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꽃잎 물고 날아가는 별들아
오진희 작가와 남편인 신영식 화가의 ‘짱뚱이시리즈’가 가을이 되니 속에서 되새김질해준다. 신간이 나오면 도서관을 건너서 서점으로 먼저 가 매주 책을 보물처럼 사 날랐던 엊그제는 벌써 나를 환갑을 넘게 만들었다.
자녀를 출가시키고 집 정리 때 곳간 같았던 서고를 말끔히 정리하니 로마신화, 역사 이야기, 세계여행, 우리고전 등등 그들은 떠났다. 그리고 다시 생각이 나는 건 오늘 작은아이가 강화도 덕진진으로 출장을 다녀오면서 짱뚱어 사진을 찍어 보내줘서다.
* 이 안에 짱뚱이 있어요*
전북 장수군이 고향인 오진희 작가는 교사인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길을 기다렸고 별명으로 ‘짱뚱이’라 불렸으며 그의 어머닌 백열전구에 뚫어진 양말을 끼우고서 바느질했다고 책의 기억에 있다. 70~80년 시대를 정서적으로 내 입맛에 끌리게 한 서적이었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하니 나만 구미에 당긴 것이 아니었다.
나도 쓰고 있으니 책 한 권은 만들어서 구수한 사실이야기를 내 자녀한테 으스대며 주고 싶다. 명작은 되지 못하지만 엄마의 얘기가 온기로 남아 줬으면 좋겠다. 추석 때는 망둥이랑 숭어도 제법 팔뚝만 할 텐데 짱뚱어탕이 곱살스럽게 맛있다고 오 작가는 침을 삼키며 옛 추억을 소환했다. 화가 남편의 붓 터치는 청국장 맛처럼 때론 소고기 미역국 맛 마냥 군침이 절로 돌게 한다.
강화도의 짱뚱어를 찍어 온 아이가 말한다.
“오 작가의 짱뚱어, 이 사진에서 찾아봐. 난 짱뚱어를 보니 책상 밑에 들어가서 얘들에 관한 시리즈 즐기던 어릴 때의 내 생각이 났어.”
“아, 짱뚱어 찌개 맛있겠다.”
가을엔 다 여물어. 저 하늘의 달도 영근다.
달이 뜨면 바다가 울어서 갯 것들이 영근다.
그래서 물고기들이 팔뚝만 해지는가 보다.
내 엄니가 나서 자란 고향 영흥도엔 추석 요맘때 두 뼘이나 되는 망둥어를 대나무 낚싯대로 턱밑을 낚아챈다. 배를 가르고 내장을 훑어서 달궈진 갯바위에 널어주면 저녁에 아궁이 불에서 찜이 되고 감자 매운탕이 됐다. 불쏘시개 뒤적이던 부지깽이엔 오늘 낳은 알찜 냄새랑 망둥어 익는 냄새가 배를 꼬르륵 움켜잡게 했다. 아, 지금도 군침이 돈다.
내 외삼촌은 이곳 철우아저씨 못지않게 해루질을 잘하는 명수인데도 보약 같은 것들을 꿰오지 않았다. 긴 겨우내 내 아버지랑 “춘시야, 네 매부랑 얼른 너머 와라.” 찾던 아무나 놀음 친구에 끼었다. 아버진 사 놨던 논 몇 마지기를 홀딱 잃고선 아직 아쉬움이 남은 채 이곳을 애향하신다.
영흥도의 철우아저씨는 외증조모가 아닌 다른 배를 빌려 낳게 된 조상이다. 내 밑의 나이이지만 촌수로 아저씨 관계이며 영흥도의 터줏대감이다. 유일한 병원도 운영하지만 낚싯배도 여러 대여서 이번에 내 아버지 오시는 틈에 잡아놓은 숫게를 큰 박스로 보내줬다.
아버지 집에 꽃게찜을 올리니 동우 아저씨 생각도 나는 게 어릴 때의 내가 신나게 놀았던 놀이가 뱅뱅 돌아서이다.
어릴 때는 몰라서 “야”라고 불러댔으며 지금은 목사 직분인 큰 아저씨랑 우리 동네 신흥동 2가 22번지에서 구슬치기를 했는데 세 번 다 내 것을 왕창 따는 바람에 심술을 오지게 피웠었다. (이때는 우리 어린이들이 자기 집 주소를 죄다 콜콜이 외웠다.)
악기방이 따로 있어서 내가 만지작대던 섹소폰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하셨으나 핑퐁게임만 하고 왔다.
짱뚱어 말이 나오니 내 고향은 아니지만 영흥도의 망둥어가 밥도둑으로 떠오르게 한다.
*요즘은 숫게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