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토요일 밤. 8시가 좀 넘은 시간에 아들의 친구가 온단다.
“엄마, 친구 00이가 우리 집 앞으로 온다는데?”
“지금? 이 시간에?”
“응, 지금 오고 있데.”
“그럼 늦었으니까 나가서 노는 건 안 되고 집에 올라와서 과일 먹고 가라고 해.”
“어, 그럼 오면 내려가서 데리고 올라올게.”
그 전에도 늦은 시간 몇 번 놀러왔던 녀석이다. 그 시간 놀러온 아들 친구에게
“00아, 이모가 일찍 놀러오라고 했잖아. 담엔 너무 늦게 말고 일찍 놀러와.”
녀석이 씩 웃으며 “네” 대답을 하고 두 녀석이 늦은 시간까지 놀았다.
00이 엄마께 우리 집에서 놀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는 문자는 보냈지만 11시가 되어 이제는 집에 보내야지 생각할 쯤
“엄마, 00이 자고 가도 돼?”
“00이 엄마한테 허락만 받음 되지. 낼 일요일이니까.”
그렇게 두 녀석은 늦은 시간까지 놀고 일요일 11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느지막이 일어난 녀석들에게 유부 잔치국수를 해주었다.
국물용 멸치를 이용해 육수를 만들었다.
요리 고수가 아닌 난 국물용 멸치를 산다며 디포리(밴댕이)를 구입했다. 근데, 일반 국물용 멸치보다 국물이 더 뽀얗고 구수하게 잘 우러난다. 다만, 비린맛과 비린향이 좀 더 진해 국물을 낼 때 뚜껑을 열고 월계수 잎을 조금 추가해서 함께 육수를 내면 날아간다. 이번엔 육수를 낼때 다시마를 추가했더니 멸치 육수가 더 깔끔하고 맛있었다. 그 육수에 참치액을 넣어 간을 하면 멸치육수가 완성된다.
파는 동글동글 가늘게 채 썰어 여유 있게 준비하고, 유부는 냉동 슬라이스 유부를 준비하면 모든 준비는 끝이다.
소면을 삶아 찬물에 헹궈 전분기를 빼고 큰 대접에 담는다. 멸치육수를 국수가 잠길 정도로 넉넉히 넣어주고, 고명으로 준비해둔 파와 유부를 듬뿍 올려주고 고춧가루를 반숟가락 정도 올려주면 유부 잔치국수는 끝이다.
집에 있는 재료로 쉽게 쉽게 해야 한다. 매번 뭔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거창한 마음을 가지고 음식을 하면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유부 잔치국수를 아들은 잘 먹는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았는데 맛있다고 먹는 거 보면 신기하다. 거의 대부분의 주말 아침은 라면으로 때웠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같은 면이지만 라면보다는 국수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국수를 종종 해주고 있다.
아들과 아들 친구에게 국수를 해주다 오래전 친정엄마가 해주셨던 국수가 생각났다.
나의 가장 오래된 중학교 때 친구가 15살 무렵 우리 집에 놀러왔을 때 엄마가 국수를 해주셨는데 (내가 했던 레시피와 비슷했던 것 같다.) 그때 그 맛이 강렬했는지 그 국수가 너무 맛있었다며 친구가 지금도 그 국수 이야기를 한다.
그 당시 그 음식을 먹을 때의 분위기와 상황이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그 음식이 더 맛있게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친구는 딸 셋, 아들 하나 (우리 집과 같은데 순서만 좀 다르다.)에 셋째 딸로 친구 부모님께서는 당시 대학교 앞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며 조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었다. 지금은 하숙집이라는 것이 없지만 35년 전에는 대학교 앞에 하숙집이 참 많았었다.
중학교와 가까운 친구 집에 종종 놀러갔었는데 늘 바쁜 친구 엄마대신 친구와 친구 언니가 음식을 해 주었던 것 같다. 반면, 우리 집은 거의 엄마가 집에 계셨기에 엄마가 음식을 해 주셨다.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엄마가 직접 해준 국수와 집에 계시며 음식을 챙겨주는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 국수를 더 맛있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오래된 친구지만 어릴 때는 서로의 집안 분위기와 상황이 어떤지 잘 알지 못했다. 서로에 대해 부러웠던 것이 사실은 우리가 서로의 집안 분위기와 상황을 몰라서 그랬다는 것을 우리는 성인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되었다. 넉넉해 보였던 친구의 용돈도 사실은 당시 하숙집이 한창 잘 될 때 잠시 잠깐이었다는 것과 서로가 서로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부러워했던, 너그러워 보였던 모습은 허구고 사실 가부장의 끝판 왕들 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인이 되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가 보기에 여유로워 보였던 우리 집의 모습도 실상은 달랐다는…….
각자의 결핍과 상처를 우리는 서로 잘 알고 그것을 추억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나 수다를 떨었던 사이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행복이다. 근래에 만나 관계를 쌓아온 인간관계와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오래된 인연, 근래의 인연 각각 느끼고 공유하는 다른 감정들이 있다.
각각의 시절 인연들과 그 시절의 추억을 나누면 좁은 인간관계의 폭도 넓어지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올해가 가기 전에 그녀와 만나야겠다. 과거의 인연과 추억도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