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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우정 Oct 21. 2024

장비충의 손

최고의 장비는 손

셀프세차가 아닌 전문적으로 세차를 하려면 장비가 필요하다.

창업 초기에 가맹 본사에서 갖가지 장비를 구매하게 된다. 일정 기간의 교육 마치면 레이밴 차량에 장비가 장착되어 지급된다. 검수 과정을 거쳐서 인수한다. 인수받은 다음날부터 영업시작이다. 물론 교육 내용 중에는 장비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출장을 나가서 세차를 하므로 레이밴 차량이 영업소이자 사무실이다. 그러니 필요한 모든 장비들이 망라되어 세팅이 된다. 처음엔 가맹본사에서 지급된 대로 운영을 하는데 초보 입장에서는 그게 좋은지, 다른 게 좋은지 알 길이 없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소모품은 떨어져 재구매를 해야 하고, 장비는 낡아간다. 얼마간 사용을 해본 결과 소모품과 장비의 퀄리티에 대한 호불호가 생기게 된다. 생각보다 탁월하다고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내 손에 맞지 않는 것들도 있다. '아직 적응이 안 돼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장비에 대한 아쉬움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다 결국 여기저기 뒤져보게 된다.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질러서 구매한다. 내가 원하는 성능이 있는가? 확률은 반반이다. 손에 딱 맞아서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한 가지 장점만 보고 구매했다가 기왕의 기능은 떨어져서 실패한 경우도 많았다.


일을 하면서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세차 타월이다.

타월은 4가지가 필요하다. 외부용, 내부용, 유리용, 휠세척용으로 나눌 수 있다. 외부용 타월은 타월의 '모(털)'가 길어야 한다. 모가 길어야 나도 모르는 이물질로 인한 차체의 스크레치를 예방할 수 있다. 스팀을 분사하며 타월이 그 뒤를 따라가므로 큰 이물질은 제거가 되지만 혹여라도 남은 이물질은 타월에 포집된다. 타월의 면을 달리하거나 자주 교체하여 차체를 닦아내지만 타월 사이에 낀 이물질로 다음 면을 작업할 경우 차체에 상처가 날 수 있다. 따라서 타월의 모가 길어야(공간이 좀 있어야) 차체의 도장면에 밀착되지 않아 스크레치를 최소화할 수 있다.


내부용 타월은 모의 길이가 보통이면 된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외부용 타월과는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월을 세탁하여 사용을 하더라도 외부용 타월에는 차체의 이물질이 잔존할 수 있다. 이런 외부용 타월을 사람의 몸이 닿는 내부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유리용 타월은 타월모가 짧은 것을 사용한다.

유리면에 밀착시켜서 잔사가 남지 않도록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리를 닦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그래서 유리용 타월이라고 대놓고 판매하는 제품을 구매해서 사용해 봤다. 그 타월은 올록볼록하게 엠보싱 처리가 되어 있었다. 실제 효과가 있을까 하고 사용해 봤지만 별 효용성을 느끼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유리용 타월은 타월모가 짧으면 된다. 다만 완전히 건조된 타월이 필요하다. 유리세정제로 1차 닦아낸 유리면을 완전히 마른 타월로 닦아내야 잔사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휠세척용 타월이다.

외부용, 내부용, 유리용 타월 중 사용 기간이 다되어 이젠 이별을 앞둔 타월로 진행한다. 도로의 온갖 이물질과 브레이크라이닝의 분진이 묻은 휠에 사용한 타월은 재사용이 어렵다. 그러니 폐기 직전의 타월이 휠 세척용 타월이 된다.


다음으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장비는 분무기다.

전문적으로 세차를 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액체 화학약품을 사용하게 된다. 도장면의 마무리에 사용하는 물왁스, 유리세정제, 타이어 갈변을 방지하는 타이어 드레싱제, 차체 전면과 백미러 앞쪽에 달라붙은 벌레사체를 제거하는 단백질 제거제, 찌든 휠을 세정하는 휠세정제, 내부용 세정제, 플라스틱 보호 등등 약 15가지 액체 약품을 사용한다.


이런 약품들은 분무기 용기에 소분하여 사용하게 되는데, 이 분무기도 생각할 부분이 많다.

액체 약품 중에는 농도가 진해서 진득한 것도 있는데 이런 고농도의 액체도 쭉쭉 빨아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움직이며 사용하다 자주 바닥에 떨어뜨리게 되는데 이때 트리거(손잡이) 부분이 자주 파손이 되거나 2단 분해가 되기도 한다. 분무기의 용기는 흰색이거나 투명해서 내부가 보여야 한다. 그래야 얼마나 남은지 알 수 있다. 출장을 나가서 진행을 하므로 다 떨어진 약제는 바로바로 리필을 해야 문제가 없다.


처음에는 초기에 세팅된 분무기를 사용했다.

