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콩깍지 팥깍지
저번에 전주에 내려갔다가 지인분이 진안 옥수수 10여 개를 주셨다. 난 우리나라 것은 다 좋다. 경관도 매미 소리마저도. (일본에서 듣는 매미소리는 우리 것과 또 틀리다. 쉭쉭쉭 쉼없이 시끄럽다.) 시골 것을 담아오는 기분은 어쩜 이리 좋을까?
예전엔 시골에서 농사 지은 걸 받아먹는 가족들이 참 부러웠는데 앱을 깔고 주문 오케이만 하면 우리 토종 것을 운송 배달을 통해 직접 구매하여 먹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 이웃집 농작물이 부럽지 않게 됐다.
바로 삶으면 단맛이 배겨 있다 해서 30분간 익혀줬더니 쫀득쫀득하여 입안에서 호강이 터졌다. 막냇동생도 댓개 주니 맛에 씌어서 택배로 배달 시켜 나눠 먹자고 한다.
콩이나 감자, 옥수수는 강원도에서 일군 것이 더 감칠맛 나는 거라며 영월에서 공수해왔다.
한 박스에 50개인데 박스를 열고 옥수수 알몸 내놓는 시간만 두 시간이 걸렸다. 예상 못 한 의외의 시간이 짓질리더라고. 더미로 쌓이는 쓰레기와 함께.
혼자서 껍질을 한 겹 놔두고 벗기는데 반려 가족 태양인 내 다리에 흘려진 날 옥수수 꼬투리에서 새어 나온 단물을 핥아대고 난 다리를 옮지락 궁둥일 옆치락 하며 쉬운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진력나서 ‘아고야’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라니. 쪄내면서 농사짓는 이들의 피땀을 송구하게 겸허히 받아들였다. 감사한 맛이다.
벌써 4년이 흘렀네. 시청의 홈피 들어가서 텃밭농사 신청하고는 번호표 받아서 내 둘째아이만 고생 시킨 거.
주말마다 장화랑 호미 챙겨서 물 주고 온 아이는 농사짓기가 제일 힘든 직업이라며 뻣뻣하지 않은 제대로 된 고추를 따올 때마다 일침 해줬다.
막내도 “언니 힘들었지. 삶은 것도 무겁네. 어케 들고 왔어.” 옥수수 값을 열 배로 쳐줬다. 난 이걸 원하지 않는데 막내가 굳이 돈을 꺼내놓고 나가 버린다.
농부의 땀! 옥수수 껍질 콩깍지 팥깍지 잔뜩 까본 이만 아는 게 아니다. 진딧물 같은 벌레가 우걱우걱 붙은 무랑 배추, 마늘 등등 밭농사 논농사 시기를 맞춰 지을 때 허리 펴지 못하고, 잡풀과도 전쟁. 하물며 고추 따다가 일사병으로 큰일을 치르기도 하고 쬐그만 땅덩이 관리도 버거운데 씨앗 한 알의 소중함은 맛의 결정.
알맹이에서 터지는 고소하고 쫀득쫀득한 입맛을 당겨주는 맛!
농사짓는 이의 발자국 소리 따라 자라는 농작물을 받아들었을 때 우리는 매우 송구스럽다.
옥수수 껍질 벗기면서 먹는 맛을 떠오른 게 아니라 농사짓는 고됨과 감사함을 찜 솥에 같이 담았다.
예전에 화천 물고기 축제 다녀온 후에 '극한직업'을 방송을 통해 보니 냉겨울에 눈이 안녹게 해야하고, 얼음으로 시간 걸려가며 여러겹으로 얼려야 하는데 이걸 조각까지 멋진 작품을 만듦은 뱉어낸 입김마저 바로 얼어붙는 강추위를 견딘 인내의 극한작업 이었음을... 희생되는 물고기와 나래이션하는 분의 애틋한 목청은 이 힘든 작업의 고됨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리고는 아직도 화천 축제 그곳을 넘실대지 않는다.
사람의 끈기와 온기로 일일이 수작업되는 고됨.
가만히 마음 챙김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