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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wins all (2)

<선화와 주완의 이야기>

by 도란도란 Feb 04. 2025


눈보라 치고 발은 눈 속에 푹푹 빠지는 길. 이곳을 지나는 인간들은 한결같이 몸을 움츠리고 오들오들 떨곤 했어. 저승길이 왜 이렇게 춥냐며 입이 댓 발 나왔지. 그런데 둘은 손을 잡고 가볍게 걸었어. 눈에 보이는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지. 나는 두 눈을 몇 번이고 비볐어. 둘의 주변으로 불어오는 눈보라는 마치 하얀 꽃잎이 흩날리는 것처럼 보였거든.   


  "안 춥나요?"


내 물음에 둘은 동시에 미소를 지었어. 할아버지가 말했지.


  "전혀요. 눈발이 배꽃 같아요."


할아버지가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 보며 말했어. 할머니도 맞장구를 쳤지.


  "맞아요. 우리 어렸을 적에 살던 곳, 봄이 되면 배꽃이 만발했죠."


사실 이곳의 풍경은 환영일 뿐이지. 인간이 보이는 것에 얼마나 얽매여 살아가는지, 그들의 우매함을 깨닫게 하려고 만든 장치야. 눈에 보이는 것은 시시해. 정말 중요한 것들은 눈으로 볼 수 없지. 나는 이 둘이 지금까지 내가 만난 인간들과 다르다는 걸 직감했어.  


둘은 나들이 나온 듯 가벼운 걸음으로 저승국 환생센터에 도착했어. 어느새 지팡이 없이도 할머니는 잘 걷고 있었지. 이승의 물건은 저승으로 가져올 수도 없고 필요도 없어. 오는 도중에 사라진 지팡이를 할머니는 눈치채지 못했지. 할머니가 말했어.  


  "이상해요. 온몸이 다 쑤셨는데 지금은 어린아이처럼 몸이 가벼워요."  


  "몸이 없으니까요. 영혼만 있죠!"


내가 말했어. 그리고 늘 똑같이 해야만 하는 말을 외운  마냥 술술 내뱉었지.


  "이곳이 바로 저승국 환생센터입니다. 지금부터 이곳에서 지난 생을 평가받아야 하죠. 다음 생을 결정하기 위한 절차예요. 인간계의 시간으로 49일이 주어집니다. 어떤 방법으로 평가받을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어요. 저승국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며 평가도 매우 공정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이번 생의 마지막 오디션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나는 <금생의 마지막 오디션> 신청서를 내밀며 말했어.


  "이제부턴 이승의 이름으로 부를게요. 전 깜두라고 부르세요."


  "네. 깜두 씨. 제 이름은 김선화예요."


  "좋습니다. 깜두 씨. 전 강주완입니다."


<금생의 마지막 오디션> 신청서를 보는 둘의 표정이 즐거워 보였. 우리 부서는 축생률 100%라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지. 이들은 왠지 축생에도 그다지 개의치 않을 것 같았거든. 둘이 함께라면 축생도 마다하지 않을 느낌이란 말이지.


브런치 글 이미지 1

 

  "궁금한 점 있나요?"


내가 묻자 주완 씨가 질문했어.  


  "오디션이면 노래나 춤을 추나요? 그쪽은 영 자신이 없습니다."


  "꼭 노래나 춤을 출 필요는 없어요. 말로 해도 되고 글을 써도 되죠. 이승의 삶 이야기를 자신이 가장 편하고 잘할 수 있는 걸로 표현하면 돼요."


  "그렇다면,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젊었을 적에 소설을 싶었어요. 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살다 보니 여의치 않았죠."


  "네. 좋아요. 환생센터에는 오디션에 도움을 줄 많은 학원이 있죠. 이승에 있는 모든 걸 이곳에서도 배울 수 있어. 글을 쓰려면 창작 교실이 좋겠죠?"


  "저승에서도 배울 수 있어 기쁩니다. 창작 교실이라니 제가 이런 행운을 누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저승에 오는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최선을 다하세요."


선화 씨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어.


  "저도 주완 씨와 함께 창작 교실로 가고 싶어요. 이곳에 작가들도 많나요?"       


  "네. 이름만 들어도 놀랄만한 대문호가 아주 많죠. 제가 추천해도 될까요? 제 친구이기도 한 윌리엄의 창작 교실을 강력 추천합니다. 이승에선 소실된 작품인 <사랑의 결실>이 이곳, 저승에 있죠. 누구라도 읽는 순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는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사랑 이야기를 쓰려면 윌리엄의 창작 교실이 딱이라고요!"


둘은 환생센터에서 오디션 신청서를 작성하고 바로 윌리엄 창작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어. 윌리엄은 수강료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랑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지. 주완 씨와 선화 씨는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했어. 윌리엄은 두 손을 모으고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며 들었지.  


