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콩깍지 팥깍지
입추가 지났는데 여전히 덥다. 곡식이 익으라고 하늘에서 내준 막바지 더위 일 것이다. 그래서 도시의 사람들은 재작년에만도 검은 망사 그물을 펴고 이때쯤 빨강 고추를 널어 말렸다. 아파트가 쭉쭉 들어서니 올해는 고추 말리기에 좋은 볕이 뜨겁게 내리 쬐주는데도 고추 말리는 모습을 아직 만나지 못했으니 섣부르다.
엄마는 옥상에 고추를 많이 펴놓고 비둘기가 쪼아먹을까? 묽은 변을 쫘악 쏴대고 또 배고픈 친구들까지 우르르 델꼬 올까 봐서 나무작대기 하나 들고 땡볕에 몇 시간째 계셨었다.
뜨거운 옥상받이 태양 가리개는 엄마의 머리를 두른 수건 하나뿐이다. 통화하니 열불이 나셨다
“대체 뭣들 하냐고 나 교대를 안 해줘. 쉬도 마렵고 목도 타고 배도 고파. 이것들아!” 엄마! 아랫집 둘째네 통화해서 이 불편함을 말씀하시지 나는 저만치 틀린 장소에 있는데... 잽싸게 움직여서 20분 안에 엄마네 옥상에 당도했다. 고추가 널려 있는 장소로 출발할 땐 이미 시원한 냉면을 배달 전화 시켜 놓았으니 이제 엄마는 화장실로 직행해서 생리 해소를 해결하시러 가면 된다.
나는 그동안 엄마 손에서 따뜻하게 뎁혀진 부지깽이 같은 몽둥이를 붙들고 새가 오면 쫓아냈다. 이 매운 것을 탐하는 녀석들이 새란 말이지. 매운내가 컬컬했다. 저만치서도.
냉면이랑 엄마랑 같이 도착해서 다 드실 동안 내 볼일을 멈추고 있었다. 다들 둘째 네한테는 눈치를 본다. 얘네가 이중의 반은 갖다 먹을 텐데... 아니 안 그렇다 해도 근거리에서 좀 봐주면 안 되나. 비협조는 얘네한데 달라붙어 있어. 고추를 산 것도 알고 옥상 벌판에 널은 것도 알 텐데 아무도 기웃하지 않다니... 상전 다루듯이 할 말을 참으니 흠결이다.
찐따 아줌씨는 이 앞에서 큰 참외 하나를 어기적어기적 베어 물어 먹었는데, 얼마나 목이 타셨을까?
이렇게 고추는 폭염을 살라먹고 빨강이 타서 검정빛으로 햇볕에 바래질 때 가운데 배를 가위로 쭉 갈라서 더 익혀 준다. 막바지 여름 더위 더 먹게끔. 그래서 태양 고추 되게끔. 엄마의 여름도 고추와의 씨름으로 가을을 주섬주섬 옮아오게 하셨다.
사람의 생리현상을 목타고 화장실 가야 하는 엄마와 부질없는 자식들 간의 말 없는 전쟁이다.
내가 전화 통화 안 했으면 엄마의 볼일은 어떻게 되셨을까? 현관문을 곧장 열러 가셨겠지. 참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지.
그렇다. 뜨겁게 달구며 이글이글 익었던 여름이 파란 하늘로 높게 숨겨질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리기 시작한다. 담장 위에 이불과 요를 털어서 널어 햇빛 소독하고 들판엔 때론 차가 잘 안 다니는 아스팔트에 모기장 같은 그늘망을 치고서 빨가디 빨간 고추를 달라붙지 않게 펴 널어주는 거다.
느릿느릿 파랗게 잉크 빛 하늘이 높아지면 뜨겁고 강열했던 햇볕을 끌어당긴다. 가을임을 알려 줌이다. 고추가 말라가면...
토요일 이른 저녁시간 꼭 6시 되면 온정신을 몰입하게 유발한 TV 프로그램의 ‘더 매직 스타’는 막이 내려서 도서관엘 가봐야겠다. 코난 리우의 차(茶)와 한만호의 기똥찬 마술에 빠졌었는데 이젠 책과 다시 가까워져야겠다.
(사위와 내 두 딸은 자몽에서 계란이 생성되고 이 알에서 반지가 나오게 한 에릭 치엔을 지지했다. 그런데 같은 행위 예술이며 이들도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열정과 열성을 다했을 건데 상금은 노력에 비해 타 행위보다 약하더라.)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게 얇은 책,
책을 멀리하는 이들을 위해서 발간된 손바닥만 한 책, 그 어떤 것도 심혈은 기울인 것.
사춘기 때 엄청 문학소녀여서 책을 많이 가까이했으나 지금은 읽었던 내용의 기억이 가물 하니 잊혀진 책들을 다시 꺼내들어야겠다. ‘오성과 한음’을 다시 읽을까? 어린이 도서에도 재미난 게 많다.
더운 여름에도 고추는 빨갛게 익음을 주는데 내게도 책의 풋풋함을 옮아오자. 나를 좀 쪄줘야겠다.
어린이들이 직접 쓴 글과 그림 -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