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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시작되다

(10) 귀골스러운 됨됨이

by 블라썸도윤

매사에 잘 버티어온 내가 브런치북 1편과 2편에 올리지 못했던 글을 추가로 집념에 대하여 지금 바로 쓰고 있다. 글 쓰는 힘은 어제 사위네와 월남쌈 샤브샤브를 먹을 때 큰아이가 전해준 말.


“엄마, 오빠가 며칠 전에 그랬어. 장모님이 잘해주시고 그런 대우를 받는 사위는 아마도 나 하나일걸.


“이그 며느리 대봐라. 집 좀 치우라고 잔소리할 것 같은데.


“왜, 그래. 난 어머님이 좋아.


그리고 작은 아이가 식탁에 올려놔 준 몸보신약, 또 있다. 나를 응원해 주는 글벗지기 작가님과 내 글을 어디서인지는 몰라도 들여다봐 줄 어떤 이의 따스한 빛을 받아서 두 손으로 모으고 손끝을 타다닥 치기 시작한다.


어제 명리학을 내게 깨우침을 주신 여든 중반이 되신 스승님이 종로 영풍문고에서 책 두 권을 일부러 사다 주셨다. 다 알고 있어도 새로운 내용 한 개는 찾을 수 있다시면서 내밀어 주셨다.



사실은 이렇게까지 안 하실 분인데 이제는 진짜 제자로 받아들여 주신 거다. 진국이 나란 말이지.


인천공항 물류회사에서 남동생과 십여년 간 같이 법인회사를 운영했다. 수입을 해오는 나라와 우리나라의 시간 차이 때문에 나는 애써 잠을 참아야 했으며 주말이나 명절은커녕 길바닥 하다못해 침대에 누워서도 업무를 봤다. 대단하다. 내가 봐도 2인 몫을 두둑이 하고 있었다. 혀가 꼬부라져 가며, 화물을 싣지 않고 거짓말 시킨 기사로 인해 억울해서 펑펑 울기도 하고 잘 견뎌왔다.


책임감과 동생 회사를 살려야겠다는 의미가 강했기에 버팀 된 것이다. 말이 십년이지 때처럼 고생은 희뿌옇게 몸을 덮었었다.


우리나라 굴지의 삼성과 엘지는 기사님이나 중간 업체의 고통을 절대로 헤아려 주지 않는다. 기상이변과 차량고장 문제가 생겨도 이들 업체에서 힘 좀 있는 중견간부급은 나 몰라라이다.


남동공단이나 타지방 쪽에 있는 중소기업은 통화해서 다음날로 화물 도착 연기가 될 수 있지만 큰 회사는 안 먹힌다. 되려 클레임 걸어서 손해배상을 요청한다.


이렇게 물류회사의 고통을 견디는 중 엄니의 상을 당했을 때 나는 범한 ○○○ 회사의 기사처럼 쓰러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크게 갖고 있었다. 업체 직원 둘이 조문왔을 때 엄마한테 빌었다.


‘엄마, 나 소현이 결혼만 시키면 돼. 그러니 나 아직 쓰러지지 않게 해 줘.’ 속으로 간절히 읊었다.


그러고서 얼마 후 조문왔던 업체가 결국 부도를 낸 것이다. 내가 밤잠 못 자고 쉼 없이 매달렸고 그 업체 직원 관리까지 도맡아 했는데 물류단지가 시끄러웠다. 난 밥이 뭔가 더 신경을 쓰게 되니 회사를 일주일 기어 나왔다. 텅 빈 사무실에 나 혼자였는데 기가 막히게도 비성수기여서 그랬는가 다른 큰 업체의 일이 일주일간 잠잠했으며 도리어 기사님들이 우리 회사를 일어나시라며 응원해 줬잖은가. 내가 쌓은 공덕일까. 난 기사분들 상대로 그 많은 일들을 추진하며 어르고 추슬러서 견디기로 하지 않았는가.


내 핸드폰에 멋진 글과 사진이 빼곡히 있던걸, 십 년 전 내 커다란 책상과 어울림 되어 찍혔던 커피와 의자에 앉은 젊은 여성은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삭제한 것이 무지 아까웠다. 이 핸드폰 번호는 살아서 지금 전국 24시콜에서 이 번호를 이용하여 남동생이 일을 하고 있다.


한 달 마감과 계산서 발행 준비까지 해놓고 나의 보수가 채워지지 않아 나올 때 구미 담당 11톤 기사가 그랬다.


“자신감 있으시죠. 많으실 거예요. 되실 겁니다.


이렇게 한 마디의 위안을 받고 장거리의 출퇴근을 벗어났다.


쉴 수가 없는 성격 탓에 바로 이어서 여동생이 알려준 송도의 국제영어 유치원 청소 자리를 가게 됐다. 영종도 사무실에 있을 때 청소하시는 분들과도 인사를 자주 나누어서 청소 요령도 대강은 알고 있었기에 선뜻 다음날부터 실내화를 싸 들고 나갔다.


원장님 이하 영어 선생님들과의 인사는 매우 따시고 좋았다. 그런데 한 구역을 같이 하다 보니 여자들의 시샘인가 고참 행세를 부렸다. 청소하는 단순노동이지만 이런 곳에도 텃세하고 경찰직이었던 남편의 부인이란 걸 행색으로 내세우는데 하필이면 집 방향도 같은 전철역에서 헤어지는 게 아닌가. 속이 메슥거리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어서 이 십여일 만에 때려치우고 나왔다. 그만두고란 말보다 때려치우고란 말이 더 적절하다.


십년도 넘게 알게 된 철학원 원장님을 뵈러 갔다.


“저, 원장님처럼 명리학을 하고 싶어요. 될 수 있을까요.


“사주 지지 네 기둥이 철학자인데 왜 참고 있었는가?


이제 와서 알려 주셨다. 그래 늦지 않았어. 이 악물고 또 덤벼봐. 내가 무얼 못해. 생체실험 같은 잠도 이겨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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