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본성에 오판하다

(1) 콩깍지 팥깍지

by 블라썸도윤 Aug 17. 2024

 살다 보니 맺혀진 인연을 보면 ‘의인’과 ‘악연’으로 구분되어 나눠짐 아닌가 싶다. 본성 드러냄으로 맞지 않음이 표식 되어서 마음에서 이미 차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만남의 이어짐이 되거나 냅다 차버림으로 이별을 해버린다. 이젠 나 위주로 살아보자.


 내가 경찰 부인이었던 거지, 경찰은 남편 직분이었어. 내가 그 주인공이 아닌 것처럼 나를 으쓱이지 말라. 주장하며.


 기계 압착단자를 전공한 남편, 내 남편은 항상 남의 편이었다. 남의 입장은 잘도 이해가 넓다. 결혼까지 오기는 내가 말귀를 못 알아먹은 콩깍지 씌움 이었어. 착각이었다.


 거래처 직원으로 만나서 하루는 부평 역사관의 커피숍에서 차를 시키는데 그의 순수한 얼굴이 커피에 비쳐졌다. 뭘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지. “고향이 어디세요?” 젤 먼저 궁금했다. 아래쪽 지방이었다. “교육의 도시이며 호반의 도시 좋은 곳에서 나셨네요.” “네.”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대답을 해줬다. 이어서 “몇 년생이세요?”또 물으니 호적이 잘못돼서 그렇지 범띠라고 했다. 다행히 동갑은 아니군... 으흠,


 사무실로 하루 여섯 번은 꼬박이 전화를 해댔으며 수요일은 이이 누나 집으로 거봉 등 과일을 포장해 들고 가서 가족 데이트를 했다. 월급 날인 15일과 매주 주말은 날 피해서 만나니 난 이것이 바른 생활의 모범으로 체크를 오인했다. 결혼하면 엄청 착실하갔어.


 이런! 돈을 아끼라는 누나의 통보로 그 집 탁자가 우리의 대화 공간이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건데. 젠장?! 허투른 판단이다.


 말이 더뎌서 충청도인가 기웃도 했으나 이이는 호반이 아닌 호남이었으며 나이는 동갑이고 매우 짠돌이에 누나보이였다.


 범생이로 완전히 착오한 나는 결혼의 면사포를 쓰게 됐다. 자린 굴비가 어떻게 친목회는 8개가 넘는지 난 때론 그의 모임에 부부동반으로 끼일 때가 더럿 있었다. 이 땐 뷔페가 한참 유행이어서 여기에 모이면 편했다. 집에서 상차림 안 하니까. 모임의 남편들이 본부인들 보고 “이것 먹어, 저것도 갖다 먹어봐.” 다른 접시에도 담아다 주며 내 안식구가 잘 먹기를 바라고 배려를 해주는데 이이만 유독 집을 이미 나서기 전부터 내게 일침을 했다. “많이 가져다 먹지 마, 알겠지. 창피하다고.” 다짐이라도 받듯이. 참 놔 별걸 다 참견이네. 내가 언제 욕심을 폈다고.


 그의 아내들은 서둘러 결혼을 해서일까? 배가 진정 고파서일까? 아니면 남편의 베풂이 앞서서 인지도 모르겠다.

우걱우걱 양볼이 터지리라 흉하게도 입에 큰 수저 한가득 넣는 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도 저렇게 한 수저 가득 들어갈 수 있게 입이 크게 벌어져 봤으면.

 

 떡이건 쪄낸 고구마이든 먹어 보란 말없이 혼자 먼저 먹어 치우던  남편은 밖의 외부에선 극히 음식 사양을 하는 체면치레의 I형이 모임 부인한테는 고기쌈 채소를 싸서 입에 크로스 하며 넣어주며 먹여주더라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았었다.


 그러니 여행을 가봤겠어, 근방의 나들이를 해봤겠어. 멍청하게도 난 남편과의 긍정적인 추억이 없다. 앳된 어림도 없으니.


