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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 Apr 23. 2024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몇 편이나 필요할까

2021년 창작집단에서 에세이를 낸 후부터 '나만의 책'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일러스트 표지를 직접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스마트스토어를 열어서 수공예품과 책을 같이 팔면 좋겠다.

중간중간 삽화를 넣을까, 옛날에는 그런 책이 퍽 많았는데.

너무 두껍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크라우드 펀딩에 올려보고, 독립서점 입점문의도 해봐야지. 마케팅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뭐 그런 생각은 정말 많이 했는데, 막상 책으로 펴낼 소설을 완성 못했네.


그동안 글을 아주 쓰지 않은 건 아니다.

단편은 왕왕 써왔고, 몇 번인가 퇴고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달에 쓴 소설을 오늘 보니 형편없게 느껴져 엎다 보니 남은 게 없을 뿐.

엎어지지 않은 작품도 한 편 있기는 하다. 초고를 쓴 지는 몇 년 되었는데, 생각날 때마다 손을 보다 보니 아직도 완성은 되지 않았다.

파헤쳐보면 누더기 같은 작품인데, 나름 마음에 든다. 학부생 시절 쓴 소설 초고 두 개가 합쳐지고, 합쳐진 초고가 두세 번쯤 엎어지고 완성된 작품이다. 재미있는 건 소설이 아니라 대본이라는 것.

퇴고는 대본을 다시 소설로 풀어내며 진행하고 있다. 아무래도 내 문체 특성상 대사가 너무 비유적이거나 문어체인 경우가 많아 퇴고가 필수적이다. 직관적이지 못하고 입에 붙지 않는 대사를 모조리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방식으로는 작업이 어렵다.

어쩌다 보니 한 편의 대본을 여섯 또는 일곱 편의 단편으로 퇴고할 계획이 세워졌다.

뭐, 굳이 전개방식이나 보이는 부분이 같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한창 책을 만들고 싶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던 시기에, 몇 편의 단편이 있으면 책을 낼 수 있을지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낸 결론은 7편 내지는 10편이었다. 미니멈 7편, 맥시멈 10편.

물론 이 선택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그다지 학술적이지도 않고, 전문적이지도 않지만.

첫 번째, 당시 내가 소장하고 있던 단편집 목차를 직접 세어봤을 때, 가장 많은 단편이 수록된 책이 10개 작품을 담고 있었다.

두 번째, 나는 매해 젊은 작가상을 구입해 읽고, 젊작상이 문학의 트렌드를 단편적으로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작가상 수상작은 매년 7작이다.

그러니까 내 책장을 모집단 삼아 통계를 내봤을 때, 대부분의 단편집은 '독자가 단편집에 기대하는 작품수' 또는 '한 권의 책으로 묶이기 적정한 작품수'를 7편 내지는 10편으로 기준 삼고 있다.


앞서 올해의 목표로 내 소설책 출판하기를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이 대본을 예닐곱 편의 소설로 퇴고하고, 그게 다시 한 편의 대본으로 퇴고되고 나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다른 목표 중 하나인 '꽉 찬 일러스트 그리기'도 달성될지 모를 일이다. 일러스트 표지를 제작하려면 그림을 그려야 하고, 그 표지가 '꽉 찬 일러스트'가 될지 모를 일이니.


-


사실 '소설책 출판'을 목표로 삼은 게 한두 해가 아니어서 내심 막막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아주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차피 해야 되는 퇴고들이 모이면 수록작이 완성될 거고, 어차피 만들어야 하는 표지를 그리다 보면 다른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어차피 해야 되는 일들이 모이면.


대본을 예닐곱 편으로 퇴고하기로 한 건 아무래도 내가 최근에 연작소설을 읽은 탓일 테다.

인물에서 인물로 전환되고 하나의 이야기에 다른 이의 찰나가 담겨있는 연작소설 특유의 진행구조를 보다 보니,

대본 속 등장인물들이 구태여, 늘, 항상 같은 작품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들에게는 그 나름의 입장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대본이 필요로 하는 부분이 아닌 삶이 있을 테니 거기에 주목해 보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도 왕왕 하나의 장편을 쓰기 위해 전사되는 이야기를 단편소설로 작성해 정리하곤 했다. 크게 다른 작업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해봤고, 할 수 있고, 하고 싶으니 한 편을 일곱 쯤으로 나누는 데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요즘 쓰고 있는 소설은 목차로 정렬했을 때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들 중 가장 평화롭고, 중심사건에서 먼 이야기다. 소설의 처음은 '권태로울 정도로 순조로운'으로 시작하는 구절이다.

사실 권태로울 정도로 순조로운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 권태로울 정도로 순조로운 사람을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어쩌면 가장 풀어내기 어려운 매듭부터 손에 쥐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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