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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면 할 수 있는 내 몫

(19) 언덕을 비비다

by 블라썸도윤

구순 아버지 모신 막냇동생의

이른 아침 연락이

집안에 찌린내가 진동한다는 것이었다

냉큼 달려가 꼼짝하지 않으려는

아버지 옷 벗겨 첨으로

목욕시켜 드렸네


미라처럼 살가죽이 말라붙었으나

힘에 부쳐 영양제 맞춰드린다며

급하게 병원으로 모셨다


휠체어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올려드리다 턱에 마주치니

까칠한 수염 밤송이 같았고

하늘에서 곧 부르심 받지 싶었는데

어찌 끼니 챙겨드린 동생은

밥이 줄지 않는 걸 모른 체

나보고 확인하라는지

무조림 해드린 게 그냥 있길래

곡기 사흘은 끊으셨지 싶음이라


말귀 어두우시지만

대강은 억지로라도 맏이 쫓아

열어주셔서 그나마 다행


엊그제 같던 엄마 병상이

눈앞으로 몰리면서


아버지랑 같은 연세

집에서 지성으로 간호하는

앞 사무실 순주 씨도 화면에 겹친다






전날은 아버지 집 동네를 두 바퀴 돌아 요구르트 하시는 분한테 요구르트가 그냥 남아돈다고 했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두세 번 가리더라. 아버진 웃으며 마주하는 이가 이분이었을 것이고 그분은 봉지로 팔아주는 노친이 아주 반가웠을 것 같다. 왈칵 울 것 같은 그의 마음을 읽었다. 급하게 요구르트 수레를 세우냐고 엄지손이 지퍼에 긁혔다. 나이 드신 분은 더 자주 들여다봐야 하며 가족이 아픈 건 쓰라림이다.


환자 케어를 하지 않은 사람은 이러쿵저러쿵 공 없는 소리, 흰소리, 군말을 하지 않아야 서운함이 적다. 하물며 까운 가족관계 이긴 한데 들여다보지 않는 이도 주위에 꽤 된다. 그리고 육체의 병을 수발들기는 힘들지만 티나지 않는 마음의 병을 지켜보는 가족한테도 위안을 주어야 한다.


엊그제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보이스카우트 담당이었던 옆 반 선생님을 한 아파트에서 마주했다. 이분은 내가 전단 일을 그만둘 즈음 20여 년 전에 횡단보도 앞에서 뵀었다. 그때도 같은 동네였는데 선생님의 인성이 싫어서 인사를 나누지 않고 지냈다. 그런데 발을 붕대로 감고 목발을 짚고서 횡단보도 앞에서 말을 건네시는 거다.


“누구든지 횡단보도 앞에서는 속도를 줄여야 하고 양옆을 확인하고 천천히 건너야 해요.


나는 “네”라고 짧게 답하고 잊고 있었는데 학교 모양새를 했던 큰집을 처분하고 우리 옆 동에 거주하고 계셨나 보다. 이번엔 어릴 적 시커멓던 선생님의 꼬마가 어른이 되어 아버지를 차로 모시고 병원 다녀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코에 고무호스 몸통만 끼운 체 아들 차에서 뒤뚱거리며 내리는데 역정을 내더라.


“놔둬. 이놈아 됐어.


아들은 차 문을 닫은 후 다른 곳을 향해 멍때렸다. 오늘 아버지를 모신 일과 이 일도 겹친다. 당당했던 분들이 보호자의 케어를 받고 있다. 환자와 평소 불편했던 관계의 신뢰를 따지겠지만 내가 불편하면 고개 숙여야 하지 않을까 보살핌 하는 가족의 애로사항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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