 게다가 시가의 막내며느리인 나는 시부모님도 안 계신 제사 길에 대문도 없는 수돗가 밖으로 못 나갔잖아. 나이층이 별로 안 나는 윗동서는 말머리에 ‘시’자가 붙듯이 윗사람 역할을 치사하게 갖다 붙였다. 터무니없는 괴상한 어투와 아래로 쳐진 눈 밑을 내리깔은 큰 동서가 어딜 가냐고 “안돼.” 해서 시골인데 거긴 유명한 곳도 몇 군데 있건만, 반대가 빈정 샀지만 조용히 남편을 응시하기만 했다. 으그 찍소리도 못하냐. 자기 본집인데. 제사비용은 다 대면서 죽어라 큰 대야부터 동서쪽 친정식구들 밥 설거지까지 담당인 내가 옴싹을 못하고 눈치만 보다 빈손으로 와서 허탈하게 그곳에 대하여는 낯선 기억만 있다.

(남편이 살았을 때같이 못 가본 그곳을 큰 아이네 결혼 후 두 번 다녀왔다. 이곳에서 도사동과 낙안읍성이 가깝다.)


** 내가 꾸꾸로 이름지어 불러주니 내게로 가까이와준 거위 ㅡ 남편인가 모르겠다.**


 내 아이들이 자랄 동안 찬으로 동태찌개나 오징어볶음은 정말 때늦게 해 주게 됐다. 이이가 입에 대체 안 대니 못해줬던 미안함에 나중엔 이를 제치고 자주 상에 올렸어.


 이이는 모임만 다녀오면 늦은 밤에도 밥을 차려 달란다. 체면이 구겨질까 봐 소주만 거듬거듬 대고 온 거 같다. 이 체면은 장맛비 준비하냐고 뜨거운 대낮의 열기가 여름을 익히는 날, 점심으로 ‘모밀 비빔면’ 두 그릇을 포장해 온 내게 하나는 냉장고에 넣어 두란다. 내 애들이 이따금씩 하품하면서 이 흉내를 내고 같이 웃어버린다.


 큰아이가 고3 입학식 후 첫 주 토요일에 소고기 볶음밥을 싸가지고 나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무조건 학교에 보내게 한 이이.

(담날 발이 퉁퉁 붓고 좀 심각했었다. 통풍 증세로 그 이튿날이 더 고통스럽고 결국 신경 차단술을 받게 했다.)


 내향적이어서 혼자도 술과 친하고 고혈압 요법을 못하더니 자기 관리가 안 돼서 엄마 가신 후에 6개월 있다가 임마저 세상을 떴다.

큰 딸내미 운전은 가르쳐 줄 줄 알았더니 심근경색이 중풍과 같은 현상으로 6년을 고생하고 세상을 떠났다. 쓰러질 때 보면 대부분이 아무도 없을 때 넘어지는 것 같다.


 말에는 부드러움과 가시가 박힌 두 성향이 맞물려 있다고 본다. 말에 뼈가 있어서 거르지 않고 그대로 뱉어 내는 이들이 있어서 상처가 되기도 하고 정이 넘쳐서 사랑을 끌어당길 수도 있다. 채신머리 없이 넙죽 ‘나 잘나’가 되어 무대뽀로 나서는 게 아니고 멋쩍으면 밝은 미소라도 답을 해줘야 되겠다.

본성에서 나온 나를 돌아보자. 과한 욕심이 붙지 않게, 이러면 사람이 날 피해 가게 돼.


 상냥함이 베인 아내를 이상하게도 밀쳐냈던 I형.. 그래서 별 정이 없이 그냥 그냥 살다 간 거 같아서 일 테지. 추억이 없어서 내게 남은 정이 안 끌어당겨. 그리고서 강아지 승리에게로 사랑이 온전히 가더라. 승리가 기대게 해 줘.


 얘들아, 너흰 연애할 때부터 결혼 후에도 산책과 여행을 하며 스킨십은 스스럼없이 하면서 추억의 정을 듬뿍 쌓아줘라!!! 사랑은 표현이다. 반드시를 추가한다면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이 최고여!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