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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경 May 13. 2024

성리적 정동인 정조(情操)

진선미성 등 이념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들

(0)정조 실마리

①정조의 뜻

생리적 감정을 거쳐 심리적 감정에 이른 감성의 영역은 기성적 감정이었는데 심리기를 지나면 기성적 감정인 생리적 및 심리적 감정과는 뿌리가 다른 이성적 감정에 딸린 성리적 감정으로서의 정동이 나타나며 이는 정신적 기능으로서의 지[(知) • 정[(情] • 의[(意)]의 이상[理想]인 진 • 선 • 미 • 성(眞善美聖)]에 관한 모든 감정이다.      


성리적 정동인 정조의 구분표      

예컨대 기성의 의지[氣意]적 감정은 본능의 욕망 등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심리적 정념에 포함되어 있으며 이성의 의지[理意]적 감정은 의적 정조[윤리적]인 정륜에 속하는 정당[情當]과 정의[情義]가 된다.      


지적 정조[情操]인 정진(情眞)

정진의 뜻

필자가 [정진(情眞)]이라고 부르려는 지적 정조는 정신 기능으로서의 지(知: 곧 앎)의 활동에 따라 의식적 대상에 관해 그 대상 자체나 그런 대상을 접하는 지적 존재인 지성인에게 일어나는 앎이라는 지적 활동과 그로 인해 생겨난 진리에 관해 느끼는 감정을 가리킨다. 

지성이 추구하는 지(知), 또는 지(智)의 감정: 호기심에 따르는 만족감. 새로운 문물이나 사실을 보거나 발견하고 느끼는 감정이다.      


정진의 정취인 정지(情知):

대상을 알게 되어 그 자극에서 일어나는 느낌. 신기(新奇)함 ∙ 놀라움. 

정동이 그러한 것처럼 정조에도 대상에 관한 감정으로서의 정애와 지성인이 그러한 대상을 인지하면서 촉발되는 정감이 있다.      


지성인은 대상을 알아가면서 자기 스스로 여러 가지 감정 ⸺곧 정진(情眞)의 정감⸺ 을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대상에 지향하려는 지적 의식인 호기심에 따라 대상을 알면서 촉발되는 대상에 관한 감정, 곧 정진의 정애와 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앎의 대상에 관한 지성인 자신의 느낌인 정진의 [정감]”과 대상 자체에 관해 알고 난 느낌인 정진의 [정애] 이 두 가지 감정은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하지 않고 서로 비슷해서 이를 나누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정감과 정애에 속하는 감정들을 굳이 구별하지 않고 한데 모아 설명하려 한다.     


정진의 정동인 정오(情悟)

오성(悟性)의 개념적 만족감: 진리를 확인하거나 창조할 때에 우러나오는 감정. 거짓이나 속임수나 허위에 따르는 불쾌감, 모순이나 배리(背理) 자가당착에 따르는 당혹감. 

신기(新奇):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색다르고 놀라운 사실에서 느끼는 감정.

놀라움[경이驚異)] 대상에 관해 알게 되자 감동을 일으킬 만큼 훌륭하거나 굉장하다고 느낌, 또 갑작스러워 두렵거나 흥분 상태에 빠지거나 어처구니없을 만큼 괴이하다는 의식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     


윤리적[도덕적정조인 정륜(情倫)

정륜의 뜻

정륜은 도덕적 정동으로 도덕적 의식이나 행위의 정사 선악에 관계되는 의미 감정이다. 정륜은 대상에 지향하는 정념이라는 점에서 심리적 정애나 생리적 정애 등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나 도덕적 행위에 대한 인식에 의해서 반응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정념은 자기를 중심으로 한 상대적인 우열과 이를 야기한 대상들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었다. 그러나 자기의 주관에 무관하게 객관적 도덕률이 지시하는 의무의 실현 여하에 따라서 지향되는 정륜은 촉발의 대상이 이성적 의지이다. 남에 대한 정륜은 자기의 의지의 도덕성의 정도에, 그리고 도덕률의 실천 정도에 관한 의식에 의해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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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만족감     

선행에 관한 긍정적 감정:  만족감 ∙ 정당성의 만족감.      

