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사슴, 씨아스파라거스 이야기
우리가 사는 알래스카 캐치캔(Ketchikan)은 '세계의 연어수도(The Salmon Capital of the World')라 불린다.
이곳은 집 앞 바닷가만 나가도 연어가 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쉽게도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연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야말로 '삼겹살파'다.
처음 이 섬에 왔을 때 강바닥을 가득 메운 연어 떼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연어를 왜 아무도 안 잡지?"
알고 보니, 그 연어들은 이미 알을 낳고 생을 마무리하려는 연어들이었다.
이곳은 세계의 연어 수도답게 버스, 공원 쓰레기통까지 연어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연어에도 급이 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다.
King : 킹
Sockeye : 싹아이(red)
Coho :코호 (silver)
Pink : 핑크
Chum첨 순이다.
한국에서 보던 약간 붉은빛 연어는 여기 사람들은 취급도 하지 않는다.
최고급 킹 연어를 잡으려면 별도의 스탬프(허가증)가 필요하고, 하루 잡을 수 있는 수량도 제한되어 있다.
신기하게도 등급에 따라 연어의 맛도 확연히 다르다.
집 앞 바닷가에 거센 물살을 헤치며 올라가는 연어를 보면 그 치열한 생명력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연어시즌에는 사람들이 밤낮으로 연어를 잡으러 나간다. 집집마다 필수품처럼 보트가 있다. 그야말로 알래스카의 피크시즌이다. 한국에 김치 냉장고가 있듯이 이곳에는 연어를 보관하는 냉장고가 따로 있다. 김치를 나누듯, 이곳 사람들은 연어를 나눈다.
알래스카에 온 지 얼마 되지않아, 하이다 원주민 할머니가 직접 만든 연어수프를 주셨다.
할머니의 손맛, 최상급 수프다.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했다.
"얘들아, 연어 수프를 주셨어."
"정말요?"
아이들이 신나서 식탁으로 달려왔다. 한 스푼씩 떠먹는 그 순간,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그 맛!
생애 처음 맛보는 식감과 향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잡은 연어를 훈제 창고에 넣어 말리고, 겨울 내내 식량으로 사용한다.
가을이 되면 또 다른 식재료가 등장한다. 바로 사슴고기다.
어느 날, 친한 친구가 '프린스 오브 웨일스 섬'으로 사냥을 떠난다며 행운을 빌어 달라고 했다.
그에게 사슴 잡는 과정을 들어보니 쉬워 보이진 않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냥을 해 볼 수는 있겠지만 사슴을 잡고 난 뒤처리를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벌써부터 포기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는 사냥에 성공했다며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사슴고기를 선물로 주었다.
과연 어떤 맛일까?
"얘들아, 사슴 고기를 받았어."
아이들이 눈이 동그래진다. 우리는 다시 식탁에 모여 앉았다.
한 입 베어 물자, 참치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육향이 가득한 독특한 맛이 느껴졌다.
친구네는 이렇게 잡은 사슴 고리를 손질해 겨울 내내 식량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클링깃 원주민 할머니 집에 식사초대를 받았다.
오늘도 변함없이 메인요리는 연어다. 그릴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연어 냄새가 온 집안을 진동한다.
그리곤 처음 보는 풀이 있었다. 그 풀은 '씨아스파라거스 (Sea asparagus)'였다. 6~8월 사이 썰물 때 특정 해안가에서만 캘 수 있는 아주 귀한 식재료다. 그 장소가 어디인지 아는 원주민들이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비록 투박한 모양이지만, 비타민 A, C, B가 풍부하고 칼슘과 아연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힘들게 캐 온 정성을 생각하니 쉽게 먹을 수가 없다. 귀한 음식을 내어준 할머니의 넉넉한 마음이 느껴지는 식탁이었다.
이곳 원주민들이 즐겨 먹는 또 다른 특별한 음식은 '헤링 에그'와 '새먼 에그'다.
알래스카의 진짜 맛은 이렇게 자연에서 온다.
알래스카 시골섬 살이 2년이 지나가면서, 남편은 자신만의 요리를 개발했다. 바로 연어 김치찌개!
"그냥 김치찌개에 연어만 넣으면 돼."
그의 말처럼 간단하지만 맛은 기가 막히다.
윗집 케냐아저씨도 남편표 연어 김치찌개의 열렬한 팬이다.
한국에서 낚시를 해본 적도 거의 없고, 별로 소질이 없어 보이는 남편은 케냐 아저씨 덕분에 매번 연어를 얻을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연어와 연어 김치찌개의 교환이다. 작지만 정겨운 거래가 이곳 식탁의 또 다른 재미다.
어느 날. 이곳 현지 식당에서 비슷한 메뉴가 등장했다.
혹시 우리 집 소문이 퍼진 걸까?^^
비싸서 한 번도 사 먹어본 적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집 김치찌개가 세상 최고'라고 생각하며 먹는다.
알래스카 식탁에는 자연이 주는 것을 함께 나누고, 서로 다른 입맛을 열린 마음으로 즐기는 작지만 깊은 기쁨이 담겨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이 땅에서 우리는 소박하지만 가장 따뜻한 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오늘도 연어 김치찌개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와 함께,
당신을 알래스카 식탁으로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