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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wins all (3)

<선화와 주완의 이야기>

by 도란도란 Feb 11. 2025


<주완의 이야기>를 다 읽었을 때 마침 윌리엄이 집필실에서 뛰어나왔어. 윌리엄은 고개를 치켜들고 양손은 하늘을 감싸듯 뻗으며 스스로 감탄을 금치 못했지.  


  "걸작이야! 저승에 와서 쓴 작품 중에 이번 작품이 단연 최고라고. 이 기쁨을 그대들과 나누고 싶소."  


  "오, 축하해요. 윌리엄, 여기 주완이의 글도 읽어봐 주세요. 드디어 오디션에 낼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아니, 주완이라니? 그대들은 벌써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된 거요? 그럼 나도 주완이라 부르겠소.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참으로 다정한 일이 아니오."      

 

  "네. 좋아요. 저승에서 나이는 무의미하죠. 이제부터 다정하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로 해요."       


선화와 주완도 동의했지. 둘의 모습은 어느새 앳된 10대 소년, 소녀로 바뀌었어. 죽은 영들이 저승에 머무는 동안은 각자 타고난 성품이 더욱 도드라지게 되어 있어. 그리고 대개는 이승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나는 윌리엄에게 다가가 <주완의 이야기>를 건네주었어. 윌리엄은 얼른 받아 단숨에 읽어 내려갔지. 윌리엄은 이내 눈물을 글썽이며 주완에게 다가갔어. 주완의 손을 덥석 잡더니 이렇게 말했어.


  "오, 주완! 그대는 대체 내게 뭘 배우겠단 거요? 오히려 내가 그대에게 수업을 받아야겠소. 주완, 혹시 이승에 있을 때 유명한 작가 아니었소?"


  "아닙니다. 글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윌리엄 작가님께 칭찬을 받다니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처음이라니 믿을 수가 없소. 그리고 우린 이제 친구니 편히 윌리엄이라 부르시오. 그대는 이승에 있을 때 글을 안 쓰고 무얼 한 거요? , 애석한 일이도다. 인류는 이렇게 또 한 명의 위대한 작가를 잃고야 말았군."


윌리엄은 주완의 손을 잡고 연신 폭풍 칭찬을 쏟아냈어. 윌리엄이 딱 좋아할 만한 이야기였지. 주완의 글에 감동한 윌리엄은 차마 아쉬운 듯 마지막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 낭송했어.


  "내 생애 단 하나의 사랑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빛이었고 희망이었다."


윌리엄은 사랑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어. 사랑이 없다면 인류는 존재가치를 상실한다고 늘 말하곤 했지.


  "오~ 주완, 그대 마음이 가는 대로 이야기를 써 주시오. 난 가르칠 게 없소. 글은 가장 나다울 때 위대해지는 법이라오."


주완의 옆에 있던 선화도 종이 한 장을 윌리엄에게 내밀었어. 선화는 이승에서 화가였다고 했지. 종이에는 민트색 하늘에 하얀 달과 분홍색 구름이 보였어. 그림 한편에는 노래 가사가 적혀있었어.  


  "전 그림을 그렸어요. 글재주가 없어서 제가 이승에서 좋아하던 노래 가사를 적었죠."


  "정말 아름다운 가사군요. 선화, 우리 모두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지 않겠소?"


윌리엄의 부탁에 선화는 노래를 불렀어. 물결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선화의 목소리를 따라 우리는 아련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갔지.


우리가 덜 자란 손을 포개고
함께 색칠했던
그 시절의 한 페이지를
혼자서 펼쳐봅니다

영원함을 속삭이던
그대는 나와 했던 약속은 다 잊었나요
쓸모 없어진 나의 마음은
갈 곳을 잃어 흩어지네

난 구름 타고 멀리 날아
하늘에 떠도는 하얀 우리 추억 모아
잠든 그대 꿈속에 아무도 몰래
비가 되어 내릴래요

우리 둘을 잇는 바람 하나가
그대의 안녕을 내게 전해주길

- 신지훈, 구름 타고 멀리 날아
출처 : Unsplash의 Szabo Viktor


선화의 노래가 끝나고도 윌리엄은 한참 동안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 그리고는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라 선화에게 말했지.


  "노래 가사로 선화의 이야기를 쓴다면 너무도 아름다울 것 같소. 구름을 타고 날아 잠든 그대 꿈속에 비가 되어 내린다는 표현이 내 마음을 한없이 적신다오."


  "네. 써볼게요. 전 그리운 이를 떠올리며 때론 구름이 되고, 때론 바람이 되고 싶었어요. 자유롭게 날아 그리운 이를 만나러 가는 꿈을 꾸었죠."  


  "둘의 이야기가 제대로 완성되면 저승 문학계에 큰 획을 그을 거 같소. 둘은 지금 당장 내 집필실로 들어가 창작에 전념해 주시오. 나의 소중한 친구 깜두, 잠시 나와 이야기 좀 나누지 않겠소?"    


선화주완은 윌리엄의 집필실로 들어갔어.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지. 윌리엄은 자신의 집필실을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어. 자신만의 공간에 누군가 들어가는 걸 끔찍이 싫어했거든. 창작에 방해가 된다면서 말이야. 둘이 집필실로 들어가자 윌리엄이 나지막이 말했어.


  "깜두, 이들의 심사위원은 정해졌소?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 내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싶소."


  "보통은 자신의 다른 자아들이 심사위원이 되어 심사를 하죠. 공정한 심사를 방해할 거짓 자아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따로 심사위원을 위촉해요. 둘의 심사위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어요."


