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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란도란 Jul 02. 2024

프롤로그

진혜원, 수습기자가 되다


  대학을 졸업한 지 4년이 지났다. 지난 4년간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투고한 대학생 대상의 한 문학상에서 소설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꽤 규모가 큰 재단에서 매년 진행하고 있으며 작가 등용문이기도 했다. 상금으로 700만 원을 받았고 부상으로 독일로 7박 8일간 문학기행도 다녀왔다. 그때까진 작가로서 삶에 장밋빛 미래만 펼쳐질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번의 문학상 수상이 다음 작품을 보장하진 않는다. 그 뒤로 여러 출판사의 공모전과 각종 문학상에 원고를 보냈지만 예심조차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일도 소설 창작과 병행하기에 쉬운 일은 없었다. 서울에 살기 위해 한 달 최소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우선 돈부터 모은 후에 글을 다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정 자금이 모이면 창작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사람인 사이트를 수시로 새로고침 하며 일자리를 찾았다. 이왕이면 소설 창작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면 했고, 출판사 편집자와 잡지사 기자 모집 공고가 보이는 족족 이력서를 넣었다.      


  서울 소재 중위권 4년제 대학의 문예창작과 졸업, OO재단 문학상 소설 부문 금상 수상, 각종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이력서를 채웠다. 자기소개서에는 대학 재학 시절에 한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적었다. 애니메이션, 산악부, 마라톤, 볼링, 수영, 새벽 영어 회화까지 불철주야 동아리 활동에 매진했다. 그때는 작가에게 다양한 경험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문제는 학업에 소홀했고 졸업할 때 겨우 평점을 3.0에 맞추었단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 오는 데가 한 곳도 없었다. 모두 1차 서류 심사에서 떨어지고 있단 거였다. 이미 이력서는 50곳이 넘는 곳에 넣었다. 그중에 단 한 곳도 나를 원하는 곳이 없단 사실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어디든 연락이 오면 무조건 넙죽 엎드리라 다짐하기에 이르렀을 때 한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피플스>라는 잡지사였다. 명사(名士)들을 인터뷰하여 계간지를 발행하는 곳이었다. 편집장 면접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내일 오후 2시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사람인 사이트에 들어가 <피플스>를 검색했다. 채용 우대사항을 다시 훑어보았다. 왜 나를 면접 대상자로 선정한 것인지 궁금했다.    


  1. 관련학과 전공자(문예창작과, 국어국문과, 언론정보학과 등)  

  2. 운전면허 소지자(자차 우대)

  3. 장기 근무 가능자(1년 이상 재직 시 인센티브 차등 지급)

  4. 취미 부자(다양한 취미 활동을 가지신 분)           


  우대사항 모두에 해당되었다. 나는 가난하나 자차가 있다. 아빠가 15년이나 끌고 다닌 1톤 포터를 재작년에 150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월세 감당을 줄이고자 옥탑방에서 반지하로 내려오면서 보증금에 차액이 발생했고 딱 수중에 150만 원이 남았다. 아빠는 딸이라 싸게 파는 거라고 했다. 또한 부모 자식 간에도 돈거래는 철저해야 한다며 기어이 돈을 받아 갔다. 20만 킬로 가까이 탔는데 시가가 150만 원이 맞나 의심했으나 설마 자식에게 사기를 칠 리가 없다 생각했다. 중고 시장에 검색해보고 싶은 욕구가 가끔 치솟으나 가까스로 참고 있다.    


  당장 내일 오후가 면접이었다. 면접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했다. 면접 때 입으려고 세탁소에 미리 맡겨 두었던 정장부터 찾아와야 했다. 반지하는 습도에 취약했고 옷 관리가 쉽지 않았다. 햇볕 한 줌도 들어오지 않는 방이라 한낮에도 불을 켜야만 했다. 창문 밖은 주차장이었고 나의 파란 포터가 늘 세워져 있다. 차를 일부러 창에 바짝 닿게 했다. 그 틈으로 사람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게 말이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원하게 볼일을 보던 그 자식의 그 물건과 맞닥뜨린 후 없던 트라우마가 생겼기 때문이다. 반지하는 여러모로 젊은 여자가 살기에 취약했다.    


  문학상 시상식에서 입으려고 4년 전에 구입했던 정장은 몸에 꽉 끼었다. 그 사이에 체중이 좀 불었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겨우 자크를 올렸다. 허벅지도 잘못하다간 터지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4년간 신지 않은 7cm의 하이힐도 꺼냈다. 미리 걷기 연습이라도 할 걸 그랬다. 발도 살이 찐 것인지 상당히 불편했다.  





   <피플스>는 종로의 한 신문사 건물 바로 옆에 있었다. 매년 12월이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응모하는 국내의 양대 신문사 중 한 곳이었다. 광화문역에서 내려 신문사 건물 앞에 섰다. 족히 20층은 넘어 보였다. 그 옆에 한성 종합상가가 있었다. 각종 도매 상가들이 모여 있는 건물이었다. 1층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옷 도매 상가가 쭉 연이어져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찾아야 했다. 도매 상가들을 지나 중앙으로 가자 엘리베이터는 없고 계단이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었다. 한쪽의 안내 표지판을 보니 건물은 7층이었고 <피플스>는 7층에 있었다. 혹시나 어딘가 구석에 엘리베이터가 있을까 싶어 가까운 상인분에게 물었으나 역시나 없단다. 7cm의 하이힐과 꽉 끼는 정장을 입고 7층 계단을 올라갔다.   