옳은 일을 했다는 당위적 만족감. 불의를 응징함에 관한 보상 정애적 통쾌감. 부정에 관한 분노. 정의한 ∙ 성현의 생애에 관한 경외감. 존경심 ∙ 숭배감 그들 대상의 부정성에 따르는 불신감 ∙ 배신감 등의 정애와 자기 자신의 부정에 따라 일어나는 죄의식과 가책 ∙ 자괴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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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륜의 정취인 정의(情義

정의(情義)는 도덕적 정취이다. 양심의 가책인 죄의식이 대표적 전형적인 정의의 부정적 감정임.      

당위성의 규준인 도덕적 법칙[도덕률]은 칸트가 주장한 바와 같이 행위 주체에게 의무감을 동반하고 육박해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의무의 이행에 따르는 긍정 감정은 ⸺쾌적감으로 나타나지 않고 형식적인 긍정 감정인 ⸺ 당연감(當然感)으로서만 의식된다. 그러나 부정 감정은 당위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자책을 반영하기 때문에 도덕적 의식에 책임을 통감하게 하는 것으로서 이를 선명하게 느끼는 감정이 바로 다름 아닌 [양심의 가책(苛責)]이라는 것이다. 


또 가책의 내용은 도덕률의 내용에 따라 다소 달라서, 남에 대한 행위 및 행동 자체적 행위*의 경우에 의식되는 가책의 느낌이 곧 [죄의식]이며 자기 주체적 윤리에의 불충실 및 행동 도구적 행위*의 위반에 따르는 반응은 가책이라기보다는 뉘우침[후회(後悔)], 또는 자기 경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한 느낌이 된다.      


바끄러움[미안함]이나 [죄송함]은 조금 무거운 정감이었으나 요사이에는 다소 정도가 미약한 도덕적 정애의 의미로 쓰인다. 일부의 논자들이 양심의 정의적 기능으로부터 도덕적 규범을 이끌어 내고자 기도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통속적 입장에서는 정감으로서의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도덕성을 연역해 내려는 보편적인 경향이 엄존해 있다.      


양심에는 분명히 도덕적 정감이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예컨대 “너의 양심이 가리키는 바대로 행위 하라.”는 표어에는 일면의 진리가 내포되어 있지 않은 바는 아니다. 반응으로서의 양심이 맹목적이라고 하더라도 타당한 도덕률에 대한 반응도 분명히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경우에 한해서 그 양심[반응]은 정당히 촉발된 것이 된다.      


그러나 특정인의 주관적 감정으로서의 양심으로부터 도덕의 객관적 규범이나 행위의 도덕성을 연역하려는 시도는 위험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껏 누누이 지적한 것처럼 정적(情的) 양심은 맹목적으로 도덕적 의식에 수반해서 반응할 뿐인 현상이므로 잘못된 도덕률을 타당한 도덕률로 오인하여 이를 옹호하면서, 이에 어긋날 때에도 가당치 않은 가책을 느낄 뿐만 아니라 이를 남들에게 강요하는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겠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종교인들이나 과거의 인습에 얽매여 관습을 맹목적으로 준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경향이 심하게 나타난다.   

  

정륜의 정동인 정당(情當)

정당(情當)은 도덕의 정당성과 선악에 관한 정동이다.      

 정당성에 관한 긍정적인 감정으로서의 정당(情當): 정당한 사태에 대해 느끼는 당연하다는 감정. 

 정당성에 관한 부정적인 감정으로서의 정당(情當): 부당한 사태에 대해 느끼는 역겨운 감정. 정감으로 분노, 정애로 경멸.      

 선악에 관한 정당(情當): 착한 일을 보고 느끼는 정감으로 감동.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정애로 감탄. 

     

정륜[情倫도덕적 정조]의 정애          

[죄의식자기, 특히 남의 본질을 크제 침훼하는, 도덕적으로 매우 잘못한 행위에 관한 의식과 이에 따르는 센 수치심.

