 찾아가서 말숙이 바보 아니고, 말자 거지 아니다고 싸우자고 고함지르고 동네 사람들 다 나오고 난리였잖아. 그 이후로 개똥이 오빠는 아무 말도 안 했지. 기억나나?”
“근데 말자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 똥 마렵다.”
“어이구! 옆으로 돌아 누워봐라 기저귀 채울게.”
그렇게 전쟁 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아버지가 다행히 합의금하고 모든 걸 잘 처리했다고 한다.
사실인지 날 안심 시키려 하는 건지 거기에 대해 아무도 말이 없다.
나는 그렇게 한 달 보름을 더 말자에게 몸을 맡긴다.
나는 말자에게 오직 의지하면서 지낸다.
말자는 이제 내 몸을 닦는 것도 여유롭게 하는 것 같다.
엄마가 갓난아기 다루듯이 한다.
나는 매번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지만 싫지는 않은 것 같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간호해 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것도 가족이 아닌 여자아이가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자한테 잘해야지 한다.
말자가 잘 때 살짝 쳐다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이쁘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떨리기도 한다.
키스도 하고 싶고 그렇다.
그럴 때는 꼭 말자는 내 손을 잡아 준다.
“이제 퇴원해서 작은 병원에서 치료받아도 됩니다. 아시는 병원 있으시면 그리로 가시면 됩니다. 없으시면 우리가 알아볼까요?”
“아닙니다. 의사 선생님! 애 아빠 아시는 분이 동네 정형외과에 있다 캐서 거기 입원하면 될 것 같아예.”
드디어 오른쪽 다리는 풀었다.
왼쪽 다리는 아직 많이 불편하다.
그래도 혼자 휠체어도 타고 화장실도 가고 너무 좋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집 근처 동네 병원으로 갔다.
여기 병원은 말 그대로 동네 병원이다.
분명 4인실인데 환자가 없다.
환자 이름표는 있는데 환자가 없다.
아무리 혼자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 간다 해도 아프기는 아프고 불편하다.
그러나 이제 말자도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
나는 말자에게는 참 미안하지만, 혼자 있자마자 공중전화부터 찾는다.
나는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어~ 병팔아 내다. 내 여기 밑에 병원으로 옮겼다. 306호다.”
“알았다. 내일 갈게.”
“야~ 근데 혼자 있나?”
“어.”
나는 끊는다.
몇 번을 더해도 병팔이가 받는다.
그래 아직 방학이 아니라 기숙사에 있나 보다.
혼자 있다 보니 말자의 고마움을 느끼는데 어떻게 된 건지 혜영이 누나한테 연락 못 한 미안함과 보고 싶은 게 더 큰 것 같다.
여기 병원에서는 내가 제일 중환자 같다.
의사 선생님 치료와 물리치료는 나만 받는 것 같다.
환자는 꽉 찼다는데 보이는 환자는 몇 명 없다.
여름방학이다.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병원이 천국인 것 같다.
에어컨 바람에 시원하고 나도 이제는 조금씩 목발을 짚고 다닐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여기 병원으로 온 뒤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친구들이 왔다.
말자가 없다는 거를 아는 거다.
병원 경비도 소홀하고 자유롭다.
병실은 거의 나의 독실이다.
환자들이 안 온다.
그래서 친구 놈들이 가끔 밤에 맥주도 사 오고 그런다.
여유롭고 좋다.
“야! 우리는 밖에 한잔하러 간다.”
철수랑 쥐똥이가 미자랑 선영이와 4명이 병문안 왔다가 병원 앞에서 한잔하러 간다는 거다.
그래 봐야 노래방에 몰래 맥주 사서 먹을 거다.
그렇게 한두 시간이 지났다.
밤 10시가 다 되었다.
병원 문 닫을 시간이다.
병실에 선영이가 온다.
“애들은?”
“애들 다 갔다. 내는 오늘 여기서 자려고 택시비도 없고, 애들이 그렇게 하라는데. 집에는 전화했어. 미자 집에서 잔다고 말했다. 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