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됐으니 사건을 만들렴. 문장이 좋은데 사건이 없다. 너는 사건이 아니라 문장에만 집중하는구나.
그 말을 4년을 들었다. 나는 여전히 읊기 좋고 맛있고 보기에 예쁜 문장을 쓰고, 사건이 없다.
조금 싱거워도 쉽게 삼켜지면 된 거지, 뭐.
어릴 때는 그림을 그렸다. 내가 만화가가 될 줄 알았다. 친구와 둘이서 만화동아리를 만들었다. 이름도 얼굴도 까먹은 친구와 단둘이 만화잡지를 보고, 만화를 그렸다.
조금 커서는 글을 썼다. 중학생 때는 반 친구들과 그들의 최애를 모티브로 한 인물들을 만들어 소설을 썼다. 그 당시에는 로맨스 일진물이 대세였다. 지금 생각하면 낯간지럽다 못해 귀까지 따닷한데, 그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가 좋았다.
고등학생 때는 대바늘로 모자를 만들고, 코바늘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이 운전면허를 딸 때, 나는 양모공예 자격증을 땄다. 그래서 아직까지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나는 계속 뭘 만들고 싶어 했다. 글을, 그림을, 인형을. 자음과 모음, 선과 색, 털실과 바늘을 이용해 유기적인 집합을 짓고 싶어 했다. 아무래도 나는 내 세상이 그런 것들로 채워지길 바랐던 것 같다. 웃으며 바라보면 낭만적이고, 찡그린 채 바라보면 쓸모없는 것들로 채워진 세상을 원했지 싶다.
사주가 선생님이 내 사주를 보더니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끝이 흐린 말 마디를 뱉었다.
"이 친구는 역마살이...."
내 사주에는 역마살이 세 개가 있다. 역마살도 유전이 될까? 내 부친께서도 역마살의 인간화와 같았는데.
역마살은 방랑벽이라고도 하는데, 흔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성향을 일컫는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방랑벽이고, 어느 하나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를 배우고 여러 일을 떠돌며 사는 것도 방랑벽이다. 아무래도 나는 후자인 듯하다.
방랑벽에 대해 생각했다.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하는 것에 대해. 내가 사주풀이에 박식한 사람은 아니지만 역마살 세 개를 품은 채 삼십 년 가까이 살았으면 말 정도는 얹어볼 수 있지 않을까? 방랑벽은 세상이 못 견디게 궁금해 둥둥 떠다니며 사는 것. 기실 어딘가에 정착하는 것이 못 견디게 싫은 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온 세상이 궁금해 곳곳을 들여다보며 삶을 꾸리는 거다. 적어도 내 삶은 그런 것 같다.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바늘을 휘두르고
태국어를 공부하고, 수학문제 풀기를 좋아하고,역사나 과학에 대한 영상을 하루에 다섯 개씩 보고, 자주공연을 보고 어떨 때는 공연을 올리고, 해마다 자격증을 따고
뉴스기사 속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을 보면 화를 내고, 법감정과 교화와 재범방지에 대한 내용을 찾아 읽고, 그 사이의 이상적인 균형을 상상하고
달리는 창밖을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바라보고, 길 잃은 이를 도와주다 종래에는 이만 원씩 갈취당하고
길을 걷다 말고 보도블럭에 핀 꽃을 보면 한 마디 감탄과 한 음절 셔터소리를 토해내야 마음이 편하고
온갖 것을 머릿속에서 분해하고 해부하고 재조립하고, 그러다가 발견한 가치에 저도 모르게 감동하고야 마는 사람.
나는 내 삶이 좀 까실까실하고 팍팍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깨달았다. 나는 세상 별 잡스러운 것까지 다 사랑해서 때때로 고달프다.
방랑벽은 멀리서 보면 낭만이고, 곁에서 보면 쓰잘데기 없게 흐르는 마음일지 모른다. 그게 내 세상이고, 나는 내 세상이 좋다. 톡 쏘는 맛 없이 싱거워도 그런대로 재미있지 않아요?
사주가 선생님은 요즘 역마살은 좋은 거라고 했다. 살도 시대를 탄다고. 옛날 같았으면 보부상 한다고 전국을 떠돌다가 도적이나 호랑이를 만나 단명하고, 사대부가 한 우물을 못 파거나 여자나 천출이 많이 배우고 목소리가 커봤자 출세 못 하고, 소박맞고, 배척당했겠지만 요즘은 아니라고. 너는 시대를 잘 타고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