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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지기가 될 수 있는 건

(19) 꽃잎 물고 날아가는 별들아

by 블라썸도윤

햇수로 44년 된 학교 짝지를 송도에서 만나고 왔다. 이때쯤에 연속극으로 청실홍실이 히트를 쳤는데 웃기는 가정부역의 이름이 ‘꽁춘’이였다. 은례가 내 짝지를 ‘꽁춘’이라고 지어놔서 그렇게 불러대며 앞뒤로 재미난 자리를 만들었다.


출석부를 들고 교무실에 다녀오면 그때서야 쫓아 들어오는 이 친구는 담임 눈에 안 띄어서 혼나지 않았다. 맨날 지각인데 첫 시간 알림 종칠 때 가방을 내려놓고 웃긴 소리를 잘했다. 오빠가 많아서 오빠가 무섭다는 경순이가 꽁춘이다.


경순인 담배를 태우시는 예쁘장한 친할머니와 한 방을 썼으며 그때 젤 저렴한 ‘환희’를 할머니의 권유로 두 번 빨아본 적이 있다. 나도 그랬다. 쌀쌀했던 외할머니가 이모집에서 기거 하실 때 나보고도 한 모금 해보라고 피던 청자담배를 건네주셔서 할머니의 유일한 낙이었을 과자를 두 모금이나 얻어 폈었다. 사춘기 조금 지날 무렵이니 각자의 할머니들은 무슨 맛으로 저리도 담배를 찾으실까? 궁금해서 담배를 입에 물었던 우리가 너도 웃고 나도 할머니 앞에서 키득키득 웃었었다. 궁금한 것도 호기심도 비슷했던 우린 할머니들이 비밀을 지켜달라던 약속도 지켰다. 만난 자리에서 할머니들 얘기도 꺼낸 김에 친구는 “야, 그게 환희야!” 알려줬다.


경리 생활을 했던 둘은 월급날이 같았다. 첫 봉급을 타는 날 통닭을 사 먹으러 가자고 약속을 해놨기에 정시 퇴근 후 만나서 우체국 방면으로 버스를 탔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분위기내는 카페나 치킨집이 없어서 시장 가서 먹어야했다.“무조건 한 마리씩 시키자.” “그러자.” 하고 다음 정류장 하차해야 하는데 한 정류장을 남기고 둘은 끔찍한 것을 차창 너머로 목격하게 됐다. 신기하다. 놀라웠다. 내내 메슥거린 건 우체국 앞에 50대쯤 보이는 여자 한 명이랑 남자 두 명밖에 없는데 이 중의 남자 하나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이 활활 붙은 채로 방방 뛰었다. 손을 쓸 수 없이 두 사람은 안절부절 못하는데 놀라서인지 크게 반동하지 않더라. 으윽... 별 희한한 걸 다 경험했다.


이 아인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세상사 소스를 다 풀어주는데 나는 정보를 많이 얻어간다. 핸드폰에 프로필 사진은 쑥스럼타며 바로바로 지우는 아이가 어떻게 말은 웃음을 주는지 시간이 빠르게 간다.


삼둥이네 사는 이웃 동네에서 거주하는 친구 덕에 송도를 헤집고 다닌 것 같다. 스파게티로 이른 저녁 배를 채우고 센트럴파크역의 공원을 한참 걸었다. 낮에 더울까봐 좀 느지막이 만났더니 화려한 네온 불빛이 아른거려서 산책을 대강하고 맥줏집 한 곳에 가서 계속 조잘조잘 회포를 했다.


맥줏집 앞에 진짜처럼 유혹하는 강아지·숙취


다들 노인 일자리 찾아서 놀지 않고 있다며 이 친구도 치매 노인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했다. 70세 연배와 둘이서 같이 파트너 해서 가정집으로 찾아가 그림도 그리고 학습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중증이지 않는 두 분의 노인을 돌봄이란다. 커피를 마시라고 권해서 내키지 않는데 마신 후 주방으로 가보니 눈을 돌리고 말았단다. 30평대의 엘베가 있는 빌라에 홀로 사시는 85세 어른이 멀쩡한데 집은 개판이라며 들이켠 커피가 울렁댔다네. 자녀가 둘인데 최근 교장으로 퇴임한 딸이 근방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찾아와보지 않는다며 노인 어른이 그러시는데 뭉클하더란다.


실제로 그렇구나. 말로만 듣던 사실을 네가 경험을 하고 왔구나.


찝찝한 마음은 직장에서 얻어온다며 맥주를 단번에 들이킨다. 밖으로 나와서 반달을 쳐다봤다.


세상사는 사람의 쓰디쓴 이야기 사실이라면 그 자녀는 학교 교육 생활지침은 어떻게 지도했을까? 안쓰럽군. 침을 한 번 더 삼켰다.


G TOWER 33층에서 본 야경에 반달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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