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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경 Jun 03. 2024

[제5장] 보상의 대상

앙갚음, 안갚은은 누구에게 향하는가?

보상의 대상 실마리

보상의 대상은 의지자 

보상은 정애의 연장이기 때문에 정애의 가능적 대상은 보상의 대상이기도 하다. 곧 정애의 대상이 그러하듯이 보상의 대상에는 모든 의지적 존재가 포함된다. 인간은 물론이요, 동물ㆍ식물ㆍ악령ㆍ천사ㆍ귀신ㆍ신(神)ㆍ운명 등 보상자[보상의 주체]에 의해 자기의 생존에 ⸺자연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고의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지는, 관념적인 대상을 포함하는 모든 사물들이 보상의 대상이다. 


이처럼 대상의 실재성 여부를 불문하고 보상자의 의식 주관에 의해 실재의 관념만 있으면 그 정념이 지향된다는 사실 역시 정애 일반과 다름이 없다. 개개의 사건에서의 보상의 대상을 엄격하게 분별하려면 사건의 발생에 그 대상이 고의적으로 관여한 가행자(加行者)가 틀림없는가가 밝혀져야 할 것이며 던져 넣으려는 보상의 정도도 가행자가 피행자에게 미친 영향[결과]에 비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앙분을 동반하는 모든 정념의 대응, 특히 본능적 대응 방식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보상에서도 보상자는 마비 편향*ㆍ혼상 편향*ㆍ집착 편향* 등에 강하게 지배되기 때문에 보상의 대상이나 정도를 합리적으로 분별해 낼 수 없게 된다. 이래서 보상 정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보상을 갚는 대상의 범위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상의 대상에는 [원래의 대상(원 대상)]과 [대체 대상]이 있다. 


의식이 명료하지 않을수록 보상 내용이나 대상 등이 정확하지 않고 헷갈려 인과관계가 타당하지 않은 대상이나 분량으로 지향된다. 

*마비 편향*ㆍ혼상 편향*ㆍ집착 편향*: 편향에 관해서는 Ⅳ [의식의 편향성(偏向性)] 참조. 

     

자보(自報): 

인간은 모든 행위에 대한 보상 심리를 지니고 있어서 자기 자신도 예외로 두지 않는다. 자보란 가행자 자신에 대해 스스로 갚는 일이다. 

❉자기 자신에 관한 자보

❉동류집단에 관한 자보

자보에도 당연히 긍정적인 자보가 있고 부정적인 자보가 있다. 


긍정적 자보인 자긍(自矜): 자기의 의지에 대해 스스로 갚는 긍정적인 자보가 자긍이다. 자긍심이란 자기 자신의 긍정적인 능력과 행동을 아끼고 사랑하여 스스로 안갚는 마음이다.


자중자애(自重自愛): 자기의 심신을 제 스스로가 귀중히 여겨 아끼고 사랑함.     


부정적 자보인 자해 자학(自虐)과 자책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상대에게 마음대로 보복하지 못해서 앙분이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은 경우에 공격의 칼끝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일도 있다. 그러한 경우에 당자는 먼저 대성통곡으로 적체된 앙분을 일부 해소시키지만, 그것만으로도 여의치 못한 경우에 공격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앞에서, 폭행을 가하려다가 오히려 당했음에도 앙분이 해소되는 일이 있음을 지적했는데 이러한 경우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보복하는 [자학(自虐)] 또는 자책이라는 기제이다. 자학의 대상이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자책(自責): 부정적인 자보이다. 자신의 잘못이나 그릇된 의지에 대해 스스로 뉘우쳐 반성하거나 자해를 해서 책임을 지워서 해분한다.

자해: 가행자에 대한 보복이 뜻 같이 이루어지지 않아 자기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피행자가 가행자가 아닌 자신에게 상해를 입혀 보복의 앙분으로 발생한 힘을 없애는 행위. 


자신을 비롯한 가장 가까운 친척ㆍ이웃 등 대아 동류들 대부분이 자학의 대상이 된다. 쌓인 앙분을 못 이겨 자기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즉 자기 자신에게 복수를 하는 일도 있다. 정신 분석학에서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가 그 대상을 외부로부터 자기에게 전환함으로써 야기되는 [내공(內攻{들여치기}) 자공]이라고 설명하는 기제는 필자가 보기에는 바로 이러한 경우가 아닌가 한다. 


