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혼자만의 룰이 하나 있다.
세차를 맡길 때, 수리를 맡긴 차를 찾을 때,
그리고 콩이 미용을 마치고 데려올 때.
나는 늘 손에 무언가를 들고 간다.
음료수나 빵, 때로는 피로회복제나 과일.
그건 ‘더 잘 부탁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고마운 내 마음을 손에 쥐어 보여주고 싶어서 뭐라도 전한다.
감사는 말로만 끝내지 않아야 한다는 게 내 방식이다.
몇 년 동안 강아지의 미용을 맡기던 곳이 문을 닫았다.
새로운 곳을 찾아야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열세 살에 지병이 있는 강아지......
그런 이유로 거절당하는 경우가 처음부터 몇 차례 이어졌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그 걱정도 매우 이해가 됐다.
그래서 나도 더 조심스러워졌다.
몇 번 거절당하고 나니 미용실에 문의할 때마다
괜히 내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얘가 열세 살인데, 미용 예약 될까요…?”
그러다 네 번째 문의쯤, 흔쾌히 받아주는 곳을 만났다.
“네, 당연하죠! 언제 예약해 드릴까요?”
그 한마디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 말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까지 느껴졌다.
그 당시 얼마나 구세주 같았나 모른다.
그때부터였다.
강아지를 맡길 때마다 작은 선물을 챙기게 된 건.
고맙습니다, 하고 말로만 끝내기엔
그 마음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마음 놓고 콩이를 맡기고 저는 편히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이 말을 조금 더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다.
세차를 맡길 때도 마찬가지다.
차를 돌려받을 때마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셨구나’ 하고 느껴진다.
그 꼼꼼함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뭐라도 건네고 싶어진다.
나는 원래 그렇다.
감사는 행동으로 완성된다고 믿는다.
아빠에게 배운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어릴 적,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어디 다닐 땐 빈손으로 다니지 말아라.”
그 말이 마음에 깊이 자리 잡았다.
지금도 아빠는 여전히 그러시고, 나도 그렇다.
내가 그렇게 작은 것을 건네는 건
그분들이 자기 일을 조금 더 뿌듯하게,
더 많이 보람됨을 느끼셨으면 해서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시작된 책임감과 정성이
그저 지나가지 않고, 다시 돌아가길 바라서다.
그분들이 스스로를 더 대견하게 여길 수 있기를.
그렇게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순간,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그리고 그 마음을 나눌 때,
나는 언제나 조금 더 많이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