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청의 호수(Shirogane Blue Pond)는 진한 에메랄드색을 내는 호수로 알려져 있지만 그날그날의 일조량에 따라 호수의 색이 다르다. 크게는 세 가지 색을 띤다고 한다. 가이드의 표현을 빌리면, 하늘이 열려야 선명한 푸른빛의 호수를 볼 수 있단다.
우리가 호수를 보았던 날은 하늘에 구름이 있었던 날이었기 때문에 선명한 에메랄드빛 호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잔잔한 그린빛의 호수는 진한 가을의 정취를 머금고 있었다.
그 가을의 정취를 담고 있던 ‘청의 호수’는 아름다웠지만, 여행 전에 사진으로 보았던 그 느낌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특색 있는 호수인 것은 맞다. 여느 호수와는 다른 특별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수를 마주했던 기억은 잔잔하고 좋은 느낌으로 떠올려진다. 마치 '알게 되니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이었네 '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났던 것처럼…
‘청의 호수'는 타카하시 마스마라는 여성 사진작가의 사진으로 인해 유명해졌다. 그녀가 호수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잘 표현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쉽게도 나는 그녀의 사진을 찾아봤지만 보지 못했다.
‘청의 호수’의 푸른빛은 비교적 근방에 위치해 있는 시로가네 온천의 흰 수염 폭포에서 알루미늄을 포함한 물이 호수로 흘러들어오면서 내는 빛이다. 그리고, 이 호수에 서있는 나뭇가지들은 수몰된 숲의 자작나무와 낙엽송으로, 생명을 잃은 고사목들인데 호수의 운치와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호수면에 비친 나뭇가지들의 반영이 담긴 사진들은 여느 호수와는 다른 색다름을 선사한다.
그곳은 자연이 그려낸 아름다운 그림 중의 한 점을 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
호수에서부터 차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는 흰 수염 폭포를 볼 수 있었다. 다리 위에서 시선을 아래로 두고 감상할 수 있었던 폭포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다. 이 호수의 물(水)이 '청의 호수'로 흘러들어가 아름다운 색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폭포수는 온천수이기 때문에 겨울에 얼지 않는다고 하니 설경 속에서는 더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내리고 있는 풍경 속, 따뜻한 수증기를 내뿜으며 흐르고 있는 물줄기를 잠시 상상해 보았다.
멀리서 바라보았던 폭포는 구름을 얹은 산, 숲, 그 숲으로 흐르는 물줄기들이 잘 어우러져 있었고, 이 날 보았던 비에이 지역의 가을 담은 풍경들은 하나같이 편안함 속에서 느껴지는 힐링을 선사해 주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여행'의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자연에서 호흡하는 공기로 인해 마음까지 정화되기도 하고, 시각을 통해 느끼는 평안이 머릿속에 반복되던 생각들을 차분히 가라앉히기도 하며, 가끔씩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자연스레 열어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하늘이 열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마음이 열리는 것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