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에 발을 딛던 날
The Last Frontier
나는 이 별명이 참 좋다. 뭔가 미지의 땅 같고, 아직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은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 같고, 혹독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사가 숨어 있을 것만 같은 이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험을 아주 좋아하거나 개척정신이 강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안정을 추구하는 쪽에 가깝다.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편안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알래스카에 살게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알래스카로 오겠다고 결심하기 전까지, 알래스카는 그저 지도 속 어딘가에 있는 낯선 땅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래스카로 오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알래스카는 시인의 꽃처럼 내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곳에서의 삶은 내 인생에서 정말 특별한 시간이다. 어떤 경험이든 이것이 좋다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듯이 이곳에서 살아가는 삶은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나는 이 시간을 감사함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래스카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 첫걸음을 이제 조심스럽게 내디뎌본다.
『알래스카로 초대합니다』, 그 여행의 문을 열며.
2017년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알래스카 땅을 밟았다.
불과 열흘, 짧은 여행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우리가 짜놓은 계획보다는 더 크고 예측 불가능한 길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그렇게 우리는 알래스카로 오게 되었다.
2021년 5월 5일.
우리는 12개의 여행 가방과 함께 알래스카 남동쪽에 있는 리빌라기기도(Reveillagigedo) 섬에 도착했다.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가장 큰 주로, 한반도 전체 면적의 약 8배, 남한 면적의 약 17배에 달하는 광활한 땅이다.
그중에서 우리가 정착하게 된 곳은 '캐치캔(Ketchikan)'.
알래스카 크루즈가 가장 먼저 닿는 곳인, 이 섬에서 유일한 도시다. '참치캔'을 떠오르면 그 이름을 기억하기가 쉽다.이 섬은 제주도와 비슷한 크기지만, 도로는 섬의 한쪽 면에만 나 있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날, 하늘은 흐렸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캐치캔에 가기 위해 우리는 우선 '그리비나 아일랜드'라는 섬에 있는 작은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5분 거리의 바다를 페리로 건너가야 했다.
그렇게 짧은 거리인데, 왜 이곳 사람들은 다리를 만들지 않지? 다리를 놓으면 정말 편할 텐데... 왜 굳이 이런 불편한 시스템을? 나는 의아했지만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공항이 있는 섬과 캐치캔을 다리로 연결하면, 크루즈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려야 한다. 그것 또한 엄청난 일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불편해도 페리를 타고 다닌다.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불편함 속에서 지혜를 선택하고 있었다.
우리는 페리를 타고 리빌라기기도 섬에 있는 캐치캔에 도착했다. 여행자 숙소에서 두 달을 머물며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초등학교 4학년 딸과 2학년 아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크루즈 관광 시즌을 앞둔 이곳에서는 집을 구하는 일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집주인들은 여름마다 몰려드는 단기 근로자들에게 비싼 임대료를 받고 단기간만 렌트를 주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장기적으로 정착하려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적처럼 집을 구했고, 아이들의 학교도 결정됐다. 그렇게 하나씩, 삶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엔 소박하고 조용한 시골섬.
특별히 볼 것도 할 것도 없는 곳이지만, 집 앞 바닷가에는 수달이 뛰어놀고, 연어가 헤엄치고, 범고래와 혹등고래가 나타난다. 길을 걷다 보면 사슴과 마주치고, 곰이 우리 집 마당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하늘 위에는 흰머리 독수리가 유유히 날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처음 Ward Lake라는 호수에 갔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거울처럼 잔잔한 호수 위로 산이 그대로 비취고 있었고, 그 풍경은 마치 달력 속 사진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수없이 찍고 또 찍었다. 내 생에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매년 4월부터 10월 중순까지는 알래스카 크루즈가 들어오는 시즌이다. 어떤 날은 이 섬의 인구인 13,000명 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현지 사람들은 다운타운에 교통이 혼잡하다고 불편해 하지만 나는 너무 좋다. 사람 구경을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만 뜨면 천국이 따로 없다. 그런데 해가 잘 뜨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대신 비는 1년에 300일 이상 온다고 말할 정도로 일상이다. 우산을 쓰지 않는 이곳, 필수품인 비옷과 장화. 우리의 패션은 아주 간단하다. 그 단순함 속에서 또 다른 여유를 배운다.
이 섬에는 백인뿐 아니라 알래스카 원주민들 - 클링깃(Tlingit), 하이다(Haida), 심시언(Tsimshian) 종족도 함께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클링깃 종족이 모여 사는 마을, 삭스만이라는 빌리지(Saxman Village)가 있다.
처음엔 클링깃 종족은 어떤 사람들 일지 너무 궁금했다. 그들은 한국인들과 외모도 비슷하고 문화에서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심지어 김치도 좋아한다고 하니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삭스만 빌리지는 1894년, 실종된 교사 사무엘 삭스만의 이름을 따라 세워졌다. 통가스와 케이팍스 빌리지 사람들, 즉 원주민들이 이주해와 정착한 땅이다. 마을 한가운데엔 세계 최대 규모의 토템폴 컬렉션이 세워져 있다. 모든 의미를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조각들엔 그들의 기억과 영예가 깊이 새겨져 있었다.
클랜 하우스에서 클링깃 종족들의 전통 춤 공연이 시작되었다. 클랜 하우스는 오래전 원주민들이 살았던 집을 재연해 놓은 공간이었다. 중앙에 큰 화덕이 있고 텐트처럼 각 방을 막아놓아 대 가족이 함께 살았던 곳이다. 그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나와 환영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동작은 단순했지만, 그 안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할 역사의 서사가 담겨 있었다.
다른 민족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에서 오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사상, 전통, 가치관, 웃음, 슬픔, 그들의 삶을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여러 가지 역사적인 사건속에서 원주민들의 언어와 전통이 많이 사라져 버린 현실이 안타까웠다.
혹독한 날씨와 환경 속에서도 이 땅을 지키며 살아왔던 클링깃 종족, 그들의 언어와 춤, 전통이 더 많이 회복되는 날을 나는 소망해 본다.
"굿뉴스치이시(감사합니다)"
오늘 클링깃 댄스를 보며 배운 말이다.
알래스카는 내게 낯선 땅이었지만 이곳은 나를 품어주었고, 나는 이 땅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의 눈을 새롭게 열어준 땅, 알래스카.
이곳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땡큐! 알래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