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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 Apr 09. 2024

왜 글을 쓰기로 했어?

직장동료가 내게 물어왔다

문예창작학과는 그래, 소위 말하는 취직 안 되는 학과니까.

내가 수험생일 때에 친구들이 가장 많이 지원하는 학과는 사회복지학과였다. 적어도 우리 학교 문과에서는 그랬다. 전망이 좋다, 취업이 잘 된다 같은 수식어가 뒤따르는 학과였다. 물론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니었을 거다. 정말 '전망이 좋고, 취업이 잘 된다'는 진로선생님의 조언을 바탕으로 원서를 작성한 사람도 있을 테고, 어떤 신념이나 사명감이 기저에 깔린 이들도 있었겠지. 다만 아주 개인적인 경험담일 뿐인데, '어느 학과 쓸 거냐'는 원서철의 스몰토크에 사회복지학과를 말한 친구들은 대개 '어느 학교 쓸 지도 정했어?' 같은 질문을 이어받았다. 뭐랄까, 납득이 가는 선택이라는 듯이.

'어느 학과 쓸 거냐'는 질문에 문예창작학과를 말하고 나면 꼭 '왜?'라는, 짧고 내밀하게 파고드는 질문이 이어졌다. 물론 '거긴 뭐 하는 과야?' 하는 질문도 적지 않았다.


이런 질문을 받아본 사람들 중 질문에 앞서 '왜'를 생각해 본 적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누군가 이유를 물어오기 전에, '하고 싶다'는 마음을 파고들어 까닭을 찾아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런 이들은 정말 비범한 사람이 아닐까.

나에게 '문예창작학과에 가야겠다'는 태풍 그런 거 같았다. 그만큼 강렬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하나의 현상. 나비의 날갯짓 같은 원인이 물론 있겠지만, 생각해 보세요. 태풍이 육안으로 관측된 그 시점에서 우리는 '태풍이 어떻게 발생해서 어떤 경로로 이곳에 도달했는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태풍이 오려고 엊그제 새떼가 그리 날았구나' 잠깐 깨닫고 뒷일을 생각하지. 그래서 그때의 나는 내가 왜 문예창작학과를 가고 싶은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미래를 상상했다. 어중간한 재능을 가진 나의 스물너댓 살쯤을. 철없어서 부끄러운 발상인데 '엄마집에 얹혀살면서 달에 100만 원쯤만 알바로 벌면 되겠다'고 정리했더랬다.

문예창작학과가 적힐 내 원서를 보며 '왜'를 찾던 친구들을, 당시의 나는 '낭만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생각해 보면 사실 내가 철이 없던 걸지도.




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냐는 직장동료의 물음에 대답했다. 어쩐지 말이 자꾸 길어지고, 구구절절한 사족이 붙었다. '제가 어지간한 건 다 잘하는 편이었거든요'로 운을 떼어버린 탓이다.


제가 어지간한 건 다 잘하는 편이었거든요. 아, 체육이랑 음악 빼고요.

어릴 때는 되게 느렸는데, 언젠가부터 공부나 그런 게 막 어렵지 않게 느껴졌어요. 중학교 때까지 그랬던 거 같아요. 공부를 열심히 안 해도 중상위권, 어쩔 때는 상위권 그러니까 열심히 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해야 하나? 근데 진짜로 공부를 잘하고 머리가 좋고 그런 건 아니었거든요. 그냥...공부 안 하는 애들 치고는 이해력이랑 암기가 조금 괜찮았던 것 같아요. 물론 이제 고등학교 공부는 암기 정도로 안 되니까 중하위권에서 못 벗어나긴 했는데 어쨌든. 중요한 건 제가 뭔가를 처음 습득할 때, 평균에 비해 속도가 빠르고 성취가 잘 나왔다는 거예요. 근데 이게 진짜 위험한 거거든요.

왜냐면...처음에 할 때, 맛만 살짝 보고 '어 이거 할만하네'가 되어버리니까 더 안 해요. 이거 별로 어렵지 않네, 할만하네, 내 결과물이 나쁘지 않네 싶으니까요. 노력을 안 하고 그 찰나의 영광, 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낫고 조금 빨랐던 그 순간에 영 머물러있는 거예요. 마치 뒤처지는 현실을 부정하며 놓지 못한 과거의 영광을 큰소리로 떠벌리는 1호선 광인처럼. 사실 아주 비범하게 뛰어난 것도 아니니 따지고 보면 뒤쳐지는 게 맞는데, 그것도 모르고.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온다 싶으니까 금세 질리고, 의욕이 사라지는데 글쓰기만 안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상상을 정말 많이 하거든요. 글을 쓴다는 건 내 상상과 생각을 활자로 담아내는 거고, 저는 계속 상상하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글쓰기는 계속 더 잘하고 싶고, 더 잘하지 못해서 속상하고 그랬어요. 그니까 저한테 세상 태반이 '이 정도면 준수하지, 됐지 뭐' 이런 느낌인데 글 쓰는 건 '왜 더 잘하지 못하지?'인 거예요. 그래서 글을 쓰는 학과를 고른 것 같아요.


내 말을 듣고 동료는 나에게 멋있다고 말해줬다. 뭐가 멋있느냐고, 결국 글을 쓰는 직업은 갖지 못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그래도 멋있다고,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게 대단하다고 했다.

이봐요, 언니. 방금 내가 늘어놓은 말은 '진짜 19살인' 내가 아니라 '그로부터 10년 언저리 더 큰' 내가 되짚어 정리한 말이에요. 라는 생각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멋지다고 해주시는데 누려야지.




졸업한 이후 종종 생각한다. 나는 왜 글을 쓰는 학과에 갔을까,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거지?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할까?

어떨 때는 너무 명료해서 덧붙일 생각이 없고, 어떨 때는 너무 구구절절해서 더 들여다보기도 싫고, 또 어떨 때는 내 속을 나도 모르겠어서 답답하다.

요즘은 생각한다. 내가 쌓아둔 생각들, 지어둔 이야기들을 어딘가에 다 풀어놓지 못하면 죽을 때 뒷맛이 찝찝할 것 같아. 황천길 걸으며 후회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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