내공은 상대적인 열등의 원인이 되는 자기 동류에 대한 문책성 분노이다. 예를 들어, 친구들에게 매 맞고 돌아온 자녀를 위로하기는 커녕 거꾸로 때려서 앙분을 푸는 어머니, 또는 자기편 선수들의 졸전으로 패배한 감독이 선수들에게 집단 기합을 주는 행위 ⸺물론 기합을 통해 정신을 각성시키게 하여 차후를 대비한다는 명분을 제시하겠지만 그것만이 다일 것인가?⸺ 가 바로 이러한 것으로, 패배함으로써 앙분된 분노한 감정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학이 되지만 이렇게 분노를 터뜨림으로서 어느 정도의 앙분을 해소하기 때문에 효과는 있다.

 

원 대상

원 대상의 뜻

원 대상이란 보상자에게 보상적 영향을 끼친 본래의 가행자, 보상자가 은수를 갚으려고 하는 본래의 대상이 바로 원 대상이다. 피행자는 본성적으로 자기에게 영향을 끼친 대상을 정확히 확인하여 자기가 받은 만큼의 분량으로 갚으려 한다. 따라서 의식이 명료하지 않을 때가 아닌 한, 보상자가 일부러 그 밖의 대상에게 갚으려고 하는 일은 없다.      


동류 대상

가장 쉽게 갚는 대체 대상은 직관적으로나 의미상으로나 원 대상과 가장 비슷해서 같은 대상으로 의식하기 쉬운 대상인 동류 대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류 대상의 표상이 원 대상과 비슷하기 때문에 동류 대상에게 보상을 던질뿐만 아니라 동류 대상의 의지 자체가 원 대상과 같은 바탕일 것이라는 관념이 있기 때문에 ⸺원 대상에의 보상이 곤란할 때나 원 대상의 존재가 불분명할 때 등에⸺ 그 동류, 동류 대상 가운데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인 원 대상의 부모ㆍ자녀ㆍ이웃ㆍ동지 등을 맨 먼저 고른다. 


가장 가까운 이웃은 보상의 대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보상의 대체로도 제1순위자이다. 곧 갚아야 할 은수(恩讐)의 대상이 없을 때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보상하게 되듯이 가장 가까운 이웃들은 그들의 동류가 피행자(被行者) 본인(원 보상자)일 때 그를 대리하여 가행자에 대한 보상을 수행하는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없으면 그 가족에게 보복하고, 남에게 신세를 진{은의(恩義)를 입은} 원 대상이 없으면 그 자녀나 가족에게 보은하고 부모 형제들이 남에게서 입은 원한은 그 자녀 형제들의 복수심을 불태우게 한다. 보상 정애는 빚이나 의무처럼 대대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가장 가까운 동류에의 보상이 곤란하면 일반화된 동류들에게라도 집어던지려는 것이 보상심이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남자에게 피해를 입은 여자는 모든 남자들에게 이를 보복하려 한다. 가예고스*는 그의 소설에서 여주인공 [도냐 바르바라(소설명이기도 한)]를 통해 이러한 여성의 보복을 묘사하고 있다. 


젊어서 남자에게 잔인한 치욕을 당한 도냐 바르바라는 억척스럽게 재산을 모아 평원의 큰 농장주가 된다. 그녀는 범죄자들을 끌어모은 뒤 부와 권력을 이용해 남자들에게 갖은 복수를 다해 폐인과 자살자를 속출시키고 일부는 그녀의 도구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한다는 것이다.


*가예고스(Gallegos Romulo) 1884~1969 베네주엘라의 작가·정치가.


● 2004년 한국에서 발생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에서 유영철은 여성이나 부호에게 원한을 품고 무려 20여 명을 살해하였다.     


이러한 사례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님은 물론이다. 특정한 백인에게 피해를 입은 흑인이 모든 백인을 저주하고 한 마리의 뱀에게 물린 사람은 모든 뱀을 증오한다. 이처럼 특정한 가행자에 대한 보상심을 그의 동류 대상 일반에게 일반화하려는 것이 보상심의 속성이다.    


대체 대상(대상을 바꿔 갚음)

의식은 아무리 복잡하게 전개된다고 해도 시간적 선상 위에 배열할 수 있는 한 줄의 연속적 현상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보상자의 보상 의식을 회피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하나밖에 없는 의식의 지향을 다른 대상으로 바꿈으로써 달성시킬 수가 있다. 


갚으려는 사람의 마음이 원대상에게 갚으려 하는데도 원 대상이 아닌 대체 대상에게 지향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까닭들 때문이다. 먼저 보상심 자체의 문제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로, 위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듯이 보상심이 솟구쳐 있어 분별력이 크게 저하되는 등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원 대상인가 아닌가를 정확히 가려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원 대상에 대한 보상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할 때, 솟구치는 보상심을 신속히 내뿜어 없애기 위해 갚기가 쉬운 비슷한 대상에게 지향한다. 