디자인이 세련됐지만 내구성이 부족해서 고장이나 파손이 잦았다. 그래서 그때그때 괜찮아 보이는 분무기를 종류를 달리해 사서 사용하다 보니 용기의 통일성도 없고, 세차약재 통에 놓이면 정말 산만하여 보기 싫었다.(처음 이용하는 고객이나, 지나가는 가망 고객은 내 세차차량을 유심히 살펴본다.) 이것저것 사용해 본결과 케니언 분무기가 가장 단순하면서도 내구성이 좋았고, 용기도 내부가 훤히 보여 이것으로 전부 통일했다.


출장 세차 시공 장소의 절반 이상은 지하 주차장이다.

지하에서 하다 보면 아무래도 어둡다. 지하주차장의 조명은 감응형이라 움직임이 없으면 꺼지고, 그나마 켜져도 밝지는 않다. 디테일링 매장에서는 LED 등으로 매우 밝게 환경을 만들 수 있지만, 출장의 경우는 어렵다. 어두운 환경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 있고, 무엇보다 어두침침한 곳에서 계속 일하게 되면 내 눈도 나빠질 것 같았다. 그러니 헤드랜턴이 정말 중요한 장비인데, 이 헤드랜턴의 종류도 너무 많았다. 1~2만 원 대의 싸구려부터 2~30만 원 대의 전문가용까지. 나의 구매기준은 일단 밝을 것, 그리고 오래갈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 연재의 6화 '수리비는 900만 원입니다'를 겪은 뒤에는 랜턴 외부가 고무로 되어있을 것! 이 추가되었다. 이마에 띠를 둘러 비추는 헤드랜턴으로 차체나 내부에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장비는 스팀세차기다.

세차 차량에 장착된 장비 중에 가장 무겁고 가장 비싼 장비도 세차용 스팀장비다.(약 500만 원) 이 스팀기는 10 BAR의 압력이 차오르면 분사하여 사용한다. 집에서 사용하는 스팀 청소기의 압력이 2~3 BAR이므로 상당히 센 압력이다. 보일러 형태의 스팀기 내부에 '로'가 있다. 이 '로' 내부에 물이 들어가고, 이 물에 압력과 열을 가하여 나오는 수증기가 스팀형태로 나오게 된다. 고온, 고압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스식 가열이 아닌 등유식 가열이므로 화재의 위험은 없다. 또한 압력이 초과되어도 용기가 터지지 않도록 센서가 부착이 되어있고, 혹여 압력이 넘치더라도 터지는 것이 아니라 균열을 통해 압력이 새어 나오게 설계되어 안전하다. 그러나 이 스팀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로'가 균열되면 대충 수리비만 200만 원이다. 후들후들한 금액이다. 뭐 스팀기는 어쩔 수 없다. 관리를 잘하는 방법뿐.



가끔 일반 내부세차보다 좀 더 디테일하게 진행하는 내부 클리닝 의뢰가 들어온다.

클리닝이 필요한 차는 장기간 세차를 하지 않아 오염이 심한 차, 구토가 발생한 차, 심한 냄새의 액체를 흘린 차, 동물이 자주 타서 털로 뒤덮인 차,  중고차를 구매했는데 내부 냄새가 심한 차 등이다.


한여름, 차량 내부에 딸기잼을 장시간 방치했다가

발효되어 내부 압력으로 뚜껑과 함께 딸기잼이 차량 내부에서 터져버린 경우도 있었다. 의자를 탈거하고 하는 경우도 있고 의자를 둔 채로 최대한 구석구석 클리닝을 하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내부용 스팀 청소기다. 차량의 바닥은 대부분 카펫재질이고 내부 천장도 카펫이나 스웨이드 재질이다. 이런 곳의 오염은 매트리스나 소파 청소용 스팀기가 필요하다. 스팀으로 청소해야 찌든 때를 화학제품 사용 없이 제거할 수 있고, 소독도 가능하다.


나는 타 지역 점장들에 비해 장비에 욕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동료들은 나를 '장비충'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일의 재미와 결과물의 퀄리티를 위해서 계속 장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게 장비충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갖가지 장비를 섭렵했지만,

4년 차에 접어들어 생각해 보니 가장 중요한 장비는 내 몸이었다. 컨디션 관리를 잘하지 못하면 당장 일이 힘들고, 결과물의 질도 떨어진다. 주문이 많다고 해서 덜컥 덜컥 무리해서 하면 몸에 무리가 온다. 그러니 가능한 선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장비인 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손이었다. 손가락 하나만 아파도 일을 할 수가 없다.


머릿속의 생각이 가슴을 거쳐 손으로 구현되는 것이 글이듯이

세차 역시 고객의 필요에 대한 나의 서비스는 손을 통해 구현된다. 그러므로 손은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는 메신저이자 해결사다. 그러나 장비충인 나는 이 소중하고도 제일 중요한 장비인 '손'을 홀대했다.  손을 업그레이드할  수는 없다. 손가락 한 개를 더 달수도 없고, 더 크거나 작게 만들 수도 없다. 그러니 이 손 역시 관리를 잘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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