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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이혜묵 Jul 15. 2024

과거를 지운다

생명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추억의 책과 옷가지를 버린다.

2024년 2월이었다. 퇴직 후 1년이 다되어 간다.

쉼 없이 일 년을 달려왔다. 무엇이든 닥치는 되로 배워보겠다는 신념으로 남들처럼 퇴직후 하는 여행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빨리 자립해 보고 싶어서였다.

가끔 꿈속에서 직장생활 중에 했던 업무가 나타나기도 하고, 선임자와 동료, 후배들과 대화도 꿈속에서 해본다.

지워지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핑계로 팬트리와 책장에 쌓아두고 있던 추억들을 정리하지 못했다.

아내는 매번 보지도 않은 책들도 정리하라고 난리다.

그리고는 버리고 정리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유튜브나 책을 들이밀며 강요한다.

반항심이 만발하는 중2 이도 아니고, 이상하게 하라고 하면 반발심이 생겨 더 하기 싫다. 

 이래서 결국 부부싸움으로 번지고 급기야 며칠간 말없이 보내기도 한다.


어느 날 문득 과거가 뭐가 그렇게 중요했던가 생각을 해 본다.

어디 박물관이라도 만들어 누구처럼 전시장을 만들어 진열할 것 도 아닌데 신줏단지 모시듯이 이사할 때마다 고이고이 싸들고 다녔던 녀석들.

앞으로 삶에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전공책, 

대학 때 고시공부 하며 봤던 책, 

군대 공병학교 책,

회사 진급시험 때 봤던 책아

기술사 공부하며 봤던 책

해외업무하며 참고했던 서적 들

그리고 나중에라도 한번 더 볼 수 있을까 해서 남겨 두었던 책들이다.


이 중에서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충격을 주었을 때 3층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때 노트에 끄적끄적했던 노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국에 고등학생 중에서 네가 제일 키가 작을 걸" 이 말을 그때 담임선생님은 농담으로 몇 번이고 했을지 모르지만 정말 듣기 싫은 말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니.

이제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할 때이다.

과거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여운을 남기기 위해 남겨 놓았던 물건들 이제는 보낼 때가 된 것 같다.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고 짐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지 책장에 여백이 남아 있지 않다.

이것들도 빨리 처분해야 할 텐데.


고물상에 2번이나 트럭으로 갔다. 

거금 2만 9천 원으로 과거의 추억을 바꾸었다.

딸아이가 중고서점에 팔아볼 책을 고르지만 팔만한 책은 없다.

모두 낙서 투성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모든 것을 잊고  새롭게 시작할 때이다. 





진공포장으로 보관해 두었던 군복과 철도에서 근무할 때 입었던 선로반 작업복도 같이 보낸다.

무엇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감싸고 보관했을 까?

다들 쓸데없는 과거이다.


새로이 출발해야 할 시기이다.

작별할 것은 작별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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