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꽃잎 물고 날아가는 별들아
사돈댁이랑 큰아이네서 대하구이를 해먹기로 했다. 사위 차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새우를 들고 모래내시장역에 먼저 당도하신 사돈댁을 뵀다. 나보다 두 살 연상이신데 웃는 모습이랑 목소리가 여전히 애교스럽게 나를 반기신다.
큰딸내미 집에 도착 후 사돈댁과 딸내미가 소래포구에서 공수해 온 대하를 찜통에 부었다. 찜기 밑에 물을 조금 넣어주고 소주를 새우 위에 찌껄여주었는데도 큰 새우들은 힘이 좋아서 두 놈 건너 세 놈 건너 팔딱 뛰었다.
10여분 붉게 익힌 후 식탁에 올렸다. 참 자상하신 솜씨로 백여마리의 껍질을 다 벗겨 내주신 걸 찰제리처럼 쫀득하게 씹어댔다. 새우의 처음 느낀 쫄깃함이다. 살아있는 새우살냄새가 좋아서 어류를 피하는 백서방과 딸내미도 잘 먹어준다.
일전에는 멋모르고 머리를 다 발라냈는데 사돈댁이 미리 준비해 오신 버터를 충분히 넣고 머리를 팬에 쏟아서 역시 붉은 빛이 날 때 가스를 잠갔다.
버터구이 머리는 관절에 영향을 주는 키토산이 몸통 살보다 훨씬 풍부하고 맛도 일품이다. 꼬리와 몸통 살의 껍데기 빼고는 더듬이랑 검정 눈알도 과자의 식감과 같고 고소함이 일품이다. 저번에 작은아이가 마트에서 구입한 냉동 새우를 부쳐주었을 때도 기가 막힌 맛이었는데 오늘은 생각지 못했던 가을 대하를 싱싱한 놈으로 입 속에 넣으니 한참을 씹었다. 젤리처럼 차지고 쫄깃해서 “으 음~” 고소한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가을을 제대로 먹어주니 좋고 나처럼 사돈댁과 어울릴 수 있는 집은 얼마나 될 수 있을까? 남들이 오늘 부러워할 것 같다.
지금 문학인으로서 노벨문학상을 걸머쥔 한강 작가만큼 난 기쁘고 행복하다. 그리 큰 명성과 영예는 깜냥도 안 되지만 거기에 비교해서 맞불을 놓으면 안 되고 내겐 소소한 행복이기에 또 오기 쉽지 않은 날이기에 이 하루가 큰 추억인게다.
문학인 가문을 이어서 부친 한승원 작가님의 자녀로 사회적 주제와 심리적 깊이를 시와 소설로 한강작가는 명작을 집필해 명성이 지금 하늘을 찌르고 있다. 스웨덴 측으로부터 노벨문학상을 수여받은 한작가한테 감축을 드린다. 우리나라 문학의 글로벌화를 이끄는 주역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소식이 뉴스의 전파를 타고 한국 세상을 빛으로 뜨게해서 축하드리는 그런 기분처럼 오늘 왕새우의 팔딱거림이 입에서 신이 났다. 뭔말이야 할지 모르겠으나 난 어떤 것도 큰 영광이 따라올 수 없기에 이런 작은 뿌듯함에서 개인적인 행복을 가슴에 담고 솜사탕 들은 아이처럼 좋아하는 것이다.
어제 문학엔 문외한이었던 친구가 한강 작가를 다 꺼내는 걸 보고 새삼 놀랍듯이 사돈댁과 같이한 가을 대하구이의 소소한 일상도 내겐 큰 행복이다.
1980년 고1 때 만수동의 우리집에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닥쳐서는 항아리 단지까지 다 뒤져가며 빨갱이 간첩이 이리로 올라왔으니 보이는 즉시 신고하라며 엄포를 쎄게 넣고 가서 그날 밤은 잠을 못 잤었다. 진짜 북한 간첩이 철책망을 뚫고 넘어온 줄 알고 부들부들 떨었었다.
민정당표인 이모와 민주당편인 엄마는 김장하다말고 정치 얘기로 다툼해서 얼굴에 고춧가루를 묻힌 채 집으로 줄행랑했었다. 이 이모가 그때 당시 광주에서 목숨 걸고 피해 온 팔에 상처를 입었던 젊은이를 옆방에서 밥상 바쳐가며 손님 대우를 잘 해줬다. 그런데 하루는 파출소에서 이모네 조사가 나왔다. 사촌 남동생이 나보다 다섯살 아래인데 학교에서 집에 이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무조건 신고하라고 해서 사촌의 신고로 이모집이 당분간 시끌 했었다. 이모는 배 타는 시동생이라며 어제 배 타러 가서 없다고 씩씩대며 찾아온 순경들을 돌려보냈었다. 나도 학교에서 사촌 동생과 같은 교육을 받았다. 광주에 있던 간첩이 인천으로 올라왔으며 그들은 서울에도 잠적해 있다고 했다.
이모는 광주 5·18사태에 대하여 인천 사람으로서 아주 많이 아실텐데 함묵하고 계신다. 이걸 한강작가는 소설로 피비린내 나는 고통과 아픔을 문학으로써 산역사를 남긴 것이다.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움켜쥔 한강은 겸손함을 유지한 것처럼 내게 대 영광은 아니지만 소소한 일상의 왕 기쁨을 가을마당에 널었다.
가을 대하와 문학 이야기 어울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