이러한 방략은 정치적으로, 특히 독재자들이 그들의 실정(失政)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앙분을 다른 대상으로 전환시켜 책임을 모면하려는 속죄양 만들기의 경우에 종종 사용해 왔다.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이런 방법에는 보상의 내용에 관한 고려와 앙분의 기력에 관한 고려가 필요한데 내용은 분노의 내용과 거리가 먼 것을, 그리고 기력은 망각에 의해서나 사용에 따라서 쉽게 소진될 수 있는 것이 채택된다. 거창한 체육 행사나 문화 축제의 개최ㆍ선동적 사건의 보도나 폭로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치솟는 앙분 때문에 의식이 심하게 마비되어 대방으로부터의 반격도 고려해 보지 않고 물불 가리지 않고 결사적인 보복을 감행하는 일도 적지 아니 있다. 


예를 들어 원 대상이 자기보다 강한 상대인 경우, 보복을 가해 보았자 오히려 더욱 강력한 응보를 받아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을 때에는 보복을 의식 속에서 태워버려 사그라지거나 대체 대상에게 돌려지는 등 대개는 눈물을 머금고 복수심을 억제하게 된다. 


또 보상의 대상이 사망했거나 현장에 없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부풀어 오른 앙분은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풀어버리지 않을 수 없는 압력으로 작용해 오는데 이처럼 원 대상에게 갚을 수 없게 되면 분별력을 잃은 부픈 앙분은 이를 누구에게라도 던져 풀어버리려 하게 되고 이러한 때에 자행되는 편법적 보상이 대체 대상에 갚아버리게 된다. 보복의 대상이 눈앞에 없을 때에도 그러하다.


보상 정애의 [앙분(怏憤: 한자 표기에 주의)]은 거의 대부분이 상대에게 던져지게 마련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없지 않은데 그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지향이 여러 가지 장애 때문에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대상을 바꿔 갚음[대체(代替)]에는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     


배채기약소 대상(弱小對象)에 대한 부정적 보복

*배채기(배참)은 예를 들면 저보다 강한 강이에게서 당한 억울한 일의 분풀이를 저보다 약한 낭이에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말은 ‘시누이 못 쳐서(때려서) 개 배때끼 찬다.’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곧 ‘개의 배 찬다’는 말에서 ‘개’란 말을 빼고 ‘배차다’를 넣어 명사화한 것이다.   


자기보다 강한 대상에게 보복할 수 없는 경우에 보복의 대상을 보통 자기보다 약소한 대상으로 바꿔 행하는 일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이는 합리적인 판단이기 때문이기보다는 앙분하는 보상심을 쉽게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질책을 받은 회사원은 부하 직원이나 자기 부인 또는 자녀에게 화를 터뜨리며 시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은 며느리가 자녀들을 때리거나 강아지를 걷어차 배채기하는 일은 약소 대상에의 대체 보상의 흔한 형태이다.     


주변 대상

앙분된 복수심을 참기 어려운 사람은 그의 응집된 앙분을 손쉽게 발산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서 주변의 사물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는 의지적 존재도 아닌 주변의 물품들, ⸺예를 들면 화분ㆍ전화기ㆍ쓰레기통ㆍ필기구 따위⸺ 를 집어던지거나 망가뜨림으로써 앙분된 복수심을 풀어 없애기도 한다. 


분노의 유발 원인인 복수 대상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주변인에게 분풀이를 하려 드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되는데 이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불쾌한 태도를 보이는 주변인을 공격하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자기보다 더 강한 자에게도 덤벼들어 오히려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처럼 보복하려다가 오히려 폭행을 당하더라도 이러한 사태가 신기하게도 앙분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앙분이 너무 강렬하여 이를 풀어버리려면 앙분을 부추기는 의식이나 기력을 낭비하여 없애버라고 사태를 회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직 기력만을 소진시켜서 앙분을 해소시키기 위해 기물 등 물품을 부수거나 불태워 없애는 퍼포먼스를 행하는 일도 있고 이를 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우회(迂廻에두른대상

보상심은 상대방의 의지와 감정에 자기가 입은 결과의 긍정적 및 부정적 상태를 되갚아 입히려는 심정이므로 때로는 원래의 대상 자체에 대한 보상이 되지는 못하지만, 원래의 대상에게 기대하는 바의 효과를 유발시킬 수 있는 다른 대상[대체물]에로 외둘러 달성시키려 하기도 한다. 