  "그럼 내가 심사하면 안 되겠소? 꼭 내가 해야만 하오. 내 이리도 간절히 부탁하겠소."


  "윌리엄,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여요."


  "깜두, 내 말을 잘 들어 보시오. 모름지기 글은 작가가 심사하는 게 이치에 맞소. 자신이 쓴 글을 자기가 심사한다? 이는 절대 공정할 수 없소."


  "사심을 담아 심사하면 이 또한 저승의 규율을 어기는 것이죠. 그러니 윌리엄의 부탁은 들어줄 수 없어요."


  "깜두, 내 이 이야긴 나중에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지금 해야겠소."


윌리엄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귀에 대고 속삭였어. 윌리엄의 말은 충격적이었지.


  "윌리엄! 제정신이요? 그건 절대 안 돼요. 허락할 수 없어요."


  "내 결심은 되돌릴 수 없소. 오래전부터 나는 이리할 마음이었소. 그러니 친구의 마지막 부탁을 꼭 들어주시오."          

 

나는 끝내 윌리엄의 결심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았지. 그리고 윌리엄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어. 선화와 주완의 심사위원은 윌리엄과 그의 친구인 조지와 가브리엘이 맡기로 했어. 윌리엄은 공정한 심사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심사 결과는 어쩐지 정해진 것만 같았지.

 

선화주완은 앞으로 자신들에게 벌어질 엄청난 일을 모른 채, 윌리엄의 집필실에서 한동안 창작에만 몰두했어. 둘은 틈틈이 윌리엄과 내게 쓴 글을 읽어 주었어. 주완의 이야기에선 전쟁의 참혹함, 조마조마한 탈북 과정, 오랜 해외 생활 끝에 마침내 고국에 돌아온 여정이 이어졌지. 그리고 둘이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됐는지를 썼어. 그들의 인생은 책 한 권에는 도저히 담을 수 없을 만큼 방대했지.


아쉽지만 둘의 이야기 전문은 이승에 있는 사람들에겐 비공개하기로 했어. 저승국의 직원들이나 이곳에 와서 오디션을 마친 영만이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지. 이곳에 전문을 공개했다간 나도 벌을 받을 수 있다고. 그래도 내가 특별히 선심을 써서 선화 일부를 보여줄게.  


<선화의 이야기>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언제라도 펼쳐보고 싶은 페이지가 있다. 나에게 그 페이지는 주완이와 고아원에서 함께 한 시간이다. 서로의 작은 손을 맞잡아 주었던 따뜻한 시절이었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고 느껴졌을 때 주완은 망설임 없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나의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1945년, 나의 부모님은 만주에서 귀국하던 길에 열차 폭발 사고로 돌아가셨다. 나를 돌봐주셨던 할머니도 그해를 넘기지 못했다. 난 이웃 삼촌의 손에 붙들려 고아원에 갔다. 그날 고아원 마당에서 흙투성이의 주완이를 처음 보았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익살스러운 표정, 그 시절 주완이는 나를 늘 웃게 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고아였지만 주완이 있었기에 난 혼자가 아니었다.

주완이와 나란히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질 때도 주완이와 나는 함께였다. 지천이 죽음과 피로 물든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남아야 했다. 밀고 밀리며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참혹한 전쟁이 끝나기만을 우리는 두 손 모아 기도했다.

1953년 열여섯이 된 주완은 북한군에 끌려가 의용군이 되었다. 남자는 남겨두면 언제든 적군이 될 수 있기에 모두 끌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휴전이 발표됐다. 가까스로 도망쳐 돌아온 한 남자아이에게서 주완의 소식을 들었다. 반쯤 넋이 나간 채 포승줄에 묶여 북한군에게 끌려갔다는 게 주완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그 후 주완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휴전 이후, 두 동강으로 갈라진 나라에서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이 되었다. 그리움은 끊임없이 바라보는 일이었다. 달을 보면 달이 되고 싶었고, 해를 보면 해가 되고 싶었다. 내가 바람이 된다면, 구름이 된다면, 새가 된다면 주완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열여섯에서 멈추어버린 기억 속 소년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그림을 그렸다. 더이상 눈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에 담으면 영원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도 옅어지지 않는 그 마음은 사랑이었다.    

세월은 야속하게 흘러갔고 나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길어야 3개월이라는 의사의 말에 제일 먼저 주완이 떠올랐다. 이번 생에는 결국 너를 못 보겠구나 싶었다. 삶의 마지막을 보낼 요양병원은 작은 시골 마을에 있었다. 병원의 길목에는 과수원이 드넓게 펼쳐졌다. 배꽃이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봄이었다. 주완이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동네의 풍경이 떠올랐다. 마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배꽃이 눈꽃처럼 흩날리는 날, 눈을 감아도 좋겠다 싶었다.   

생의 모든 바람을 내려놓고 담담히 죽음을 기다리던 때, 거짓말처럼 주완이 돌아왔다. 69년 만이었다. 깊은 주름 너머에 열여섯 소년의 익살스러운 눈빛을 한 주완이었다.


https://youtu.be/xyh0 yKKkWto? si=vwJtLo2 ei6 ItvQlr


난 구름 타고 멀리 날아
하늘에 떠도는 하얀 우리 추억 모아
잠든 그대 꿈속에 아무도 몰래
비가 되어 내릴래요
우리 둘을 잇는 바람 하나가
그대의 안녕을 내게 전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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