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콩깍지 팥깍지
강아지 태양일 데리고 어야에 나왔다.
산책 중.
내 머리카락을 자꾸만 잡아당겨서 나온 길.
어쩌면 태양이가 우릴 운동 시켜주는 것 일수도.
체육공원으로 강아지 출퇴근을 시켜준다. 주말이어서 야외 물 놀이판에 태양이도 기웃기웃하는 게 작은 아이들을 알아봄이다. 들어가고 싶기도 하겠지.
주말에다 휴가의 막바지. 이 좁은 공원에 돗자리 깔고서 젊은 부모와 물과 간식거리들이 쭈욱 삥 둘러 있다. 태양이 저녁 산책에 이곳에 또 오자고 해놓았기에 으스름 해가 넘어갈 때쯤 다시 물놀이장 앞에 왔다. 태양인 선뜻 덜 빠진 물을 밟았다. 아직도 남은 애들이 있군.
한 아이가 태양이에게로 가까이 오면서 내게 붙임성있게 씹씹하니 말을 걸었다. “강아지 만져도 돼요?” 누구나 강아지 근방에 오면 기본적으로 물어보는 짤막한 물음? 그리고 급 가까워진다.
아는 사이가 되어 태양인 쭈그려안고 난 처음 보는 이와 아는 체를 하며 좀 길게 얘길 나눴다. 좀 전에 제자릴 옮기려고 이 아이에게 나이를 묻고 엄만 어디 계시니? 했을 때 주저 없이 “우리 엄마 없어요.” 그래서 뒤를 보니 할머니인가 그럼, 속으로 생각했던 이분과 코끝이 찡한 이야길 나누게 된 거. 이 아이와 태양이가 오늘의 깍지를 내밀어 줘서 이걸 벳기는 중.
지금 저녁이 되려는 시간까지 있는 애들이 조금 덜 빠져 있는 물에서도 발을 꽉 붙이고 있는 가여운 애들이라고 하셨다. 가슴이랑 목이 메었다.
“요즘 세상도 이런 애들이 많나요?” “아, 그럼요. 그래서 우리 같은 사회복지사가 있는거에요. 저 젊은 총각처럼 생긴 이도 복지사에요.”
부모가 책임 없이 낳고 이유가 다들 있다는 상처의 가정에서 돌봄이 안되는 고아 같은 외로움의 아이들이 이렇게 많을 수가. 우리 동네 이런 숨은 이야기가 있었네.
컴컴해질 때까지 이곳에 마냥 있고 싶어 하는 아이들. 내겐 얘들이 한숨을 크게 뱉게 해준다.
좀 전에 그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난 너의 아빠가 아니야, 선생님이다.”
“아빠 같아요.” 머리를 빡빡 민 아이가 매달리며 의지하려나 본데 젊은 복지사의 대답이 옳은 것인가 보다.
부모님의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았다면 저 나이에 머리를 빡빡 밀었을까?
마음이 떨떠름하니 복잡해졌다.
신 자두를 한 입 베어 문 느낌이 연신 돈다.
초록색 뿔테안경 낀 남아가 그런다.
“나 내일 또 보러와요.” 강아지보다 나를 더 기대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이 고픈 아이들.
오늘 사랑을 복지사분들 팔에서 손을 잡은 연결고리에서 큰 다독임이 되었으면. 이들의 앞에 곧 사춘기와 학업 열중이 파도 닥치듯이 찾아올 건데... 큰 쓰나미를 맞지 않고 바르게 지금처럼 순수한 마음 잃지 않기를...
집 도착하자마자 서른이 넘은 딸아이한테 태양이 어야길에 있었던 쓰라린 이야길 꺼냈다.
“엄마, 나도 이런 아이 입양할 거야. 나 엄마랑 떨어지면...”
코로나19를 앓고 일어나서 은행 간다고 양말 신더니 바로 허리가 디스크 와서 아직도 약을 꿰고 사는 내 작은 아이는 어쩜 그럴지도 모르겠다.
식구라고는 태양이와 내 작은아이 그리고 잔병치레로 골골대는 나, 이렇게 셋이서 종알종알 살아가는 이야길 겨울 입김처럼 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