죄의식은 이미 잘 알려진 도덕적 의식에 달린 반응으로써 정감인 동시에 부정 정륜의 대표적인 감정이다. 양심적이기를 결의한 도덕적 인물은 그의 의지로 하여금 이성적 실천 법칙(도덕률)을 준수하고자 하는 바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에 동거하고 있는 본능적 충동으로 말미암아 그의 의지가 오염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때문에 남에 대한 행동에서 [행동 객체]의 본질을 침훼하는 경우 ┈결과에 무관하게 그러한 의식을 일부러 저지르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본질 침훼가 된다.┈ 에 그의 의식이 그 자신의 의지에 부과하는 도덕적 부정 정륜이 바로 죄의식이다.  

    

정륜도 심리적 정념을 비롯한 모든 정념과 마찬가지로 의지자 자신의 주관적 의식에 대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응은 객관적 정세가 어떠하건 간에 개인의 도덕적 의식 내용에 따라 촉발된다.      

그래서 가장자리로라도 의식이 윤리기에 체류해 있지 않은 자는 도덕률에 명백히 위배되는 경우에 처하더라도 자기에 대한 부정 정감(가책)이나 부정 정애(죄의식)는 촉발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편 의식 핵이 윤리기에 체류해 있어서 도덕의식이 예민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엄격한 도덕률의 준수에 대한 정념이 자랑스러움이나 기쁨, 또는 즐거움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도덕률의 준수는 자신이 스스로 확립하고자 결의한 이성적 존재의 본성에서 오는 당연한 의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촉발되는 자신에 대한 정념(그것이 정감이든 정애이든)은 호연(浩然; 떳떳함)으로 밖에 촉발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도덕적 정념으로서의 남에 대한 정애는 어떠한가? 본래 도덕은 나와 남을 묻지 않고 각인의 자유의지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남의 의지가 이성적이거나 기성적이거나 간섭할 권리가 없는 것이며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남의 도덕성이나 인격성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의 정애가 촉발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도덕의 궁극적 책임이 개인의 자유의지에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을 동위자로 여기고 있는, 또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있는 한, 인간으로서는 남의 도덕성에 무관심할 수가 없어서 남의 도덕적 의지나 행위에 대한 느낌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원리적으로는 타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에 대한 도덕적 정애가 발생된다. 아니 오히려 인간은 자기 자신의 비도덕성이나 부도덕성에는 관대하면서도 남의 그러한 행동에는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는 일이 더 흔하다.      


남에 대한 이러한 정애의 하나가 분노이다. 물론 남에 대한 정념에도 긍정적 정념과 부정적 정념이 있다. 뿐만아니라 남에 대한 정륜에는 도덕률의 실천 정도에 따라서 촉발되는 도덕성의 정념과 행위자 의식의 체류 정도에 따라서 촉발되는 인격에 관한 정념이 대자적 정념보다 더욱 뚜렷하게 발현된다.  

    

남에 대한 인격의 긍정적 정애는 도덕성적(道德性的) 정감 및 정애가 그러했던 것처럼 떳떳함이며 오직 부정적 정애로서의 자멸감(自蔑感)이 있는데 불과하나 남에 대한 정념·인격성에서는 그 부정형인 경멸과 함께 존경이라는 뚜렷한 긍정적 정애가 있다. 남에 대한 도덕성의 정감은 그 개념을 일상적 언어로 명확하게 구분해 내기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註)] 표 해설

➀긍정 감정으로서의 정감, 곧 자기 자신에 관한 기분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자기의 도덕성의 굳셈에 관해 의구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자기가 도덕적 행위를 한 데 대해 스스로 대견하게 느끼고 뿌듯해 할 것이다. 

➁긍정 감정으로서의 정념으로는 자기 자신 호연(浩然)*하다. 세상에서는 이러한 감정마저도 겸손하지 않은 것이라 하여 배척하기도 하지만 그건 지나친 억압이다. 


*호연(浩然)은 필자가 맹자(孟子)의 [호연지기(浩然之氣)]에서 따온 말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조그만큼의 잘못도 없음을 확인함으로써 한 톨의 부끄러움도 없이 떳떳[당연]하게 느끼는 감정을 가리킨다.      


