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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감나무

(25) 꽃잎 물고 날아가는 별들아

by 블라썸도윤

강화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면 묘목을 파는 데가 있다. 이곳에서 감나무 모종을 만 원에 샀다. 내 엄니가 좋아하는 대봉나무를 꼭 사다 드려야겠기에 큰아이 고3 때 사다 드리니 4년 후 감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후로 엄마는 복숭아와 자두랑 대추, 포도나무를 연거푸 심으셨다.


거름을 사다 주위에 놓아주고 물을 뿌린 정성 끝에 엄마는 입이 벌어지셨다. 새끼 열매가 주먹만하게 달리자 돗자리 깔고 시원하다며 누워서 하늘을 가린 나무의 속을 들여다보셨다.


큰아이가 대학 졸업을 하니 영근 과일들이 엄마의 기분에 호랑나비랑 꽃나비로 들어와 앉아서 부채질을 해댔다. 그래서 배가 부르다고 하셨다. 달더라. 지나는 길에 나도 몇 개를 집어 먹었는데 엄마의 정성 맛이었다.


엄마를 기분 좋게 하려고 홍시가 되어준 주황 감은 엄마 바라기 하면서 잘 자라줬다.


대추도 잘 영글었는데 아버지도 덩달아 좋아하셨다. 그래도 나는 과일을 더 대드렸다.


얘들이 십년씩 나이를 가지니 엄마가 시름시름 앓으셨다. 이 나무들도 허옇게 벌레가 잔뜩 끼기 시작하고 곯아댔다. 아픔이 따라왔나 보다.


엄마는 눈을 아주 감으셨고 다음 해에 아버진 과실수들을 베어내셨다. 나무가 친구고 짝지를 바라보며 심술을 잘피던 아버지는 저번 주에 윗골목의 친구먹은 백씨와 공짜 전철표로 연천에 다녀오셨다. 어젠 파주 임진각에도 둘러보고 오셨다며 전화를 주셨는데 나이 들면 나들이를 해야 숨이 제대로 쉬어진다고 하신다. 굳이 공짜 표가 아니어도 두 분은 계속 같이 다니자고 서로 약속 하셨다.


우린 처음에 아버지 친구분이 백만원인지 알았다. 끝의 자가 흥인 걸 나중에 알았는데 아버지랑 친구먹기로 한 이 분 덕에 떨어져 사는 나는 맘이 한결 가볍다. 아버지 옆에 홍시를 좋아하신 엄마의 역할을 친구분이 대신 반이라도 맡아주셔서다.


빨그스름하게 완전 주홍빛 감이 달리면 다른 과실수보다 많이 애착을 가지셨었는데 감나무를 치운 자리에 어젯밤 빗물 흠뻑 적신 옥잠화가 엄마의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앉아있다. 흰 꽃이 크게 피어나서 정말 엄마가 앉아 계신 줄 알았다.


* 이 집 한 곳만 그나마 감이 수두룩하다. 발품 팔아 다녔는데 일반주택들은 거의 소멸하거나 대문의 페인트가 벗겨져 나가고 있었다 *

* 감나무 집들이 쭈루룩 줄을 이어 있었는데 도시에서 감나무 보기가 점점 희박해졌다 *


더 일찍 크레용 벽지에 신청할 걸 그랬나 보다. 감나무가 있는 장독대와 추가로 병아리 가족과 청개구리가 항아리 위에 얹힌 실크벽지를 거실에 크게 도배했는데 엄마가 아파서 내 집에 못 와보시고 하늘에서나 보셨으려나. 기와 담장 너머로 감나무가 있고 시골을 좋아하신 내 엄니랑 나는 같은 취향의 그림과 나풀대는 꽃의 이름도 비슷한 성향이었다. 시골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자연의 꽃과 나무를 손으로 집어 대시며 길을 다니셨던 엄마는 이쁜 옷을 고르는 눈썰미도 같았다.


그래서 감색 옷도 엄마랑 나는 받아들이는 흡수가 같았으며 화려한 색상을 쫓아서 옷을 구매하는 터치도 같다.


가황 나훈아의 ‘홍시가 열리면’처럼 내 엄마도 다른 아줌니들도 노래 가사처럼 감의 감흥을 그렇게 젖었을 거다.


감이 익어간다. 태풍에 약한 놈들 떨어져 나갔어도 번듯하게 살아남은 감은 내 엄니의 눈을 주시하게 해준다.


인천의 최초 백화점인 희망백화점(지금은 올리브백화점) 뒤쪽으로 형성된 일반주택들 대문 안으로 감나무들이 주홍빛 낯 붉은색으로 쭉 들어서있었다. 오래전 이곳 한 주택에서 우연찮게 막 떨어지는 감을 내 두 손으로 받아서 터질듯한 감촉을 그대로 입 속에 퐁당 넣어준 적이 있다.


이 감칠맛은 세상 처음 느껴봤다. 아울러서 떨어지는 감을 받아내기란 손쉬운 게 아닌데 운이 좋았다. 아마 야구선수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을 것이다. 타이밍이 기가 막혔던 것이기에. 이날 자연스레 받아먹은 감을 혀에 녹이며 엄마 생각이 났으나 바로 터질 것 같아 내 입으로 그냥 쏙 집어넣었던 기억은 그대로 남아있다.


내 엄마랑 이곳을 같이 지나는 느낌이다. 오늘은 독감 예방접종을 하러 가는 길이므로 방향을 쭉 지나가야 한다.


엄마 냄새가 훅 따라온다. 그리운 어머니! 감나무에 발길 따라 배어있다.


* 감나무엔 청개구리가 살더라고 *


감을 하나 땄는데 어느샌가 청개구리가 달라붙어 나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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