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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 Apr 16. 2024

나의 취업연대기

어쩌면 흑역사 모음집

23살에 대학을 졸업했다. 한 학기도 휴학하지 않고 8학기를 달려 졸업했다.

문예창작학과여서 더 그랬는지 취업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엄마집에서 100만 원만 벌며 살아도 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웬걸,

으레 사람들이 말하는 '가족은 멀리 있어야 애틋하다'를 너무 느껴버렸다. 나와 엄마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고, 지난 23년간 나는 학업으로 엄마는 생업으로 함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적었다는 뒤늦은 깨달음을 얻은 거다.

엄마집에서 100만 원쯤 벌며 글 쓰며 사는 건 마지막 학기 종강 일주일 만에 포기했다.


컴퓨터활용능력 1급과 컴퓨터그래픽스 자격증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어디에 취업하고 싶은지는 생각이 없었다.

같은 과 선배가 취업을 알선해 줬다. 선배의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인스타툰을 그리고 sns를 관리하고,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자리였다.

취업하고 보니 선배의 친구는 총 네 개의 일을 하고 있었고, 그중 하나가 스마트스토어였다. 나에게 떨어진 일은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상세페이지를 긁어와서 스마트스토어에 상품을 업로드하는 거였다. 이미 서울에 자취방을 구해둔 탓에 그냥 일했다. 그 회사에서 일하며 그래픽스 실기에 응시해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그다지 쓸 일은 없었다. 일에 애정도 없었다. 업무보다는 사장님의 나머지 세 가지 일 중 하나인 '다단계'에 관심이 있었다. 그 사업이 다단계니 손절하라고, 나와 동료직원이 계약종료일까지 사장님을 설득했지만 통했는지는 모르겠다.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는 잠깐 올리브영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뒤에는 대형 가구매장의 안내데스크에서 일했다. 거기서 1년 정도 일을 했는데,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일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스트레스로 인한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딱 퇴직금까지만 받고 그만뒀다.


두 직장에서 일하며 깨달은 것도 많았다.

나는 체계가 없는 업무환경을 싫어한다는 사실, 제 몫을 못하는 사람도 싫어한다는 사실. 그보다도 무지가 권리라고 생각하는 걸 너무 버거워한다는 사실.

그다음 직장은 3개월간 단기직으로 한 LH상담센터였다.

업무에 체계가 있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정했다. 편안한 3개월이었으나 연장은 하지 못했다. 당시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던 건설업 이슈로 인해 인원이 줄었다. 실업급여를 받기 시작했다.


고향으로 이사 온 뒤에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많이 생각했다.

2년 좀 넘는 사회생활 경력 중 태반이 CS였지만 CS 분야에서 길게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사실 일을 하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을 하고 나면 피곤했다. 나는 체력이 그리 좋지 않아서.

두 번째 직장에서 일하며 얻은 생각은 하나였다. 그래, 저런 사람도 월에 200은 버는데. 나도 한 번쯤 실패해도, 내 시간의 대가로 200은 벌 수 있겠지.

그래서 작정하고 나 하고픈 일만 주구장창 해볼 생각이었는데,

그건 또 왜 이리 쉽지가 않은지.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치열하고 멋지게 사는 건지. 어떻게 대학 졸업하자마자 제자리를 찾아가고,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먼 이국땅에서 터를 잡을 생각은 어떻게 했는지. 그런 고찰과 용기가 그들 가녀린 몸 어디에서 왔을지. 내가 살아온 궤적에는 그네들이 감탄할 구석이 뭐 하나 있을는지.




11월까지는 취직 준비를 하지 않고, 나 하고 싶은 일만 해보기로 했다. 가끔 용돈벌이 정도는 해야겠지만.

11월까지 해보고 싶은 일들은 다음과 같다.


문예공모전 응모해 보거나 내 소설집 출판하기

뜨개인형을 파는 스마트스토어 만들어보기

꽉 찬 일러스트 그리기

인스타툰 계정 게시물 100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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