➂부정 감정으로서의 정취는 자기 자신 내심으로 느끼는 자기의 인격에 관한 부끄러움과 피행자에 대한 바끄러움[미안함]이 발생할 것이다.      

➃부정 감정으로서의 정애에 관해 말하자면, 가행자인 상대의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불쾌감을 느끼고 그 행위가 주로 자기와 밀접할 때에는 분노를, 그 인격에 대해서는 가증스러움을 느낀다.        

 

정감      긍정적……………당연·감동

            부정적……………혐오·불쾌

정애      긍정적……………존경·찬탄

            부정적……………분노·가증스러움  

인격적 정애: 

긍정적: 인격자에 대한 정애: 존경심                 

부정적: 비인격자[비열한 자]에 대한 정애: 경멸     

               

 정신적 기능에 따른 정조(情操)의 구분 

앞에서도 초든 바 있었듯이 도덕적 감정에도 정감에 해당하는 나에 대한 반응과 정애에 해당하는 남에 대한 지향 반응이 있는데 개념의 정의적 측면만을 주목하면 양심(良心)이 바로 도덕적 정념임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양심이라는 명칭이 나타내는 개념에는 정의적 측면 이외에도 인식적 측면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앞의 것만을 뜻할 때에 양심은 좁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에 견주어 지정의의 전 의미가 내포된 넓은 의미의 양심은, 반응하는 감정적 양심일 뿐만 아니라 정사선악을 판별할 수 있는 고도의 지적 인식 능력 및 이를 실천하려는 동인으로서의 의지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감정에 관해서, 또한 심리적 의식에 관해서 논의하고 있는 본고에서는 넓은 의미로서의 양심이 아니라 도덕적 의식에 의해 촉발되는 반응인 좁은 의미의 양심에 한해서만 주목할 뿐이다. 이와 같은 도덕적 정감으로서의 협의의 양심은 심리적 반응으로서의 정감이 심리적 의식인 제시의 의도 달성에 기쁨을, 그리고 제시 의도의 좌절에 슬픔을 불러일으키듯이 행위의 주체자로 하여금 행위의 타당성에 대한 의식에 따라서 도덕적인 시인이나 부인에 따르는 감정을 유발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반응 일반을 촉발시키는 근거는 객관적 정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세에 관한 주관적인 의식이었다. 생리적 정감은 육체의 존망에 관한 객관적 사실에 의존해서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존망, 곧 생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되는 정세의 의식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며, 심리적 정감은 제시 결과에 관한 객관적 사실에 입각에서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제시 결과를 의식하는 당자의 주관에 따라서 유발되는 것이었다.


 그와 똑같이 양심도 행위의 객관적 양상, 즉 야기된 결과의 도덕적 타당성에 따라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 당사자가 행위에 대해 갖는 도덕적 평가에 관한 주관적 의식에 따라서 유발되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행위가 도덕의 객관적 규준과 일치하든 위반하든 관계없이 다만 행위자에게 옳게 또는 그르게 의식되는 데에 따라서 맹목적으로 반응만 하는 것이 도덕적 정감으로서의 양심의 기능이라는 말이다. 


필자로서는 도덕적 의식의 객관적인 근거가 이성의 논리적인 귀결에 따르는 본질 판단에 있음을 지적*한 바 있으나 여기에서 이를 설명하지는 않았으므로 필자의 주장을 믿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런데 반응 일반을 촉발시키는 근거는 객관적 정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세에 관한 주관적인 의식이었다. 생리적 정감은 육체의 존망에 관한 객관적 사실에 의존해서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존망, 곧 생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되는 정세의 의식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며, 심리적 정감은 제시 결과에 관한 객관적 사실에 입각에서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제시 결과를 의식하는 당자의 주관에 따라서 유발되는 것이었다.