  "오~ 오~ 그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영감이, 영감이 별똥별처럼 쏟아진다오! 고맙소. 나는 지금 당장 글을 써야겠소. 글을 다 쓰면 돌아올 테니 기다려 주길 부탁하오."


윌리엄은 자신의 집필실로 쌩하니 들어가 버렸어. 집필실 위의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지. '집필 중' 세 글자가 반짝였어. 윌리엄은 집필에 들어가면 모든 강의를 쉬었어. 저승에 와서도 인간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은 여전했고, 창작 욕구는 줄어들지 않았지. 글을 쓰는 게 저리도 재미있는 일일까 싶다니까. 난 책이라면 딱 질색이야. 눈 아파. 내가 그나마 읽는 책이 있다면 윌리엄의 작품들이지. 윌리엄의 작품은 연극으로도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아. 나는 주완 씨와 선화 씨에게 말했어.


  "마침 윌리엄의 연극이 무대에서 펼쳐지는 중이죠. 같이 보러 갈래요?"


  "좋아요. 무슨 작품인가요?"


  "제목은 비밀이에요. 제가 특별히 한 구절을 낭송해 드리죠. 전 이 연극을 수백 번이나 보았거든요. <아무리 쓸모없고 비천한 것이라 해도 사랑은 그것들을 가치 있고 귀한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어. 사랑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니까> 여기까지! 어떤 작품일까요?"


선화 씨와 주완 씨는 방그레 미소 지었어. 선화 씨가 말했지.


  "꿈같은 이야기죠. 한여름에 꼭 보고 싶었지요."

   

출처 : Unsplash의Michel Bosma출처 : Unsplash의Michel Bosma




둘은 윌리엄의 연극을 보고 이승에선 소실된 작품인 <사랑의 결실>도 읽었지. 윌리엄은 한창 집필 중이었고 둘은 창작 교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어. 얼마 뒤, 주완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끄적였다며 종이 한 장을 머뭇거리며 내밀었어.


  "이승에선 글을 써본 적이 없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깜두 씨가 한번 봐주시겠어요?"

  

  "아니, 첫 문장부터 영어잖아요! 전 영어를 못 읽어요. 읽어주세요."


주완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읽기 시작했어. 지금부터 주완 씨의 이야기를 같이 들어보자고. 어디 갈 생각 말고 그 자리에 멈춰. 앉아. 귀를 열어.


<주완의 이야기>

"Living is easy with eyes closed."

1967년 발표된 비틀스의 <Strawberry fields forever>라는 곡에 쓰인 가사다.
나는 오랜 세월 현실의 삶이 꿈이길 바랐다. 실재하는 모든 것들은 허상이고, 내가 상상하는 세상이 진실이길 바랐다.
참담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눈을 감지 않고는 살아내기 힘든 삶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고 비로소 살아낼 수 있었다.

이 노래의 모티프가 된 스트로베리 필즈 유치원은 영국에 있던 고아원이다.
내 삶을 이야기하려면 나 또한 먼 기억 속의 고아원으로 가야 한다. 최초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곳은 과수원이 많은 동네였다. 봄이 오면 온 세상이 하얀 배꽃으로 물들었다. 유년 시절의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 시절의 풍경은 메마른 삶에 단비가 되어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운 그리움도 되었다. 인간의 삶은 흐르며 어느 순간에도 영원히 머무를 수 없다.  
 
1938년에 태어났다는 것 외에 나를 규정할 수 있는 기록은 세상에 없었다. 생일도 이름도 없었다. 삶의 기억이 어느 고아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내겐 그것이 다였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이듬해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어서야 선교사는 내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너는 주님의 완성품이야.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강하게 자라거라." 그래서 나는 강주완이 되었다.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게 된 그해 여름, 나는 선화를 만났다. 1938년생 김선화, 그녀는 예쁜 이름이 있었고 삼촌의 손을 잡고 고아원에 왔다.

나의 이야기는 단 하나의 '사랑'에 관한 것이다. 외로운 두 아이는 유년 시절을 함께 했고, 참혹했던 전쟁에서 서로를 지키려 했다. 열여섯, 전쟁의 끝에서 헤어져 장장 69년을 그리워했다. 어떻게 그 오랜 세월 그리워했냐 묻는다면, 상상할 수 있어 가능했다 답하겠다. 정말 그뿐이냐 또 묻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라는 '희망'을 굳게 믿었다 답하겠다.
내 생애 단 하나의 사랑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빛이었고 희망이었다.


https://youtu.be/Kd0Py-BiBtg?si=outYwUPBo-sJtp7C


Let me take you down
'Cause I'm going to strawberry fields
Nothing is real
And nothing to get hung about
Strawberry fields forever
Living is easy with eyes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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