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양혜은 씨
쓰면서 배운다.
하얀 화면에 깜박이는 커서를 마주하면, 두근두근한 느낌은 순간일 뿐이다. 대개는 막막하다. 끝도 없이 막막하다. 커서를 노려보다가 한 글자를 못 쓰기도 했다. 한 문장을 간신히 쓰고 두 문장을 겨우 쓴 후에 다시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계속 0인 것만 같다. 쓰기가 그런 일이다.
나는 글 쓰는 걸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쓰다 보면 되겠지' 했는데 써보니 욕심이 점점 커졌다. 더 잘 쓰고 싶었다. 쓰면서 배우면 된다는데 나는 쓰면서 머리카락만 쥐어뜯었다. 내 나이 이제 겨우 열일곱에 탈모가 생길 것 같다.
<소설창작> 강좌의 선생님이 매 시간마다 말했다.
"계속 쓰는 사람은 이미 작가예요. 고민할 시간에 그냥 쓰세요. 그저 쓰세요."
낙원동 주민센터 문화교실 <소설창작> 수업은 분기마다 소설 한 편을 완성해야 한다. 두 번째 수업부터 시작된 소설 창작 과제는 그럭저럭 진행 중이다. 잘 되고 있다곤 못하겠다. 매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반 스케치 강좌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덕분에 이야기 소재를 찾는 일은 수월해졌다.
세 번째 수업에서 소설의 시점을 배웠고, 네 번째 수업에선 소설의 구성방식을 알게 되었다. 나는 가장 쓰기 쉬울 것 같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선택했고,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쓰기로 했다.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어반 스케치 강좌에서 만난다. 박봉수, 김순임, 정이만, 장하리, 그리고 나의 이야기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모습을 보고 딱 떠오르는 이름으로 고민 없이 지었다.
어반 스케치 수업에 가면 어떻게 쓰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지만 상상으로 전개상 빈 부분을 채워나갔다. 직접 경험해 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에 따른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일이 어려웠다.
제일 젊은 장하리 아줌마도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았다. 하리 아줌마가 두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나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했다. 하리 아줌마가 그 상황에서 어떤 마음일지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정이만 아저씨의 마음을 읽는 일은 더 어려웠다. 말수도 적고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서였다. 박봉수 할아버지와 김순임 할머니는 나랑 60년은 차이가 났다. 서로 살아온 시대가 너무도 달랐다.
내 고민을 듣던 김순임 할머니가 말했다.
"듣고 보니 작가는 어려운 일을 하는 거구만. 살아보지도 않고 겪어도 보지 않은 일을 어떻게 해 본 것처럼 쓴대? 자식을 길러보지 않고선 부모의 심정을 알기 어렵지. 겪어보는 게 제일이야."
"네. 너무 어려워요. 순임 할머니 이야기도 잘 쓰고 싶은데, 전 엄마인 적도 할머니였던 적도 없어요. 그 상황을 떠올려 보고 상상해서 쓰려니까 막막해요. 하리 아줌마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하리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겠네. 그럼 청소년 소설은 어때? 지난번에 딸이 읽던 청소년 소설을 읽었는데 재미있더라고. 무슨 성장 소설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혜은 씨는 지금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으니까 그 시기의 감정을 잘 그려낼 수 있잖아. 쓸 수 있는 글을 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청소년 소설
왜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청소년의 이야기를 쓰면 지금보다는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써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쓰면서 배우면 되니까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본다.
"고맙습니다. 다음은 청소년 소설을 써볼래요. 지금 쓰는 건 끝까지 써보고요."
"멋지다! 완성되면 꼭 보여주기다."
"네."
장하리 아줌마가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나는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또다시 하얀 화면의 깜박이는 커서를 마주하러 간다. 순간이라도 두근두근 설레는 일을 찾았다.
장하리 아줌마와 함께 어반스케치 수업 다음날은 정이나 선생님 화실에 갔다. 연말에 있을 전시회에 낼 그림을 그리려면 일주일에 한 번 수업으로 부족했다. 하리 아줌마와 나의 그림 실력은 비등했다. 단풍잎 그리라면 닭발을 그려놓고 바위를 그리라면 바게트를 그렸다. 풍경이 아니라 먹을 것들로 흰 종이를 채웠다.
그렇게 나가게 된 선생님의 화실에서 정이만 아저씨를 만났다. 화실로 들어선 나를 본 아저씨는 토끼눈이 되었다. 적잖이 놀란 듯보였다.
"이만 아저씨도 여기 다니세요?"
"아... 예."
"전 지난주에 빠져서 오늘 갑자기 나오게 됐어요. 정이나 선생님이 시간 되는 날 오후에 오라고 했거든요."
"아... 정이나 선생님은 잠시 외출했어요. 돌아올 때 됐으니 좀만 기다리면 될 거예요."
"그럼 그때까지 아저씨를 취재할게요. 아저씨 시점에서 글 쓰는 게 제일 어려워요. 질문 몇 가지만 해도 되나요?"
"네. 질문에는 잘 답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요, 아저씨는 왜 정이나 선생님 눈치를 보세요? 수업 첫날 발견했는데 궁금해서요. 그 뒤로도 여러 번 힐끗힐끗 보시던데요."
"예리한 작가의 눈은 피할 수 없군요. 정이나 선생님은 제 딸입니다."
"역시나! 예상은 했는데 진짜였네요. 다음으로 두 번째 질문은요, 아저씨 어디 아프세요?"
"아픈 건 어떻게 알았나요? 그것도 티가 나요?"
"네. 전 바로 옆자리잖아요. 아저씨가 그림 그리다가 멈칫하는 걸 여러 번 봤어요. 손에 통증을 느끼시는 거 같았어요."
정이만 아저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저씨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디가 조금 불편하신 줄만 알았다. 아저씨는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어반 스케치 강좌를 수강신청 했고,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면 자신이 아프다는 걸 잊게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어반 스케치를 배우며 만나게 된 사람들 덕분에 즐겁다고. 타인의 삶에 관심조차 없었는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되었단다. 느슨한 연대지만 인연의 끈은 강했고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이제 압니다.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남은 시간은 일상을 살고 싶어요."
정이나 선생님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아저씨와 나눈 이야기를 곱씹어 보았다. 집에 돌아와선 바로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돌아오는 내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끝이 점점 다가온다는 걸 알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상상했다. 가슴이 저릿했다. 정이만 아저씨의 이야기를 쓰면서 수시로 눈물이 터졌다.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나는 소설 속에서 살 길을 찾고 있었다.
소설은 3분기 강좌가 끝나갈 무렵에 완성했다. 9개월이 걸렸다. 매주 과제로 원고지 30매를 써냈다. 다 모으니 상당한 양이었다. 프린트한 원고를 품에 안으니 벅찬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제목을 바꾸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시작'을 하고 있다. 결과는 두려워하지 않고 우선 시작부터 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어반 스케치 강좌에서 그간 배운 실력으로 표지 그림도 직접 그렸다. 신발을 신발처럼 보이게 그릴 수 있다. 하다 보면 언젠가 된다.
내년 3월 학교로 돌아간다. 다음은 성장소설이다. 소재를 낚으러 학교에 간다.
자, 다시 시작이다!
<열일곱, 양혜은 씨>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