 그와 똑같이 양심도 행위의 객관적 양상, 즉 야기된 결과의 도덕적 타당성에 따라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 당사자가 행위에 대해 갖는 도덕적 평가에 관한 주관적 의식에 따라서 유발되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행위가 도덕의 객관적 규준과 일치하든 위반하든 관계없이 다만 행위자에게 옳게 또는 그르게 의식되는 데에 따라서 맹목적으로 반응만 하는 것이 도덕적 정감으로서의 양심의 기능이라는 말이다. 필자로서는 도덕적 의식의 객관적인 근거가 이성의 논리적인 귀결에 따르는 본질 판단에 있음을 지적*한 바 있으나 여기에서 이를 설명하지는 않았으므로 필자의 주장을 믿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행위의 도덕적 타당성의 객관적 근거가 무엇이거나 간에 도덕적 정감으로서의 양심이 의식의 주관성에 의해 어떻게 촉발되는가를 설명할 수는 있다. 양심은 행위 주체자의 당위성의 규준에 의해서 판단된 자기의 행위의 평가에 의해서 촉발된다. 자신의 행위가, 자신의 주관적인 당위성의 규준에 의해 평가했을 때 타당하게 판단되면 그는 그 행위에 대한 도덕적 시인(是認: 긍정) 감정을 가지게 되며 만약에 부당하다고 의식되면 그는 그 행위에 대해 도덕적 부정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정륜의청정탁정

정도(正道)와 사도(邪道)에 따른 정감과 정애

필자는 심리적 정동에서 우열 경쟁 관계에 따라 순리적 관계에서 생기는 청정(淸情)과 역리적 관계에서 생기는 탁정(濁情)이 있다는 점에 관해 초든 바가 있다.      

도덕적 정동인 정륜에도 비슷한 경우가 생기는데 그것은 경쟁에 따른 순리와 역리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 개념인 올바름과 그릇됨 및 선업과 악업에 따르는 운명의 보상에 대한 공중(公衆)의 보상 정애에 따른 감정에 의해서이다.  

    

공중의 보상 정애는 정도[正道]에 따른 선업[또는 선덕]에 대해서는 긍효로움[복락]이, 사도[邪道]에 따른 악업[또는 악덕]에 대해서는〘반효〙로움[재앙]이 내려져야 정의로움에 순응되는 순리일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운명에서의 업보에는 순리와는 달리 정의에 어긋나는 불의한 역리적 현상이 흔히 나타난다. 곧 선업을 쌓은 선량하고 양심적인 사람이 고생하면서 살았음에도 재앙이 닥치고 악업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속물들이 거들먹거리며 넘치는 복락을 주체하지 못하며 호강하는 일이 한두 사례가 아님을 보면❰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이❰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서 초든 바와 같이 하늘의 법도로서의 정도인 천리에 대해 갖고 있었던 의구심, 곧 “어째서 백이 숙제 같은 의인이나 공자의 수제자였던 안회와 같이 의로운 사람에게는 굶어 죽지 않을 수 없이 세속적 결과가 불행으로 귀착되고 있음에 견주어 날마다 죄 없는 사람들을 죽여 그 살을 회쳐 먹는 등 포악 방자했던 천하의 사악한 도척은 천수를 다해 살며 호의호식했는가? 그것이 과연 하늘의 정의(正義)일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고 탄식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도척의 후예들이 곳곳에서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며, 이를 통해 호의호식하는 것을 보는 우리들은 그들의 악한 행태와 그리고서도 권력을 잡고 부를 축적하면서 쾌락과 복락을 누리고 있는 그 결과에 치를 떨며 분노하며 절망감에 빠져 생의 의욕을 잃고 하늘이나 신(神)이 정의(正義)로워서 공정한 심판을 내린다는 관념에 대해 역시 같은 의구심을 떨쳐 버리기 어려워 사마천의 심정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정의롭지 못한, 곧 불의한 현실에 관해 공중적 정륜의 발현은 청정적이거나 탁정적이다. 다시 말해 선업에 대한 복락이나 악업에 대한 재앙에는 청정이, 선업에 대한 재앙이나 악업에 대한 복락에 대해서는 탁정이 발생한다.



정륜의 정감

[긍정적 정감]

 뿌듯함어떤 사람 ⸺예컨대 칸트⸺ 들은 뿌듯함이나 호연 등은 자기를 이롭게 하는 감정이므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일은 선하지 않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착한 일이나 정당한 일을 하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결코 이기적인 감정이 아니다. 

