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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가 잘 되는 곳

(18) 엄마 아버지 자식새끼

by 블라썸도윤

동인천역 북광장의 야외 아이스링크장에 반려견 태양이는 집돌이 시키고 와서 추억 쌓기를 했다.


내 아이들은 어려서 많이 탔었고 나는 생전 처음의 경험이다. 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다니 우물쭈물 했지만 설레임도 섞여서 해야지 하는 다짐 때문인가 준비해 간 장갑을 끼고 헬멧을 쓰고 신발마저 신으니 자동으로 일어서 지더라. 걷기도 저절로 자연스럽다. 나무판을 깔아놔서인 듯


별거 아니네 싶어 여기서 자신감이 생겨 링크장을 평탄화시킬 동안 마룻바닥을 부지런히 걸었다.


줄 서서 남녀노소 즐겨 타는 데 칸막이 해 논 썰매장은 운동화 신고 들어간 이들이 찍찍직 넘어진다. 설마 하고서 처음 맛본 스케이트를 두 발짝 띄고 벽 잡고 서 있다가 또 두 발 띄고 멈추면 알아서 쭈욱 미끄러져 나갔다. 앞으로 숙인 몸이 뒤로 넘어가려 하면 넘어질 것 같아 계속 수그려 주었다. 남들 열 바퀴 돌 때 한 바퀴 돌며 초보여서 스텐으로 된 보조기구를 믿고 타는데 이것이 더 미끄러워 치우고서 큰아이 허리 잡고 하다가 둘이 같이 넘어졌다. 안 넘어질 수가 없군. 팔자걸음으로 조금씩 빙판을 밀면서 순간순간 벽을 잡거나 한 손으로 가족의 손을 잡고 타는 게 제대로 원을 타며 돌 수 있다.


어릴 때 율목동 고모네 오빠들은 스케이트 타러 가고 나는 고모집 다리 삐뚠 의자 밑에서 동화책에 빠졌다. 아버지가 위험하다고 염려를 많이 해주셔서 스케이트를 타러 못 가고 학교 운동장의 미끄럼틀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과보호 같은 염려 때문이 맞다. 그래서 지금도 고소 공포증이 심하고 계단 사이가 뚫린 곳은 심장이 먼저 벌렁벌렁 돼서 올라갈 수가 없다. 그 바람에 책만 많이 읽었지 기구나 운동에 아주 둔해서 체육이 너무 싫었다. 달리기는 죽기 살기로 뛰어서 반에서 항상 2등 안에 손도장을 찍어 왔는데 다른 운동은 아주 미련 맞다. 그런데 아이들은 날 닮지 않아서 스포츠에도 실력을 낸다.


사위도 잘 타고 그런데 이곳을 비잉 둘러보니 내가 최고 연장자였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팀에 앳된 노친네는 나 하나다. 연극 보러 다닐 때도 나만 노인 측이고 그래도 나는 청춘 같고 일반 아줌마로 착각하며 다닌다. 이런 이유가 하나 더 있다면 아이들이 노니는 곳을 어른들도 같이 즐기기 때문이리라. 동물원 구경, 모이를 손에 놓으면 새들이 쪼러 모여듦의 흐뭇함 등등 나이와 상관하지 않는다.


점심으로 월남쌈을 맛있게 마는 중에 내 또래 두 명은 손주를 업고 음식을 먹는데 두 아이 다 우는 것을 보고서 나의 오늘과 상반됨을 느꼈다.


이런데 올 수 있다는 것이 아가씨 같고 아이 같아지고 흥분이 된다. 설렘으로.


타봤다. 스케이트


그리고 모르는 이끼리 넘어지려고 하면 서로 웃으면서 잡아주는 게 기분이 널럴하게 좋았다. 이렇게 하자는 주동자가 없어도 협동심과 미소가 번지니 응원봉이 없는 단체 모임 같았다. 나만 땀이 안 나고 내 가족과 그곳의 사람들은 죄다 덥다고 했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협동심이 강하고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이 베어있는 조상대대로의 기본이념 때문 아닐까. 잘 놀다 왔다. 나를 위해 싱싱 달리는 큰아이의 도움을 받아 나도 탈 줄 아는 게 세상을 뜨기 전 악바리 같은 몸부림 아니었을까.



극한 직업으로 얼음 얼리는 작업이 춥고 디뎌보며 얼음 높이 재고 고되다는 방송을 봤기에 화천 물고기 축제도 다신 못 가듯이 여기도 못 올 줄 알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각얼음 장식물이 없어서였다. 이것마저 있었다면 그들의 수고가 많음을 생각해서 정말 나는 태양이처럼 집순이 하고 오늘 글도 없었을 게다.


집에 가는 길에 사위가 고급 스피커로 황가람 버전의 ‘나는 반딧불’과 노을의 ‘살기 위해서’를 틀어줬다. 라이브 카페에도 온 기분이다. 나무가 몇 번을 더 홀벗기를 만날 수 있을까? 현재를 충족하며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따르면 순리를 벗어나지 않고 편하다. 이 꼰대가 젊은이들과 어울림 이라니 감지덕지하다.


기분 전환을 제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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