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걸까. 그 생각에서 글을 쓰기로 했다.
내가 '나 같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나 같은 누군가가 와서 제 이야기를 풀어줄 수도 있지 않겠어요?
나는 이십 대 후반.
글쓰기를 전공했고, 그림을 그리고, 털과 바늘 만지기를 좋아하는 사람.
엄마랑 오빠는 있는데 아빠는 없는, 그냥 조금 덜 보통인 가정에서 자랐다.
새로운 걸 배우기 좋아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취직하고 살아가는지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도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은데, 그중 뭘로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월 200이면 그런대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불안도가 높아서 도전이 어려운데, 도전을 안 하면 도태되는 것 같아 더 불안해진다.
그리고... 글쎄
세상에는 다양한 성향의 사람이, 다양한 형태의 삶을 꾸려간다는 걸 알지만 내가 어떤 삶을 꾸려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텐데.
뭘 하면서 살고 싶은지 고민해 봤다. 나는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소설, 에세이, 대본 그런 것들. 1인 출판사를 차리고, 내 책을 내고, 내 연극을 올리면서.
그래서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와 전자출판기능사를 취득해 뒀다.
여기서 끝나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글을 쓰면서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이 없으면 글을 쓰다가 죽는 거지, 글을 쓰며 사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최근에는 웹디자인기능사 시험을 봤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는데, 못 푼 문제는 없었다.
이 대목에서 누군가는 묻는다. 그래픽스도 있고, 전자출판기능사도 있으면 그냥 출판사에 취직해서 경력을 쌓는 게 낫지 않아?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웹디자인이야?
첫째, 최근 개인사정 탓에 고향으로 이사했는데, 근처에는 마땅한 출판사가 없다.
둘째, 재작년 취준생 시절에 출판사 면접을 봤을 때, 재직하는 동안에는 개인적으로 글을 써서 출판하거나 플랫폼에 공유하는 게 금지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겸업금지가 기본이니까.
하여 일단 웹디자인기능사를 준비했다.언젠가 내 출판사를 만든다면 웹페이지는 필요할 테니까.
내가 불안과 대안 사이를 헛도는 걸 보던 짝꿍이 말했다. '당분간 생활비를 내지 않아도 좋으니 글만 써보는 게 어때'
불안도가 높다는 건 불안하다는 감정과 명백히 다르다. 나는 속에서 계속 불안이 차오르는 걸 느낀다. 불안을 덜어낼 수가 없다. 누군가의 격려나 다정, 불안을 덜어주기 위한 숱한 말들이 무용하다.
'먹여 살려줄 테니 글만 써보라'는 그의 말에 나는 답했다.
"그런데...글만 쓰고 살 수는 없어."
'왜?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했잖아.'
"글을 쓰면 일단 세상에 내보이고 팔 수 있어야 하잖아. 내가 돈 들여 출판을 한들 누군가에게 나와 내 책을 노출할 수 없으면 책은 팔리지 않아."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그림과 만화를 올리고 있다. 그림 속 나를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나중에 내 책도 들여다봐주기를 바라며.
'알겠어. 그러면 글이랑 그림에만 집중해 보는 건 어때?'
"그런데 사실 내가 1인 출판을 해서 그걸 다 팔아도 수익은 얼마 안 되거든. 근데 내가 만드는 인형들, 내 뜨개인형들은 다 창작도안이니까 걔네를 내다 팔 수가 있는데 그 정도 크기면 팔리기만 하면 개당 한 4~5만 원은 받아. 그리고 양모인형도 평균가가 10만 원대에 형성되어 있고. 그래서 내가 나랑 약속한 시간을 다 쓰고도 글이랑 그림으로 돈을 벌 수 없을 때를 대비해서 인형을 계속 만들기는 해야 해."
덧붙이자면 지금은 사업자등록도 안 해두었고, 인형을 팔고 있지도 않다. 그냥...미래에 대한 대비 같은 거다.
'내 생각에는 당신한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것 같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브런치 북의 제목을 '달걀을 너무 여러 바구니에 담아버려서'로 지었다. 글자수 문제 때문에 중간에 '버려'는 밀려났지만, 어쨌든.
이 글을 읽으며 자기와 닮은 구절을 찾은 사람도 있을 거고
너무 닮아서 불쾌한 사람도 하나쯤은 있을 법하고
내가 이해가지 않아 속이 답답한 사람도 있을 테다.
어쩌다가 이 글을 접한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덜 불편해지기 위해 바구니를 조금 키워보려고 한다.
앞으로 쓰는 글에 내 수많은 바구니와 그 바구니가 만들어진 과정, 바구니가 자라나는 이야기를 담아볼 작정이다.
애초에 그렇게 태어난 건지, 그렇게 자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아주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위험을 분산하라는 말이다.
나는 너무 많은 위험을 상상하고, 앞서 불안해한 나머지 너무 많은 바구니에 나를 나눠 담아 버렸다.
나의 시간과 관심과 애정과 불안을.
나는 선택과 집중이 어려운 사람이고, 세상살이에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걸 안다.
게임 한 판을 할 때에도 선택과 집중이 승패를 가르는데, 인생은 어떻겠는가. 선택하지도, 집중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될 뿐이다.
현실에서는 패배도 할 수 없다.
패배도 승리와 마찬가지로 도전한 이들의 전유물이다. 불안을 핑계로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패배할 수도 없다.
바구니를 없애는 건 힘들다. 그런데 키우는 건? 이건 해 볼 만하겠다.
두리뭉실한 고민에서 태어난 바구니들을 좀 더 튼튼하게 얽고, 안에 담긴 달걀을 다시 나눠 담는 거다.
그러고 나면 중구난방으로 분산되어 이도 저도 아니게 늘어진 바구니들이 나름대로의 질서를 갖게 되지 않을까.
그 질서에 맞춰 나열된 바구니들이 곧 내가 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추신. 작년에 불안장애와 강박장애 검사를 받아봤다. 의사 소견에 따르면 둘 다 의심할 구석이 없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없을 때에는 불안과 강박이 발현되지 않고, 특정 상황이나 사안에서만 발현되는 건 불안장애나 강박장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