 호연(浩然{떳떳함}: 자기의 행위가 공명정대하여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조금도 부끄러울 바 없는 떳떳한 도덕적 정념.     

[부정적 정감]

 바끄러움[미안함상대방인 피행자에 대한 가해가 상식적인 선을 넘은 비례(非禮)임을 의식하여 발생하는 부정적인 감정. 

 부끄러움[수치스러움대상들에 관해 부도덕적 행위를 한 데 대해 느끼는 부정적인 정감.   

        

정륜의 유형

분노(忿怒 ∙ 憤怒

비도덕적인 부당한 짓에 관한 의식으로 치솟아 오르는 강력한 정동.

ⓐ자신을 비롯한 의지자 일반의 천부적인 행동 테두리에 속한 본질이나 권한에 속하기 때문에 마땅히 대상자들이 누려야 되는 발현 ⸺당연한 주장이나 처지, 또는 욕망이나 목적 등 남의 의지는 그 의지가 어떤 성격의 것이거나 우선 긍정적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그 의지에 도덕성이 결핍되어 있음을 비난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 합당한 이유 없이 막히거나 짓밟힌다, 곧 본질이 침훼된다고 생각될 때, 정당하지 않은 판단이나 평가로 정당한 권리나 지위에 위협이 가해질 때, 기대하는 바 자기의 자존심을 무시하거나 짓밟는 가해자에게 지향하여 유발되는 정념.

      

분노의 이유

 무시당하거나 모욕을 당할 때, 

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거나 자존심의 상처를 받았을 때에 대한 보복. 

 부당한 사태 불의한 상황 등, 특히 자기의 처지가 침훼되는 부정적인 사태에 대한 반응. 

 공의(公義)가 침훼되는 부정적인 사태를 없애기 위한 반응이 열망으로 바뀌어 의분(義憤)이 끓어오르기도 한다.      


분노의 결과: 폭력 보복

분노를 느끼면 자극 대상에 덤벼 짓밟거나 치워 버리려 하거나 분노가 일어난 상황을 돌려놓으려 한다.*

따라서 폭력이나 보복으로 나아가고 

*이훈구 외 지음 정서 심리학❱  법문사 간 2003/ 3/31 제10장 1. 분노란 무엇인가? 223쪽 참조.

      

[본질 침훼에 관한 분노]

남으로부터 췸훼를 당해 일어나는 분노이다.      


[좌절 분노]

자기 스스로의 기능이나 역할이 변변치 못하여 본질 발현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데 따라 일어나는 분노. 그러나 대부분은 이를 남의 탓으로 귀인시키면서 분노하게 된다.   


공분(公憤)

도덕의 근본적인 원리에 어긋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 ┈나와 남이 다 포함되나 자기 자신은 도덕적으로 정당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특히 남의 부당성 • 부도덕성에 대해 격렬하게 나타난다┈ 에 대한 정애. 


두 가지 모두 정당성의 개념과 결부되어 있을 만큼 분노는 정당성의 침훼를 문제시하고 있는 정념이다. 경멸이나 분노를 자기가 입은 피해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라 한다면 의지자 일반의 의지에 대한 침해는 [공분(公憤)]이라는 보편적인 정애로서 나타난다    

 

●감정은 이성과 기성의 결합에 의해 발생하므로 의식이 지나치게 기성적이거나 이성적일 때 감정의 영향력은 감소한다.  곧 물리기적 의식에서는 감정의 발현은 성하지 못하며 이성적인 의식의 단계인 윤리기에서는 도덕적 감정인 죄의식 등 이외의 감정은 억제된다.     

 

아름다움의{미적정동인 정예(情藝)

아름다움의 정취인 정선(情鮮)

심리적 정서는 분위기에 관한 느낌, 색상 형태 행동 정미

아롱거리다 알록달록하다. 반짝이다. 

   

아름다움의 정동인 정미(情美)

우주와 천체 경관 등 자연물을 보고 느끼는 감각적 정신적 미감.

사물의 현상을 대했을 때 느끼는 아름답거나 추함. 

사물의 현상들: 꽃 경치 동물이나 사람들의 움직임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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