  7층은 옷 부자재 도매상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 어딘가에 <피플스>가 있다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먼저 갔다. 젠장, 잘못짚었다.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왼쪽으로 걸었다. 도무지 이런 곳에 잡지사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들 때쯤 눈앞에 <피플스>가 나타났다. 부자재 상가 세 개쯤은 합친 듯한 규모였고 전면 유리창에는 보라색 시트지가 붙어 있었다. 까치발까지 들었지만 안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보라색 시트지가 붙은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공간에 책상이 스무 개 가까이 있었다. 책상 위를 쓱 빠르게 훑으니 여기가 잡지사는 맞는 것 같다. 책상에 앉아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저자가 편집장일 확률이 높았다. 요즘도 저런 컴퓨터를 쓰고 있나 싶을 정도로 오래된 컴퓨터였다. 운영 체제도 도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편집장으로 추정되는 인간은 모니터, 아니 브라운관에 코를 박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껏 명랑하면서도 상냥해 보이는 인사를 선보였다. 브라운관 같은 모니터에 코를 박고 있던, 검은색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콧등에 겨우 걸쳐 있던 안경 대를 위로 올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얼핏 봐도 눈이 상당히 안 좋은 듯했다.      


  “아, 오늘 면접 대상자! 어서 와요. 회의실로 들어갑시다.”  


  회의실? 여기에 회의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뿔테 안경이 내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뿔테 안경이 앉은자리의 뒤쪽 벽이 스르르 열렸다. 뭐야, 너 해리포터냐? 분명 벽인데 그 벽이 열리고 있었다. 벽이 다 열리자 유리문으로 된 자그마한 공간이 나왔다. 어안이 벙벙한 채 서 있자 뿔테 안경이 또다시 손짓을 했다.    

   

   “그만 놀라고 들어와요.”      


  회의실이라 불리는 곳에 앉자 뿔테 안경은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면접 대상자가 한 명 더 있단다. 잠시 뒤 한 남자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찾기가 어려워 좀 헤매었습니다.”      


  남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뿔테 안경은 종이를 나눠 주었다. 맞춤법과 짧은 글쓰기였다. 앞장에는 헷갈리는 맞춤법 20문제가 있었고 뒷장에는 짧은 글쓰기 3개가 제시문과 함께 있었다. 뒷장은 주어진 낱말로 기사를 작성해야 했다. 글마다 제한 시간 5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맞춤법 문제까지 해서 총 2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예고에도 없던 지필평가였다. 내 앞의 남자는 끙끙거리며 문제를 풀었다. 맞춤법 문제의 난이도가 상당했다.   


  뿔테 안경은 지필평가가 끝나기 무섭게 남자에게 2차 불합격을 통보했다. 남자는 맞춤법 문제를 7개를 맞혔다. 맞춤법 실력이 영 엉망이었다. 난 17개였다. 월등했다. 우쭐하고 싶어졌다. 남자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부리나케 <피플스>를 벗어났다. 나도 그때 벗어났어야 했다.          


  바로 3차 편집장 면접이 시작되었다. 뿔테 안경이 편집장이 맞았다. 자세히 보니 30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편집장은 내게 질문 하나 없이 다짜고짜 기사 하나를 건넸다. 아시안게임 마라톤 종목 금메달리스트 강유원이었다. 27세에 실업팀 입단 후 3년 만에 메달을 거머쥔 괴물 같은 신예였다.      


   “진혜원 씨가 첫 인터뷰를 해야 할 분입니다. 가을에 발행할 우리 피플스 잡지의 주제가 <실연>입니다. 명사(名士)들의 실연 이야기를 담을 겁니다. 근무는 지금부터 바로 시작 가능하신가요? 차는 가져오셨죠?”


    “바로요? 근로계약서는 작성 안 하나요?”    


    “채용정보에서 유의사항 확인을 안 하셨군요? 가장 마지막에 빨간 글씨로 최종 합격자는 소정의 수습 기간을 거친 후 근무성적을 평가하며, 사규상 채용에 결격 사유가 없을 시에 연봉 협상 후 채용하겠다고 공지했습니다.”     


  똑똑한 척인가. 줄줄 외우기라도 한 듯 채용정보를 읊어대는 편집장을 보며 고민이 되었다. 지금 있는 돈으로는 두 달을 겨우 버틸 수 있다. 수습 기간을 단축시켜야만 했다.  


   “소정의 수습 기간이 얼마나 될까요? 수습 기간 중에는 월급이 없나요?”     


   “수습 기간은 사규상 3개월이나 강유원 씨 인터뷰 성공하면 2개월로 단축하려고 합니다. 수습 기간에 주유비와 식사비 등 취재에 드는 일체의 비용은 회사에서 지원합니다.”      


  강유원 씨 인터뷰를 성공하면 2개월이다. 2개월이라면 어떻게든 버텨볼 만하다. 바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편집장은 내게 강유원 씨의 연락처가 아니라 시간과 장소를 적은 종이를 주었다. 이때라도 뭔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어야 했다. 취업이 됐다는 사실에 눈이 멀어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강유원 씨가 이미 수차례 인터뷰를 거부하셨습니다. 소속팀과도 연락이 닿지 않고요. 얻은 정보라곤 이거 하납니다.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매일 개인 훈련을 한다는군요. 혜원 씨 자기소개서 보니까 대학 때 마라톤도 했던데 이번 취재에 제격입니다. 한 달 안에 강유원 씨 취재 마무리 하시면 됩니다.”     





  새벽 5시, 노들섬 인근

  나의 첫 출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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