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늦은 오후.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몽롱한 상태로 거실에 나왔다.
주방에서 뭔가 자르는 소리가 들린다.
“쓱쓱, 툭툭툭, 쓱쓱, 툭툭툭…….” 반복적인 소리에 가보니 남편이 늙은 호박을 손질하고 있다. 2~3개월 전 시골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가져왔다. 호박죽을 해달라는 남편에게 손질을 해주면 하겠다고 하니 껍질을 벗기고 속의 씨를 파내고 자르는 소리였다. 수박이나 늙은 호박같이 덩어리가 크고 단단한 것은 손질이 어려워 힘쓰는 건 남편에게 종종 부탁한다.
남편이 손질해준 늙은 호박을 작게 썰어 큰 냄비에 넣고 물을 500g 정도 넣어 푹 익혔다. 국자로 눌러서 뭉개질 정도로 푹 익힌 후 식혀주었다. 차가워진 푹 익은 늙은 호박을 믹서에 넣고 곱게 갈아주었다. 빛깔이 너무나도 예쁜 연한노란색이다. 노랑물감에 흰색을 조금 섞고 진한핑크를 아주 조금 섞은(마젠타20+엘로우80 정도의 색) 곱디고운 연한노랑이다. 예쁘다. 음식을 하며 이렇게 음식 고유의 색이 예쁘기는 처음인거 같다. 색에 반해 사진을 찍었지만 그 예쁜 색을 다 담지 못한다. 역시 뭐든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최고로 예쁘다. 성능 좋은 카메라도 내가 보는 그대로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 좋은 풍경과 공연등 뭐든 좋은 것은 카메라를 통하는 것보다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게 최고다.
곱게 갈아진 늙은 호박을 냄비에 담고 끓여준다. 끓일 때 쌀가루를 물에 풀어 호박과 함께 끓여주면 너무 묽지 않은 농도로 맞춰져 좋다. 약간의 소금을 넣어주고 설탕은 각자의 기호에 맞게 조정해서 넣어주면 된다. 개인적으로 달콤한 호박죽이 좋아 설탕을 듬뿍 넣었다.
호박죽을 끓일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계속 저어주어야 함이다.
저어주지 않으면 눌러 붙고 용암처럼 퍽퍽 솟아오른다. 솟아올라 퍽 할 때 정말 유튜브에서 봤던 용암 분출을 보는 것 같았다. 퍽퍽 솟아오르며 ‘피훅’하고 터지면 죽이 사방으로 튀고 데일 수 있다. 그래서 손을 보호할 수 있는 장갑을 끼고 솟아오를 틈을 주지 말고 계속 저어주어야 한다. 틈을 주지 않고 열심히 젓는다고 했는데 살짝의 틈을 타고 퍽퍽 솟아오르고 ‘피훅’ 터지자 호박죽이 사방으로 튀었다. 가스레인지 주변이 크고 작은 노랑이들 천지가 되었다. 냄비 안에서의 노랑은 예쁨을 간직한 노랑이들이지만 가스레인지 주변의 노랑이들은 절대 예쁘지 않다. 나의 노동이 수반되어야 하는 노랑이들이라 결코 예뻐 보이지 않는다.
호박죽을 끓일 때 불은 중간불이 좋다. 20~30분 정도 저어주며 끓이면 끝이다. 호박죽은 뜨거울 때 먹어도 맛있지만 차갑게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먹어도 맛있다. 부드러운 식감이 마치 푸딩 같기도 하고 입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이 호박죽도 나와 남편만 야금야금 야식으로 먹을 뿐 아이들은 먹지 않는다. 아이들의 입맛엔 밍밍한 맛으로 느껴지는지……. 호박죽 조리법을 쓰고 보니 요즘 둘째가 흥얼거리며 영상편집을 하는 밤양갱 노래와 오래전 노래 팥빙수가 생각난다. 음식으로도 노래 가사가 쓰일 수 있다는 게 재밌고 오늘 글을 바탕으로 호박죽 가사를 써 봐도 재밌을 것 같다.
곱디고운 노란 호박죽_가사ver.
이것을 보여주고 아들에게 멜로디를 붙여보라고 해야겠다.
나는 늘 꿈꾼다. 밤양갱 이나 팥빙수 같은 히트곡이 나올거라고...
1절
아무도 몰랐을 거야, 그 누구도
숨겨둔 나의 빛깔, 연노랑
조명 아래 황금빛으로 번져
더 찬란히, 더 빛나
2절
무심한 눈길에 흔들리고
외로운 마음은 점점 깊어져
작은 틈새 터져 나오는 외침 (피훅)
멈추지 않아, 날 지켜봐줘
후렴
피훅, 피훅, 솟아오른다
나의 빛깔, 나의 꿈들
곱디고운 노랑으로 물들어
내게 다가와, 내게 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