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볕 드는 쪽에 머무른 향기
날이 찌뿌듯하니 따뜻한 차를 코 앞에 대고 싶다.
주말에 사위가 만수동의 반려동물 동반 카페를 가자고 제안해 와서 주말 힐링을 했는데 내가 살짝 꾸며놓은 거실에서 바깥을 바라봐도 좋겠건만 굳이 카페를 찾는 이유는 뭘까. 바깥에서 먹는 기분은 대접받는 느낌일까. 희한하게 남이 타 주는 커피는 왜 이렇게 더 맛이 당기는지 모르겠다.
잉어가 노니는 작은 연못에 눈에 끌리고 책들이 꼽아 있어서 북카페로 착각, 손에 잡아보지 못했던 영자로 된 좀 두꺼운 책들도 꾸밈만 해놔서 어깨가 가볍진 않았다.
작은 규모의 카페에 나름 분위기를 띠었는가 싶었는데 직원 복장을 한 대여섯 명의 얼굴빛은 티의 얼음조각처럼 냉랭해서 불편함을 느꼈다.
아이들이 말한다.
“주말에 일해서 짜증 나갔지.”
내가 되받아쳤다.
“주인장이 안 좋은가 보다. 직원 모두 일그러진 상이야. 편하지 않아.”
대낮인데 모기가 시커멓게 극성을 부리는 도중 라테 잔이 반 정도 남았을 때 매일 콜 하는 서현 씨가 연락했다.
- 언니는 좋겠어요. 사위가 어쩜 그렇게 실금하고 좋아요. 나도 언니네처럼 사위랑 어울리고 함익평 의사와 장모 사이처럼 편하게 지내고 싶은데 속상해서 전화했어요.
- 글쎄 이놈의 선주가 자기 신랑 앞에서 날 자꾸만 갈구는 거예요. 지하상가 다니더니 버렸어. 그래서 파진 옷만 사 입어. 백화점 옷으로 점잖게 입어. 그러니까 사진도 그딴 건 올리지 말어.
- 귀걸이는 왜 한 짝만 해. 양쪽 다 하고 다녀야지.
핀잔을 사위 앞에서 주는데 눈꼴사나워 죽겠단다. 너무 서운한 나머지 종일 울먹였단다.
사위한테도 잘해주고 싶어서 안달이라도 난 것처럼 있는 걸 다 주고 싶은 사람인데 상처가 되어서 저녁때 사위한테 카톡을 줬단다.
이렇게 서현 씨는 작은사위 큰사위 둘 다 카톡을 보내줬단다.
큰사위도 답이 바로 왔다고 했다.
큰딸은 아무 말 없는데 작은딸은 사위가 바로 카톡을 공유해서 한 번 더 시린 말을 맞았단다.
-오빠한테 이런 문자 보내지 마. 나 싫어. 시어머니도 내게 이런 거 안 보내는데 엄마가 왜 부담 가게 해. 하 지 마!!
- 티브이에서 비친 이만기는 장모님을 너무 쉽게 대해서 매우 불편한데 이 정도를 가지고 나를 나무라는 건 우울증 오려고 해요. 서운해요.
사위가 이뻐 죽겠는데 큰아이네는 말이 없는데 요것이 이래요. 가슴이 무너지는 거예요.
- 시집갈 때 친정엄마 속옷 사주면 좋다 해서 두 아이 다 말해줬는데 큰아인 바로 사 오고 선주는 아기 담달에 낳게 되는데 이제 사 왔어요. 걔 왜 그래요. 우리 신랑 쪽 빼닮았나. 매사가 부정적이고 엄마말은 무시해요.
- 내가 애들 어려서 남편과의 생활이 너무 맞지 않아서 못 살 것 같은 고민을 하는데 선주가 책 하나를 들이밀더라고요. 책 제목을 본 순간 바로 던져버리고 절대로 넘겨보지 않았더랬어요. 겉장을 쓱 보니 혼자 독립적으로 버티고 잘 살 수 있다는 느낌을 바로 받았거든요. 엄마가 힘든데 이혼이라도 하라는 것처럼 책 한 권에 본인의 뜻이 있는 것을 밝힘 같았어요.
참담함 같다고 말하길래 나도 두 아이한테 물어봤다.
큰아이는 서현 씨 작은 딸처럼 사위가 부담되니까 안 해야 된다.
둘째아인 괜찮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자주 안 하면.
나는 이도 저도 딱히 뭐라고 답을 줄지 몰라서 글에 옮아 봤다. 서현 씨는 이 글을 들여다볼 것이고 댓글방을 숨 고르며 보고서 혜안 한 줌 가져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