곧 원 대상이 아끼는 소유물, 명예, 목표 등에 대한 애호(긍정적일 때)로 기쁨을 느끼게 하거나, 공격(부정적)해서 피해를 입혀 상대를 비통하게 만듦으로써 해소하는 경우 등이 그러하다.  

   

무관(無關대상 

보상의 대상을 특정할 수 없거나 아예 대상이 없는데도 지향되는 보상. 


자기를 무시한 사람 • 모욕한 사람 • 버린 사람 • 미워한 사람 등에 대한 가장 통쾌한 일은 그들보다 더 우월한 사회적 용재[지위나 신분 재화]에서 그들을 능가하는 우월한 용질을 얻음으로써 복수하는 것이다. 


[무상(無象대상대상이 없거나 명확하지 않은 상대에 대한 보상. 법칙이나 법률, 제도나 제품의 고안자에 대한 안갚음이나 앙갚음. 


[불명(不明대상] 대상이 있는 것은 분명하나 특정하기 어려운 대상에 대한 보상. 예컨대 길거리에 던져진 유리병의 깨진 조각에 다친 사람이 그 병을 던진 사람에게 지향하는 보상, 불량품이나 사회 제도 등의 불합리나 불편, 부당성 등에 대한 비난이나 욕설, 저주 등.

 

[공념적(空念的대상] 신불(神佛) 등을 믿지 않으면서도 우연히 받은 은혜나 피해에 대해 그 상황을 야기시킨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거나 분노를 느껴 안갚음 하거나 앙갚음하는 것. 


운명에 대한 보상. 운명을 저주하고 증오하거나 환호하고 만족하는 것 등

✼정의와 불의에 관한 보상[윤리적 보상]

❉업(業: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에 대한 보상.

각각의 보상은 당연히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내용을 바꿔 갚음

보상의 대상을 바꾸듯이 보상의 내용을 바꾸는 일도 흔하다. 특히 거래에서는 이러한 일은 다반사다. 재물을 주는 대신 매를 맞는다든지 돼지가 짙밟아 뭉게진 배추 대신 그 돼지를 차지한다든지. 

     

속죄양(scapegoat)

두루 알려져 있는 속죄양의 기제는 특정의 대상을 선택하여 대중의 집단적인 울분을 해소시키는 물길 트기[수로화(水路化)] 보복의 조작적 형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속죄양의 방략이 성립되는 곳은 다중(多衆)의 분노가 앙분되어 있는 대중적 사회에서이다. 


그리고 이들 분노한 대중을 속죄양에게 유도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지도층이다. 많은 교활한 지도층들은 그들의 상사인 권력자나 대중들 ⸺보복의 앙분이 쌓여있어 폭발하면 무서운 결과가 야기될 우려가 있는 자들⸺ 의 분노를 해소시키기 위해, 분노를 촉발시킨 원 대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원인으로 전이시키기에 알맞은 약소 대상을 선정한 뒤에 그 대상에게 앙분된 복수심의 물길 트기를 암시, 유도한다. 


복수심은 내연한 앙분의 응어리를 선정된 속죄양에게 지향하여 해소시킴으로써 일단 진정된다. 눈먼 복수심은 이러한 행동의 도덕적 타당성 여부ㆍ대상의 실질 등엔 개의하지 않는다. 앙분 해소만이 그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인 까닭이다. 


인간 본능의 잔혹함이 인류 역사의 전면에 무수히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이면에서는 폭력이 더욱 무수히 자행되어 왔을 것임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형태의 많은 사례가 부정적 보상 정애인 복수심에 의해 야기되는 바이고 그 중의 상당 부분이 속죄양의 기제에 속하는 것이다. 


낡은 로마시를 찬란하게 재개발하려는 망상증으로 방화했다가 시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네로 황제가 그의 과오를 회피하기 위해 기독교도들을 속죄양으로 삼아서 그들에게 시민들의 앙분의 물길을 터놓은 사실*은 솅키비치의 소설*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 1923년 일본 관동 지방에서 발생한 관동 대진재로 아비규환의 혼란이 일어나자 평소부터 적의와 경멸의 대상이던 그곳 한국인들을 속죄양으로 삼아서 흉흉해진 이재민들의 울분을 해소시켜 보려한 일제의 만행도 이러한 기제의 사용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설도 있음.

*솅키에비치의 소설* 《쿠오 바디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사아젠트: 사회심리학. 양회수 역. 을유문고. 1972년(5판) 1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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