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꽃잎 물고 날아가는 별들아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를 하고 두통을 자주 앓은 나는 약골이었다. 이때마다 정신을 우뚝하게 세우고 깡다구로 버팅겼을게다. 나이가 들면서도 줄지 않는 나쁜 병이란 놈은 욕을 먹어가며 쫓아다닌다.
꽃 한송이를 들여다보는 느낌과 나풀대는 나비를 봤을 때의 감성이 툭 튀어나옴은 더욱 여성스런 멋이 나겠지만 구석에 아프다를 대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나이듦이다.
아버지의 파견근무로 문산에서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 아버진 문산의 발목까지 덮이는 누렁 잔디밭에 나를 앉혀놓고 사진을 박곤 하셨다. 나는 이때도 두통이 일었으나 잔디밭에서 주운 고무로 만든 국군아저씨 모형을 주물럭 댔다. 아픈 게 지겨우니까 말을 되레 안 하고 참았던 건 쓰디쓴 가루약이 싫었으며 매일 아프다고 하기가 싫었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머리가 자주 아파’ 속으로만 삼켰다.
학교에 손잡고 다니는 짝꿍은 안 아픈데 신흥병원 옆집에 살던 나는 이 병원에 자주 들락거렸다.
내게 두통에 어지러움만 없으면 아프지 않다. 특히 회사 생활할 때 몸이 시원찮으면 맘대로 제칠 수도 없고 환장하는 노릇이다. 이때 별로 친하지 읺는 동료나 뜻밖의 지인이 약국 약봉투를 들이 내밀어 주면 난 금세 나았다. 그 감사함의 힘이 약손이 되어서 땀을 쏟고 병이 물러갔다.
이때는 약국에서도 처방이 가능해서 어지간한 병은 약효발이 잘 들었다.
또 신혼 시절부터 나는 주인댁을 잘 만나서 김장 김치도 얻어먹고 그때 당시 유행을 탄 꽃 그림이 있는 플라스틱 주전자와 컵 세트를 받기도 했으며, 담번 이사 간 집도 주인장과 나는 서로 부엌문 앞에 쌍화탕이 같이 든 악봉투나 먹을거리를 놔주며 품앗이처럼 정을 나누었다. 그들에게 종교가 있었으나 나를 강제로 포교하지 않았으며 한 가족 같았다.
시어머니가 안 계신 제사를 시골 가서 지내고 오면 빈손으로 왔으니 따로 시장에 가서 과일이랑 떡을 사다가 역시 부엌문 앞에 놔두고 오면 담날 내 집 문간 앞에도 홍삼 쪄 말린 것 등 먹을 것이 놓여있었다.
아플 때 약을 놔주고 간 이들 전생에 내 신세를 입었던 사람들일까? 아니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챙김을 해준 것이려나.
글지기 분들이 건강하세요를 마지막 인사로 콤마를 찍어주시는데 그중에서도 ‘Another time 자축인묘’작가님은 인사로 항상 건강염려를 강조하여 여러 번 달아주셔서 매우 감사하며 역시나 약손 봉투를 받아듦같이 기분이 화 해진다. 그러면서 가슴속에 지니고 있던 약봉투의 어림을 글에 표출해 내게 했다.
내게 처방약을 건네준, 건강에 대해 신경 써준 분들 세상의 연분 중 내가 제일 감사한 분으로 꼽고 있다. 아픔도 즐거움도 나누면 반이 날아다닌다. 병원 처방전이 있어야 약을 받을 수 있는 현세에 건강하세요^*^ 이 인사는 무지 따뜻한 최고의 인사다.
내가 신세 졌던 약손봉투 그들한테 지금 묵념을 했다.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정말 아프면 병원 갈 힘도 없는데 맥알이 풀린 환자한테 건강을 염려해주는 말 한마디는 정신부터 치료가 되고 뜨끈한 쌍화탕이 되어 잠시라도 아픔이 숙어들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건강하세요!” 인사말도 기분을 줗게하는 인사법이므로 미소를 줄 수 있는 사랑법이다. 그럼 써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